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개봉한 영화 '비상선언'(감독 한재림)은 사상 초유의 항공테러로 무조건적 착륙을 선포한 비행기와 재난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관상', '더 킹'을 연출한 한재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배우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김소진, 박해준이 호흡을 맞춘 올 여름 기대작으로, 개봉날 33만 관객을 동원하며 화려하게 막을 올렸다. 개봉 2일째 누적 관객수는 58만 997명이다.
▲영화 '비상선언' 한재림 감독/(주)쇼박스 |
'비상선언'은 지난해 제74회 칸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개봉이 미뤄지고 3년만에 관객들에 선을 보이게 됐다. 한재림 감독은 스포츠W와 화상 인터뷰에서 "몇 년만에 개봉하게 됐다. 이 작품으로 작년에 칸에서 관객들에 선보이고 나서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또 한번 개봉하는 느낌이다. 근데 그와는 별개로 한국 관객들과 만난다는 게 설렌다"고 말했다.
한재림 감독은 '비상선언'을 10년 전에 영화제작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 3년동안 팬데믹 현상으로 영화와 같았던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처음 제의 받은 시나리오는 어떤 내용이었을까. 감독은 "'우아한 세계' 끝나고 '관상' 전이었다. 그때 시나리오에도 이런 항공기 테러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과 지상에서는 해결하려고 하는 노력하는 과정이 담겼었다. 큰 틀은 비슷하다. 당시 못했던 이유는 시나리오를 보면서 뒷 부분이 어떻게 해결할지, 설정은 좋았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 동안 시간이 지나면서 전 세계적인 재난을 보면서 내가 이 작품을 한다면 어떤 메시지를 줄지 생각이 들더라.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비상선언'은 영화적인 상상에서 시작됐지만, 2020년 실제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크루즈 선박이 코로나19 사태로 입항거부를 당하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마음가짐의 변화도 생겼다. "굉장히 영화적 상상이었다. 전염을 누군가에 시키고, 내가 전염당하지 말아야지 하는 비슷한 사건들이 현실에서 일어났다. 그 현실을 눈으로 목도했을 때 기가막힌 감정도 들었고 굉장히 마음 아프기도 했다. 굉장히 공감한 것은 제가 그리려고 한 것처럼 그래도 우리는 재난을 성실하게 잘 이겨내고 있다는 것에서 상상했던 것처럼 이뤄지고 있는 것에 안도하기도 했다."
'비상선언' 속 항공기는 하와이 호놀룰루 행으로, 결국 행선지에 착륙하지 못하고 회항하는 시간 동안의 테러가 발생한 항공기 내 아수라장이 된 모습과 지상에서 이들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담았다. 도중 일본에 착륙하려 했지만, 테러가 발생한 항공기를 착륙 시키는 일은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른다.
▲영화 '비상선언' 메인 포스터/(주)쇼박스 |
"비행기가 떴다가 돌아오는 이야기다. 그 러닝타임 안에 일이 벌어질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계산했다. 바이러스에 투하한 양이 과도한 부작용이 일어난 것이다. 그게 백신을 투여하면서 안정된 상황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의 시간을 정확히 계산하지 않았지만 일본에서 한국을 오는 시간 안에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해외 기자 중 한국에서 (시위)플랜카드를 어떻게 빨리 준비하냐는 질문이 있었다. 근데 한 두 시간이면 만든다고 한다. 그러 부분들은 공상과학 영화가 아닌 이상에 논리적인, 테러 전담반이나 이런 분들에 고증과 의논을 많이 거쳤다. 촬영할 때는 항공 기장님이 옆에 계셔서 파일럿들의 손동작 등을 다 고증해서 촬영했다."
그 과정 속 기내와 지상을 대비적으로 담아낸 연출이 인상적이다. 특히 형사팀장 인호(송강호 분)는 해당 항공기에 아내가 타 있기에, 테러범의 정체와 바이러스에 대해 정보를 수집해가며 홀로 동분서주한다. 인호라는 캐릭터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을까. 감독은 "재난을 이겨낸다기보다 재난은 한번 왔다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류진석(임시완 분)씨가 재난의 상징이다. 자연재해처럼 오고 지나가는 것이다. 그 다음의 삶에 집중을 했다. 보통 자연재해는 왔다 지나가면 끝이다. 비행기 내의 재난은 점점 확장되는 구조를 갖는다. 사람 한 사람부터 비행기 내부에서 밖으로 확장된다. 그게 두려움이 만들어내는 것 같다. 인간성의 훼손, 증오, 이기심 등이라고 생각했다. 인호뿐만 아니라 모든 인물들이 아주 작은 용기가 이것들을 버텨내며 이런 재난을 극복해 가는 모습들이 인간들의 연대감이라 생각했다. 코로나19때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이 이탈리아에서 서로 창을 열고 노래를 하는 장면이었다. 그게 세상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한재림 감독의 작품에는 늘 사회적 시선과 함의가 돋보였다. 이전 작품들에서는 은유적이거나 풍자의 형식을 취한 것에 비해 '비상선언'은 후반부 극렬한 양분화 현상이 너무나 사실적이고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저는 인간의 두려움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을 어떤 구체적인 팩트로 보지 말고, 은유적으로 생각하면, 굉장히 인간이 가진 두려움과 무서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직접적인 묘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앞서 감독은 비행 공포증과 2017년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사건 이후 영화에 담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고 밝힌 바. 또한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재난영화 특성상 관객에게 공포심을 심어주는 부분이 있다.
▲영화 '비상선언' 항공기 360도 회전 스틸/(주)쇼박스 |
"제가 한국사회나 전 세계 재난을 보면서 행복했으면 했다. 저도 편안하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고 윤리적인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며 "제 생각과 전혀 다른 의도로 받아들이는 분들도 계신다. 근데 어떤 친구는 코로나19 걸리고도 식사를 하러 간다고 하는데, 누군가는 남에게 피해주기 싫어서 식당도 안 가고 집에 가서 혼자 식사하기도 한다. 다양한 인물들이 영화에서 이해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저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했다."
이어 "항공 테러의 스릴러 요소를 기대했는데 재난영화로 빠진다면 실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는 재난영화의 범주 안에서 봐주셨으면 했다. 비행기는 항로가 있고 돌아오게 돼 있다. 부기장이 몸이 아프고, 한국으로 오면서 가까운 공항에 착륙해야한다는 흐름을 가졌다. 극적인 반전을 주려기보다는 조금 더 사실적으로 다가가려고 했다. 비행기가 뜬 순간부터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지길 바랐다"고 덧붙였다.
'비상선언'은 할리우드 세트 제작 업체와 협력해 실제 대형 비행기를 미국에서 공수하고, 비행기의 본체와 부품을 활용해 세트를 제작했다. 실제 사리즈의 비행기 세트에 롤링 짐벌(Gimbal)을 투입, 360도 회전 시키며 실제 촬영감독이 몸을 묶고 비행기에 매달려서 핸드헬드로 촬영하며 리얼리티를 더했다. SF 특수효과, 음향 등 후반 작업에도 만전을 기했다.
감독은 "저도 개인적으로 비행 공포증이 많이 완화가 됐다. 공포는 무지에서 온다. 비행기라는 것에 대해 잘 모를 때는 하늘에 떠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는다. 비행기에 대해 공부하고 굉장히 안전한 측에 속하는 운송수단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재난영화를 다룰 때에 윤리적인 문제가 부딪히기도 한다. 공포심을 줘야하는 것이고, 그 공포가 어디서 기여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바이러스를 보여줄 때도 아무것도 아닌 것을 담으려고 했다. 사람이 피가 터져 죽는 부분들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다만 심리적 공포로 인간들의 마음이 공포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의도를 전했다.
▲영화 '비상선언' 류진석 役 임시완 스틸/(주)쇼박스 |
"비행기의 SF적인 특수효과 부분은 신경썼다. 비행기도 하나의 인격처럼, 비행기의 소리가 어떤 울음소리처럼 들리길 바랐다. 부응 부응 하는 소리가 감정적으로 이들의 심정을 대변하길 바랐다. 그런 비행기가 가진 사운드지만, 그런 사운드 이펙트들이 드라마와 맞게 나올 수 있게 많이 고민했었다."
항공기를 테러범 정체는 극 초반부터 류진석임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어딘가 수상한 행동을 하고, 재혁의 딸에 공포심을 심어주는 등 '빌런'으로 활약한다. 예고편부터 빌런을 색출하는 것이 아닌 처음부터 드러낸 의도가 궁금했다.
"저는 빌런이 이걸 재난 영화로 보느냐, 테러 영화로 보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다. 임시완 씨는 재난의 상징이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 오는 재난이었다. 그래서 중간에 사라지고, 그 재난이 사건의 여파다. 라스베이거스 총기 테러 사건 생존자들은 지금도 트라우마로 싸우고 있다.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저한테는 없었다. 재난으로서만 바라봤을 뿐이다."
인터뷰②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