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W 노이슬 기자] 배우 여진구에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국민 남동생'이다. 8세 여진구는 2005년 영화 '새드무비'로 어른들을 펑펑 울렸다. 연기력을 인정 받고 15세에는 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로 김윤석과 폭발적인 연기 호흡을 선보였고, 이 영화로 청룡영화상, 영평상, 기자협회 올해의 영화상, 대한민국연예대상, 디렉터스컷 영화제 등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1년 후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아역이자 어린 세자 연기로 안방 여심을 뒤흔들었다.
여진구의 현재 나이는 26세. 올해 18년차를 맞이한 그가 처음으로 '빌런'이라는 새로운 얼굴을 꺼냈다. 1971년 대한민국 상공, 여객기가 공중 납치됐던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을 스크린에 담아낸 '하이재킹'에서다. 16일 기준, '하이재킹'은 165만 관객을 돌파하며 관객들에 감동과 여운을 안기고 있다.
▲영화 '하이재킹' 김용대 役 여진구/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 ㈜키다리스튜디오 |
여진구는 '하이재킹'에서 김용대를 연기했다. 김용대는 비행기를 납치한 테러범으로, 영화의 메인 빌런이다. 매 작품 인터뷰마다 여진구는 '악역'을 꿈꿔왔다. 아역배우로 시작한 후 올 곧고 선한 이미지의 캐릭터나 학생 캐릭터가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하이재킹'과의 인연은 비행기 안에서 시작됐다.
"(하)정우 형과 '두 발로 티켓팅' 예능 촬영을 위해 뉴질랜드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형이 제의해줬다. 형이 기본적인 스토리랑 저한테 특별한 에너지를 갖고 있는 캐릭터라고 설명해 주셨다. 뉴질랜드 가서 밤에 다 읽고 얘기를 많이 나눴다. 한국에 와서 진지하게 고민 한 번 더 했다. 저 스스로도 시나리오가 너무 좋았다. 근데 용대가 해야하는 폭발적인 에너지가 무서웠다. 스스로에게 반문하는 시간을 가졌다."
용대의 폭발적인 에너지가 여진구의 구미를 당긴 것일까. 그는 어느 순간 용대로서 자신을 상상하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나면 그 작품 속 나를 계속 상상하게 된다. 이미 제 마음 속에서는 '하이재킹' 용대가 피어나고 있었다. 다만, 마음가짐이 중요했다. 이건 해야겠다 안되겠다. 너무 궁금하다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하게 됐다."
▲영화 '하이재킹' 김용대 役 여진구/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 ㈜키다리스튜디오 |
"당시 신문에 적힌 것을 배경으로 감독님께서 용대의 캐릭터를 만드셨더라. 공부를 못 한 게 아니라 중퇴를 하고 공장에 취직해서 일했다고. 지인들과 폭약을 가지고 장난을 치던 순간도 있다고 하더라. 가족사도 6.25 전쟁 때 형이 이북에서 장교였던 것도, 기사로 나와있다. 의붓 아버지와 지냈다고도 써 있었다."
실존 인물이지만, 비행기를 납치한 테러범이다. 게다가 실존 인물이기 때문에 접근과 표현이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용대의 과거 서사는 '연민'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했다. 감독과 여진구는 용대의 입장에서 연민을 느끼게 하려는 것을 경계했다. "감독님과 저도 되게 무서웠다.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실존 인물에 대해 알려진 사실이 거의 없더라. 그래서 제가 시나리오를 볼때만 해도 용대가 하이재킹을 일으킬 수 있는 이유를 만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걱정한 부분도 있었다. 정당화 되거나 미화가 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했다. 그런 감정이 커지다가 감독님도 아차 싶으셨던 것이다. 용대의 명분을 이해 시키려던 것이 아니다."
이어 여진구는 "현장에서도 그래서 엄청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오히려 다양한 촬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되게 만족스러웠다. 용대도 자신이 잘못된 길을 걷는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당당할 수밖에 없다. 무조건 가는 것이다. 태인(하정우)에게도 같이 가자고 하는 것이고 회유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무조건 갈 것이라는 생각으로 임했다"고 했다.
여진구가 고민한 지점은 숱한 연습 끝에 실제 테러를 저지르는 마음가짐이다. "그 전까지는 그냥 긴장하고 있던 사람이다. 어린 애 같아보였으면 해서 혼자만의 계획으로 두려워하는 청년이었으면 했다. 이 사람이 준비를 오랫동안 하고 철저하게 준비했다고 해도 떨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22살짜리가 그런 일들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게 받아들이기 어렵더라. 혼자 시도도 많이 해봤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마음 먹었던 것을 실행하는 사람은 어떨까 그게 저한테 고민이 됐던 지점이다."
▲영화 '하이재킹' 김용대 役 여진구/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 ㈜키다리스튜디오 |
여진구에게 하정우, 성동일, 승객들로 함께한 배우들의 피드백은 큰 도움이 됐다. "정우형과 동일 선배님은 매번 피드백을 주셨다. 승객분들 같은 경우는 제가 너무 감사드린다. 혼자서 하라고 하면 못했을 것 같은데 그 승객분들이 저를 많이 도와주셨다. 용대라는 인물에 힘을, 많이 응원해주셨다. 저에게 진심으로 감정을 전달해주시려고 했다. 매번 승객분들께 과격해야 하는 순간마다 의견을 많이 여쭤봤다. 다 같이 진지하게 고민도 같이 해주셨다."
덕분에 준비해왔던 감정과 달리, 현장에서 달라진 부분도 있다. "테러범이라는 정체를 밝힌 후 비행기 조종실 계기판에 선전지를 붙이는 씬이다. 승객과 몸 싸움을 벌이고 극도로 흥분했을 때 용대를 말리던 시점에 원래 조금더 캄 다운이 되는 씬이었는데, 리허설 과정에서 정우 형이 실제로 총으로 사람을 때리고 폭행을 가하는 모습을 보는 태인 입장에서는 자극이 클 것이라고 했다. 용대가 자길 더 눌러주길 바랐다. 그래서 너도 꿇으라고 강압적으로 하는 장면이 만들어졌다. 형의 아이디어를 듣고 나니 그 상황에서 기선제압이 필요하다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잔인한 방식으로 대하고 싶었다. 그래서 태인의 어깨 견장에 칼을 닦으면서 위협하는 행동을 하고자 했다."
처음 호흡을 맞춘 하정우는 연출자로서도 경험이 있는 배우다. 그는 다양한 시각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반면, 성동일은 과거 부자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다. 여진구는 "지금까지 어떤 현장보다 웃음이 많았고 유쾌했다"고 했다. "현장이 너무 유쾌했다. 분위기가 너무 편안했다. 현장에 가면 재밌으니까 떠나고 싶지 않은 현장이었다. 모든 배우들이 그렇게 느낀 것 같다. 감독님, 배우, 스태프들 다 그랬던 것 같다. 대전 세트장에서만 몇 개월 촬영하다보니 다들 친근해지고 사적인 시간도 함께 보냈다. 심도 있게 고민하고 의견 나누고 리허설 할 때는 정말 치밀하게 하고 하나도 허투루 안 넘어가더라. 계속해서 풀릴 때까지 시도했다. 바쁜 현장인데도 철저히 해결이 될 때까지 실마리를 풀어나가려고 하셨다. 그걸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감독님, 제작사 분들의 진심의 에너지가 좋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여진구는 "욱하는 감정에서는 저도 모르게 거리 조절을 못하게 되더라. 충분히 인지하고 촬영을 했는데도 잘 안되더라. 그래서 정우형이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다. 큰 에너지를 갖고 있는 역할이고, 몰입을 하는 게 느껴지는 게 좋은데 우리가 프로페셔널한 배우로 봤을 때는 이러한 감정을 콘트롤 할 수 있는 현장이었던 것 같아서 좋게 생각한다고 해주셨다. 저도 많이 배운 현장이었다"고 덧붙였다.
▲영화 '하이재킹' 김용대 役 여진구/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 ㈜키다리스튜디오 |
극 중 용대는 비행기에 올라타기 전 어린 학생에게 말을 걸지만, 학생과 옆에 있던 다른 승객은 북한 사투리 때문에 경계하는 모습을 보인다. 결국 용대는 그 손에 폭약을 쥐어주며 공포심을 극대화한다. 용대가 말을 거는 대상은 아역시절 여진구를 연상케 하는 아역 배우 문우진이다. 최근 드라마 '무인도의 디바',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에 나와서 주목받았다.
"연기를 워낙 잘한다. 놀라울 정도로 집중력이 좋더라. 우진이 눈빛이 너무 기억에 남는다. 과거의 제 생각이 났다기보다는 자신만의 연기와 순간들을 진심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에 응원하게 되더라. 앞으로 많은 작품에서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여진구는 문우진에 '자신만의 연기와 순간들을 진심으로 살고 있다'고 표현한 것에 대해 자신이 방황했던 10대 활동 시절을 떠올렸다. "배우의 길을 가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14살 때 '자이언트' 때다. 그 이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름을 알리고 칭찬도 상도 많이 받았다. 불과 제 인생이 1~2년만에 바뀌었더라. 그때까지만 해도 감사했고, 행운을 받았다고 생각해서 잘 해내고 싶었다. 어느 덧 실질적인 주연으로서 감당해야할 무게와 책임감 때문에 스스로 옥죄이고 채찍질하는 시간이 있었다. 저한테는 필요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저는 정말 잘하고 싶었고, 많은 분들에게 작품으로 사랑받길 원했다. 그래서 스스로 많이 숙제를 만들었던 것 같다. 예전에는 연기가 하나의 놀이였고, 현장 학습 가는 것보다 설렜는데 어느덧 제가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 느낌이라서 방황했다. 그때 저는 꽉 막혀 있었다. 그래서 조금 힘들었다. 그렇게 지내고 나니 20살이 다가오더라."
14살 어린 나이에 연기의 어떤 면이 끌렸을까. 그는 스스로 "연기 중독이다"고 표현했다. "너무 어릴 때 (연기)맛을 봤다. 다른 사람의 삻을 살아봤는데 단순히 상황극이 아니라 어느 시대든, 어떤 순간이든, 살아보는 카타르시스가 흥미로웠다.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하는데, 하나의 인격체를 만들어내는 게 친구가 하나 더 생기는 느낌이다. 그래서 10대 후반에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제가 고민을 깊게 했다기보다는 이걸 지키고 싶어서 그런 태도를 갖게 된 것 같다. 너무 소중하다보니."
▲영화 '하이재킹' 김용대 役 여진구/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 ㈜키다리스튜디오 |
아직은 이르지만 30대 배우 여진구의 모습도 그려본다. 그는 30대 배우 생활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특히 '하이재킹' 촬영은 그에게 새로운 배움과 자극을 안겼다. "얼른 이 시간들이 지나서 어떻게든 버텨서 서른 살이 돼 있을 때는 뭐가 돼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30대를 기다렸을 정도다. 그래도 연기가 너무 좋더라. 10년만 나 죽었다는 생각으로 20대를 맞이했다.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의미있는 시간들이 많았다. 당시 겸손이라고는 못 미치는 배우였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풀 죽이면서 살아왔다. 매번 작품 하면서 들었던 생각이 이번 현장에서 확고하게 성립됐는데 지나고보니 저와 함깨한 모든 분들이 훌륭한 분들이었다. 나는 왜 그 안에서 나를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자책하면서 살았을까 생각이 들어서 죄송했다. 옛날에 행복했던 순간들을 최근에 많이 찾았다. 치열하게 부딪히고 즐겁게 호흡하면 재밌어지는구나 싶더라. 그래서 작은 역할 할 때도 풍부한 상상하고, 풍부하게 열어놓은 상태로 대화하고 부딪힌다. 의견 주시면 바꿔보기도 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충분히 하게 되는 것 같다."
여진구의 롤모델은 하정우다. "저는 이미 다양한 시도를 함으로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많은 선배님들처럼 경계를 두고 싶지 않다. 다만, 연출의 세계까지는 지켜봐 온 입장에서는 되고 싶지 않더라(웃음). 얼마나 고생하시는지 안다. 감독님도 촬영할 때 살이 쪽 빠지더라. 시나리오를 쓴다던지 대본은 쓴다던지, 저도 개인적으로 시도는 해보고 있다. 책도 읽어보고, 글도 써볼까 하기도 했는데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웃음)." [저작권자ⓒ 스포츠W(Sports W).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