[스포츠W 노이슬 기자] 배우 이병헌이 32년차임에도 대중에 보여준 적 없는 낯선 얼굴을 선보였다. 이름만으로 믿고 보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이지만, 이병헌은 자신도 연기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고 털어놨다. 모든 후배 연기자들에 귀감이 되는 배우, 연기 인생 32년차에도 이병헌은 여전히 진보중이고 관객들의 반응으로 확신을 얻는다.
이병헌의 신작이자, 올 여름 텐트폴 영화 전쟁의 마지막을 장식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개봉 7일째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호평 속 흥행 중이다. 영화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서울,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여들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재난 드라마다. 16일 누적 관객수는 213만여명이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김영탁 役 이병헌/롯데엔터테인먼트 |
재난 이후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담아냈다. 이병헌은 김영탁으로 분해 또 한번 인생 캐릭터를 갱신했다. '얼굴을 갈아끼웠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이병헌은 새로운 얼굴로 관객들을 마주했다.
'세상이 지진 때문에 무너졌는데 황금 아파트만 살아남았다'는 설정은 이병헌의 구미를 당겼다. 설정 자체가 만화적인 느낌이 있지만, 다양한 인간군상과 갈등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 중 이병헌이 분한 영탁은 황금아파트 주민대표다. "영탁이라는 인물은 경악스러운 짓을 저지르긴 하지만 상식적인 인물로 시작했으면 했다. 우리 주변에서도 내 주위에 꼭 있을 것 같은 모습이다. 그럼에도 이 사람은 상실감을 느끼고 정망감을 느낀 인물이다. 멍하고 무기력하게 며칠을 보냈을 것이라 생각한다. 루저의 삶을 살아왔고, 앞에 나서본 젓이 없는 사람이다. 어리숙함과 주변머리가 없는 듯한 인물. 얼이 빠진 느낌으로 시작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엄태화 감독은 말 수가 적은 사람이다. 이병헌은 특별한 디렉팅을 하지 않는 감독에게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김영탁을 입체적으로 만들어냈다. "어떤 작품에서든지 살아있는 캐릭터처럼 보이려고 노력하지만, 이번에도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했다. 말이 많지도, 디렉션을 많이 주는 감독도 아니다. 먼저 대화를 이끌지 않으면 디렉션 없이 촬영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저는 촬영장에서 아이디어를 내놓는 많이 내놓는 스타일이다. 감독님께서 편히 고르시라고. 감독님은 그걸 좋아하셨다. 주민장부 씬에도 'ㅁ'을 먼저 쓰자고 내가 아이디어를 냈고 감독님이 클로즈업 해주셨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김영탁 役 이병헌 캐릭터 포스터/롯데엔터테인먼트 |
영탁은 등장부터 만화틱하다. 갑자기 아파트 1층에 화재가 발생하자 어디선가 쏜살같이 달려와 소화전을 들고 뛴다. 자신의 집도 아닌데, 살신성인 정신으로 화재를 진압하는데 앞장선다. 단수가 된 아파트에서 기적처럼 영탁의 주문(?)과 함께 물이 터져나왔다. "이상한, 기괴한 소리를 내면서 물이 나오기를 바라는 행동과 소리를 내줬으면 한다고 했다. 주문같은 간절함을 보여주라고. 별의별 소리를 다 내면서 찍었던 것 같다. 속으로 계속 의심하고 불안해하면서 찍었던 장면이다. 관객이 이 장면의 행동과 소리를 받아들이면서 영화를 볼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감독님의 의도를 넣어보려고 했다."
이를 계기로 김영탁은 황금아파트 주민 대표가 된다. 영탁의 헤어스타일은 스틸 공개 당시부터 화제를 모았다. " 설정을 할 때 머리 숱이 많아서 옆으로 자라는 사람으로 설정했다.깎은지 좀 된 스타일이다. 엣지도 살짝 있다. 팬은 많이 떨어져나갈 것 같지만 딱 영탁같았다. 영탁이 권력을 갖게 되면서부터는 헤어스타일도 변화한다. 갈수록 머리가 서고, 각도가 조금씩 달라진다. 권력이 생겼을 때 머리는 되게 뻣쳐 있다. 고양이가 등에 털을 세운 것처럼. 가장 영탁다운 것 같다는 결론을 의상, 헤어 팀과 함께 내렸다. "
모든 배우가 그렇듯이, 이병헌은 영탁을 연기하는 4~5개월동안 인물에 젖어 살았다. 그래야 인물의 감정서 정서를 최대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매 씬 영탁이 되려고 발버둥쳤다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도 한 번도 본적 없는 눈빛과 얼굴을 마주했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김영탁 役 이병헌/롯데엔터테인먼트 |
"연기할 때 내 얼굴 표정이 어떻게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하지는 않는다. 어떤 감정으로 연기하는지가 중요하다. 내 표정은 다음에 알게 된다. 그건 마치 껍데기를 움직이고 연기하라는 것 같다. 영탁의 과거 씬을 찍을 때 이 사람이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딱 두 번 정도 영탁이 정신의 끈을 놓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씬에서는 나도 내 얼굴에 놀랐다. 또 사람을 던지는 순간은 속을 뒤집어서라도 보여주고 싶은 억울함을 표현한 순간이다. 억울함과 답답함과 분노의 감정 상태에서 헛구역질을 하는 것은 괴리감을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너무 극단적인 행동을 하고 자기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하기 때문에 관객이 어떤 인물에 몰입해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이병헌이 제일 공감한 사람은 부녀회장 금애였다. "어느 곳에나 그런 아줌마는 꼭 있을 것 같았다. 워낙 연기를 맛깔나게 잘하셨다. 촬영장에서도 리액션을 보면서 많이 낄낄대고 웃었었다(미소)."
이병헌은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촬영하면서 자신의 연기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내가 사람들이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을 이해한다고 믿고 있다. 보통의 배우들이라면 자신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캐릭터를 이해하고 일반적인 사람보다 상상하고 이입할 수 있는 것 같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누구보다 더 이해도가 빠르다고 생각하고 깊이 빠져들 수 있다고 자신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극단적인 감정을 연기했을 때 나는 이렇게 연기했지만 그건 내 주관적인 판단이다. 내 주관적인 판단이 과잉은 아닌지, 반대로 너무 자제해서 모자란 감정이 보여주는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은 있었다. 나 나름대로의 믿음은 있지만 불안감은 늘 함께 하는 것 같다. 내 의도처럼 고스란히 전달되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불안감은 늘 있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김영탁 役 이병헌/롯데엔터테인먼트 |
이병헌의 불안감을 해소시키는 것은 관객들의 반응이다.'콘크리트 유토피아' 개봉 전에는 블라인드 시사에 몰래 들어가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왔을 정도다. 그는 과거 관객들의 반응을 오해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우리 영화는 블랙 코미디 장르도 있다. 외부인과 싸우는 씬에서 몽둥이 씬에서는 한번 맞고 상대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면서 다시 내려치는 몽둥이를 잡을 때 '쿵딱'하는 느낌이었으면 했다. 무시무시한 상황 속에서 살짝 웃을 수 있는 코미디 같은 그 장면이 우리 영화의 색과 맞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 제가 쥐구멍에 숨고 싶을 만큼 심각한 장면이 나온다. 근데 그때 관객들이 시사에서 낄낄대고 웃더라. 그때 결국 시사 관을 나와서 화장실에 숨어 있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영화인데 사람들의 반응에 저럴 수 있겠구나 동요돼 헛웃음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근데 그 웃음을 오해한 것이었다. 그래서 시뻘개진 경험이 있다."
이병헌은 "내 안에 보편적인 감정이 있다고 생각하면, 내가 하는 연기가 맞을 거야 생각한다. 감정 크기는 모니터링 하면서 감독이나 다른 스태프들의 이야기가 도움이 된다. 확신이 서면서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불안감만 가지고 연기를 하면 '내가 맞을거야'라고 자꾸만 반복적으로 생각한다. 그래야 다음 연기를 또 할 수 있다. 계속 불안해하는 감정만 지속되면 그 캐릭터를 온전히 다 그려내지 못할 것 같다.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해온 작품들의 결과를 봤을 때,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서 내 판단이 맞았구나. 감정이 맞았구나 생각할 때가 많아서 믿음이 쌓여간 것 같다." [저작권자ⓒ 스포츠W(Sports W).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