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피치 위의 여자들, 그들은 왜 축구를 할까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최지현 / 기사승인 : 2019-06-26 17: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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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볼(슈팅을 했지만 골키퍼의 선방이나 골대에 막혀 다시 흘러나온 공)을 차지해 첫 골을 넣는 기쁨을 만끽하겠다며 골대 앞을 맴도는 요행수를 부리던 혼비는 연습 삼아, 경험삼아 처음으로 골키퍼 포지션을 맡아 연습경기에 출전해 우연히 세컨볼을 잡아 골을 넣었다.
자살골이었다.
‘여자’들이 ‘축구’하는 이야기를 담은 생활체육 에세이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는 축구를 좋아하고, 축구를 직접 하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다.
『피버 피치』로 알려진 영국의 축구덕후 작가 닉 혼비의 이름에서 따 김혼비라는 필명을 선택한 저자는 축구를 사랑하는 게 글 속에서 마구마구 느껴진다.
‘여자’가 축구를 한다고 하면 가장 먼저 돌아오는 질문은 “왜 여자가 축구를 해?”다.
생각해보면 축구는 남자들만의 전유물이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축구한 얘기,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 회사 야유회에서 축구한 얘기는 대부분의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얘기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학창시절 체육시간이면 남학생들은 운동장을 다 차지하고 축구를 했고, 여학생들은 구석에서 피구나 발야구, 혹은 움직이는 게 싫다며 스탠드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축구를 해 본 적 없는 여자들은 축구가 왜 좋은지 알 턱이 없었다. 그러니 그들이 하는 얘기는 지루할 수밖에.
이런 교육환경에도 불구하고 혼비는 학창시절부터 배구와 농구를 즐겨하고 아버지 어깨너머로 축구를 보던 체육소녀였다.
호나우두의 스텝오버를 보며 축구에 빠져 열심히 축구를 봤다. 그렇게 보다보니 축구가 너무 하고 싶어졌는데 마침 여성 아마추어 축구단 광고지를 발견해 전화를 걸었다. “일단 나와보세요.”하는 감독의 말에 홀려 축구장으로 향했다.
그게 그가 축구일기를 쓰기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축구만 하는 게 아니라 축구를 하는 와중에 벌어진 일들도 함께 털어놓는다. 축구는 ‘남자들의 전유물’답게 맨스플레인도 빠지지 않는다. ‘Man(남자)’과 ‘Explain(설명하다)’을 합한 신조어인 맨스플레인은 남자가 여자에게 거들먹거리거나 잘난 체하는 태도로 설명하는 것을 뜻한다. 이 현상은 아마추어 축구단에서도 나타났다.
여자 아마추어 축구단의 상대는 대부분 같은 여성팀이지만 가끔 60대 이상의 남성 시니어팀이나 아주 드물게 30~50대 남자팀과 맞붙기도 하는데 그럼 이 맨스플레인은 더욱 심하다. 혼비가 속한 팀은 아마추어 축구단이지만 WK리그에서 뛰던 선수출신의 선수도 4명이나 있다. 그런 선수출신에게 쉬는 시간 다가와 공을 차는 자세나 축구 규칙, 상식들을 코칭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지적한다.
쉬는 시간 ‘수모’를 당한 여자선수들은 경기에서 로빙슛(골키퍼의 머리 위를 넘기는 높고 느린 슛)으로 그들을 ‘응징’한다. 혼비는 ‘나의 킥은 느리고 우아하게 너희들의 코칭을 넘어가지.’하며 선수출신 선수들이 뽐내는 로빙슛의 매력에 빠져 특훈을 기대하기도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아마추어 축구단이니, 입단하면 바로 경기에 출전하는 줄 알지만 사실 혼비는 입단하고 5개월 동안 피치한번 밟지 못하고 라인 밖에서 기초훈련만 했다.
그래서 당장 공을 차고 싶었던 사람들은 며칠 버티지 못하고 나가버린다. 기초훈련만 한지 석달쯤 지났을 때 감독님은 혼비에게 연습경기 출전을 제안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달리 혼비는 그 ‘기초훈련’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었다.
축구를 제대로 하고 싶었던 혼비는 이 기초훈련을 제대로 해야 오래도록 좋아하는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골키퍼로 출전한 연습경기에서 자살골을 넣은 후 혼비는 욕심 부리지 않고 다시 기초훈련에 매진한다.
그렇게 1년 넘게 기초훈련에 몰두하던 혼비는 한 해의 마지막 공식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아무리 아마추어들끼리 모인 구단이라도 보통 입단해서 빨라야 2~3년은 걸리는 정식 대회 출전이지만 다른 선수들이 단체로 학부모모임에 가는 바람에 혼비는 1년 만에 출전했다.
특별한 코칭이 있을 줄 알았던 작전타임시간 감독님은 “공이 오면 무조건 골대 쪽으로 뻥 차.”라는 주문을 하셨고, 혼비는 감독님의 말씀대로 공을 받자마자 골대 쪽으로 보지도 않고 '뻥' 찼다.
골대 앞에 있던 선수출신의 선수가 발을 갖다 댔지만 골포스트를 맞고 튕겨져 나갔다. 하지만 완벽한 롱패스였다. 요행수를 부리다 자살골을 넣으며 된통 당한 혼비는 ‘세컨볼’이라는 요행수대신 롱패스를 연습하기로 한다. 그래야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놓치지 않고 실력을 뽐낼 수 있을 테니까.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남자 축구선수들이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고전하는 동안 여자 축구선수들은 한 번도 지지 않고 2019년 여자월드컵 본선진출행 티켓을 얻어냈다. 하지만 여자월드컵이 있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
한국남자축구리그인 K리그는 가장 인기 없는 구단의 경기 관람객이 평균 2000명이지만 한국여자축구리그 WK리그는 챔피언 결정전 정도는 되어야 2000명이 넘는다. 심지어 WK리그 경기는 관람료가 무료다.
이런 무관심한 상황들 속에서도 아마추어 축구단은 전국에 꽤 많이 존재한다. 여학생들은 대부분 학창시절 남학생들에게 운동장을 내주고 피구나 발야구를 하며 축구는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축구를 경험하고 재미를 느껴 축구를 하고 있는 여자들이 꽤 많다는 사실에 혼비도 놀랐다.
이렇듯 축구는 실로 대단한 것이다. 자신을 ‘초개인주의자’라고 표현한 혼비는 오랜 시간 ‘인간은 안 모일수록 좋다’고 생각해왔지만 축구에 빠진 이후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인간은 모일수록 좋고, 축구는 재밌으니까 적어도 축구공 앞에서 여자들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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