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W 노이슬 기자]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허스키 보이스. 느와르를 대표하는 배우 엄태구가 첫 로맨스 코미디 장르를 통해 "느와르 금지"라는 평을 받았다. 엄태구의 본적 없는 새로운 매력에 대중은 빠져들었다. 데뷔 18년차 배우 엄태구는 새로운 도전에 아낌없는 성원을 준 팬들을 위해 뭐든지 하겠다는 '팬 바보'에 등극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엄태구는 화답하기 위해 팬들과의 '소통'을 시작했다.
엄태구가 첫 주연을 맡은 JTBC 수목드라마 '놀아주는 여자'(극본 나경/ 연출 김영환, 김우현/ 제작 베이스스토리, 아이오케이, SLL)는 어두운 과거를 청산한 큰형님 지환(엄태구)과 아이들과 놀아주는 '미니 언니' 은하(한선화)의 반전 충만 로맨스 드라마로, 지난 8월 1일 종영했다. 종영 후 지난 5일 강남구의 모처에서 엄태구가 종영 인터뷰를 통해 스포츠W와 만났다.
▲JTBC 수목드라마 '놀아주는 여자' 엄태구/TEAMHOPE |
국내에서는 최고 3%(10회)의 시청률을 기록한 반면, 방영 4주차 기준, 글로벌 OTT 라쿠텐에서 100여개 국가에서 시청자 수 기준 1위를 기록했고, 이 중 미국, 브라질, 영국, 뉴질랜드 등 64개의 주요 국가에서 4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글로벌 인기를 실감케 했다. 꾸준히 시청한 국내 시청자들은 지금까지와는 색다른 엄태구의 로코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는 새로운 '로코킹'이라는 수식어까지 얻었다.
'느와르'를 대표하는 엄태구에게 '놀아주는 여자'는 도전이었다. 그는 처음 제안을 받았던 당시를 떠올렸다. "그동안 안 해 본 색깔을 해보고 싶었는데 과분하지만 도전해보고 싶었다. 도전해볼만큼 무해하고 재밌는 대본이었다. 감사했지만 근데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르적인 부분과 그 안에서 제가 해야할 연기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로코에 대한 부담도 많았다. 찍으면서도 다 찍고 나서도 확신이 없었다."
엄태구의 변신에 글로벌이 화답했다. 대중은 놀랐고, 그의 새로운 매력에 스며들었다. "대본이 너무 귀엽고 무해했다. 악인이라는 것이 없는 느낌이었다. 좋은 배우분들이 많이 나와서 재밌는 장면도 많았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신 것 같다. 봐주신 분들이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놀아주는 여자' 글로벌 성적을 기사로 확인했다. 그 마음에 보답하고 싶다."
사전 제작된 '놀아주는 여자'. 엄태구는 매 촬영 스스로를 의심했다. 8개월간의 촬영 자체가 그에게는 숙제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배우는 해내야 하는 직업이기에 그만둘 수 없었다. "시작은 했으니 중간에 그만 둘 수 없었다. 해내야 하는 직업이다보니 스트레스는 있었지만 딱히 해소하지는 않았다. 그냥 쉬는 날 많이 잤다. 매번 '이 씬 잘 끝나서 다행이다, 감사하다'였다. 하지만 다음 촬영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JTBC 수목드라마 '놀아주는 여자' 엄태구/TEAMHOPE |
마지막 촬영까지도 엄태구는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놀아주는 여자'가 방영된 후 시청자들의 반응은 그에게 위로가 됐다. "방송 나가면서 좋게 봐주신 분들 덕분에 힘이 나고, 힘을 얻고 위로도 받았다. 보통 영화를 많이 해서 8개월내내 계속 나오는 작품은 거의 처음이었다. 로코라서 대사도 많고 제 분량이 많아서 페이스 조절을 못했던 것 같다.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임했다. 근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했다. 처음에 볼 때는 모니터링이 힘들었는데, 두번째 볼 때는 조금씩 웃으면서 봤다."
사실 엄태구의 로코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7년 단편영화 '시시콜콜한 이야기'에서 이수경과 로코로 호흡을 맞춘 바 있기 때문이다. 엄태구는 "그 작품은 관계자분들이 많이 봐주신 것 같아서 놀랐다"고 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놀아주는 여자' 캐스팅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 감독님께 물어본 적은 없다. 근데 많은 방송, 영화 관계자들이 그 영화를 보셨다고 하더라. 당시 감독님도 저랑 친한 분이셨다. 그래서 저를 캐스팅해주셨던 것 같은데 지금도 너무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20대의 현실적이라 조금은 지질하지만, 풋풋한 티키타카가 매력적인 로코였다. '놀아주는 여자'는 조폭이라는 삶을 포기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어른 서지환을 중심으로 하는, 결코 가벼지만은 않은 드라마였다. 서지환은 목마른 사슴이라는 육가공 업체의 대표로서 죗값을 치르고 출소한 사람들에게 두번째 기회를 주는 사업가다. 그는 조직폭력배인 부친의 뜻을 거역하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야만 했다. 엄태구는 상대에 따라 보이스를 다르게 설정하며 다채로운 면모를 가진 서지환을 소화해냈다.
"한선화씨와 로맨스 장면에서는 목소리를 맑게 내긴 했는데, 촬영하면서도 역시 확신이 없었다. 방송을 보고나니 그 모습도 좋게 봐주시고 알아봐주셔서 감사했다. 은하(한선화)랑 대화할 때 톤과 고양희(임철수)나 동생들과 있을 때의 톤이 자연스럽게 다르게 나왔다."
▲JTBC 수목드라마 '놀아주는 여자' 엄태구/TEAMHOPE |
매 촬영 어려웠지만 가장 힘들었던 장면은 놀이터 씬과 아침 식사 자리에 바람을 맞으며 등장하는 씬이다. 특히 식탁 장면에서는 한선화와 애정이 폭발해 멋짐을 뽐내야 했다. "놀이터 장면은 대본을 봤을 때는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점잖게 하려고 했었다. 근데 현장에 가니 감독님께서 처음부터 소리를 크게 내달라고 요청하셨다. 하라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촬영했다. 또 바람불면서 식탁에 등장하는 씬이 있다. 그게 그렇게 힘들더라 멋있는 척해야 해서 민망했다. 매번 촬영이 그날 찍으면서 덜 민망해지다가, 그 다음날 새벽에 또 민망해지는 연속이었다(웃음)."
'놀아주는 여자' 촬영 메이킹 영상에서는 '파워 내향인' 엄태구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실제 한선화도 촬영장에서 엄태구에게 말을 걸어도 말 수가 적어 과묵했다고 밝혔던 바. 하지만 엄태구는 인터뷰 내내 손을 쉬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평소 말 수가 적어서일까. 그의 손동작은 그의 밝은 심성과 연기에 대한 열정을 대변하는 느낌이었다. 말 수는 적었지만 한선화와 두번째 만남은 편했다고 전했다. "'구해줘2' 때 작품을 같이 했다. 마지막 촬영 때 말을 편하게 했던 것 같다. 이번에는 두번째 만난 것이다. 첫 촬영부터 편하게 했다. '구해줘2' 때도 연기를 잘했는데 지금도 연기를 잘한다. 첫 촬영이 되게 기억에 많이 난다. 다시 같이 연기하게 된 순간이니까. 처음부터 말을 편하게 하는 사이여서 그게 장점이 됐다. 제가 말이 많은 편은 아니자만, 대화를 한 날도 있었을 것이다(웃음)."
실제 연애할 때도 애교가 있는 편은 아니라는 엄태구. '놀아주는 여자'는 도전이었기에 잘 해내고 싶었고, 대본에 충실했다. 그럼에도 애드리브는 자연스럽게 붙기도 했다. "'애기야 가자' 대사는 대본에 있었다. 그 뒤에 라면 끓여준다는 대사는 제가 했다. 계단을 올라가는 씬인데 너무 길었다. 재미난 장면이니까 좀 더 재밌게 하기 위해서 컷을 외치실 때까지 애드리브를 했다."
'놀아주는 여자'로 로코에 첫 도전장을 던진 엄태구는 안정적인 연기로 합격점을 받았다. '新 로코킹'이라는 새로운 수식어도 얻었다. 그의 다음 도전은 '정통멜로'다. "감사하게도 다른 색깔에 도전할 수 있도록 캐스팅해주셨다. 어떤 수식어를 주셔도 감사하다. 그 수식어에 맞게 끔 열심히 더 힘을 내서 해보려고 한다. 저는 '8월의 크리스마스' 같은 정통멜로를 좋아해서 기회가 되면 도전해보고 싶다."
▲JTBC 수목드라마 '놀아주는 여자' 엄태구/TEAMHOPE |
엄태구는 올해 데뷔 18년차를 맞았다. 교회 성가대 연극을 통해 연기라는 맛을 처음 봤다. "그때 잘생긴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진지하게 연기학원을 다니자고 제안했다. 본인은 미술 학원을 등록, 저는 연기 학원을 등록했다. 처음에는 그냥 멋있어서 시작했다."
하지만 연기자의 길은 녹록치 않았다. 그럼에도 엄태구는 짧은 등장에도 존재감만으로도 관객을 압도하며 '시네필'에 눈도장을 찍어왔다. 2003년 영화 '계절의 끝'으로 데뷔한 후 '친절한 금자씨', '기담', '인사동 스캔들', 악마를 보았다', 공정사회', '은밀하게 위대하게', '차이나타운', '베테랑', '밀정', '택시운전사', 낙원의 밤' 등 굵직한 영화에서 조, 단역으로 활약했다. 특히 '밀정'의 하시모토, '택시운전자'의 군인 박성학으로 대중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어떤 작품이던지, 어떤 캐릭터이던지 부각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일이다. 분량에 관계없이 저는 최선을 다 한 것이다. 작품에 해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부각되는 일은 너무 감사한 일인 것 같다,"
연기를 계속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그 시절 만난 작품이 김지운 감독의 '밀정'이다. 엄태구는 자신의 대표작을 '밀정'으로 꼽았다.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연기가 재밌었는지, 잘 하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열심히 했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 벌써 20년 넘게 연기하고 있다. '밀정' 이전까지는 고민이 많았다. 조금 부족한 것 같고, 이 직업을 계속할 수 있는지 고민이 많았다. 연기하면서 현장에 잘 적응 못하고, 욕도 많이 먹었다. 근데 '밀정' 때는 송강호 선배님이 어떤 연기라도 다 받아주셨다. 꼭 말이 아니더라도 다 느껴지게 격려를 해주셨다. 그렇게 해주시니 이게 연기가 재밌는건가 신나기도 했다. 그 작품을 계기로 배우를 직업으로 삼은 것 같다."
엄태구에게 지금은 '놀아주는 여자'는 또 한번의 변곡점이 됐다. 로코 장르에 도전하는 동시, 소속사 역시 이적하며 환경의 변화도 가져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팬들에게 받은 사랑에 보답하고자 '소통'의 창구를 고민했다. 흔한 카톡도 이용하지 않던 엄태구는 공식 인스타그램을 오픈, 첫 신고식도 마쳤다.
"지금이 아니면 변화를 주기 힘들 것 같아서 이전 소속사 대표님께 잘 말씀드리고 이적했다. 너무 좋은 분들이다. 지금처럼 폐 안 끼치고 잘 소통하면서 활동하고 싶다. '놀아주는 여자'를 좋게 봐주셔서 위로를 얻었다. 그래서 어떻게든지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카톡은 '시시콜콜한 이야기' 촬영 즈음에 형(엄태화 감독)이 계정을 만들어 줬는데, 그 순간 알림이 쏟아져서 너무 놀라서 그대로 탈퇴했다(웃음).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인스타그램은 '놀아주는 여자' 시작할 때 친구가 모니터용 계정을 만들어줘서 댓글 반응을 보고 있었다. '유 퀴즈 온 더 블럭'도 보답하고 싶어 나가게 됐다. 평소 즐겨보는 유튜브 '유브이 방'은 출연 제안을 받아서 신기했고, 재밌을 것 같아서 나갔다. 현재 회사와 다방면으로 이야기 중이다. 팬들이 제일 원하는 소통 방식을 선택해서 보답해주고 싶다(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