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비상선언' 이병헌 "엉뚱한 임시완, 김남길 좋은 관객같은 존재"

노이슬 기자 / 기사승인 : 2023-08-18 18: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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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W 노이슬 기자] "실제 촬영하는 와중에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 그때 조금 많이 놀랐다. 영화적으로 과장한 상황이 아니었구나. 실제 이런 상황을 뉴스에서 보면서 충격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영화적인 과장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현실적인 에피소드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영화 '비상선언'(감독 한재림)은 사상 초유의 항공테러로 무조건적 착륙을 선포한 비행기와 재난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지난 3일 개봉 후 200만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영화 '비상선언' 재혁 役 이병헌/쇼박스
 '비상선언'은 항공기 테러라는 재난 소재를 다루지만 다른 재난 영화의 뻔한 틀을 탈피한다. 특히 최근2~3년동안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현상은 기존의 많은 생각들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이를 증명하듯 '비상선언'의 시작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이 영화는 재난영화지만 사실적이고 다큐같은 느낌이 든다. 조명도 카메라도 배우들의 연기도 사실적이다. 처음부터 그 느낌을 갖고 가자고 작정하고 만들었다. 그래서 영화를 본다는 느낌보다 자신이 승객이 돼 있는 것 같은 긴장감과 불안함을 관객들에 줄 수 있는 것 같다. 그 중 누군가가 히어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각기 다른 사연으로 이겨내려고 고군분투한다. 그래서 우리의 후반부는 씁쓸한 기분이다. 인간의 이기심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이 차별점인 것 같다."

이병헌이 분한 재혁은 아토피 피부염으로 고생 중인 딸의 치료를 위해 비행 공포증을 견디고 비행기에 오르는 인물이다. 재혁은 예기치 못한 재난 상황 속에서 딸을 지키고 싶어 하는 절절한 부성애와 더불어 어려운 상황 속 타인을 도와주고 싶은 이타심, 살아남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까지 모두 가진 사람이다. 이병헌은 "재혁은 상황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인물"이라고 했다.

"재혁이라는 인물은 일반적으로 가질 수 없는, 정말 특별한 트라우마와 과거가 있다. 직업도 흔치 않은 조종사였다. 이 사람의 캐릭터만 보자면 가장 평범한,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인물이다. 그래도 비행공포증이 있어서 비행기 탔을 때 예민하고 불안해 한다. 상황에 제일 먼저 반응하고 즉각 반응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이 극단적인 재난의 상황을 맞닥뜨릴 때마다 당황스러움과 공포감을 얼굴로 표현하는 캐릭터다. 승객들의 당혹스러움을 가장 먼저 나타내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즉각즉각 반응하는 감정이 비행기 안에 있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영화 '비상선언' 재혁 役 이병헌/쇼박스
 

앞서 제작보고회에서 이병헌은 실제 비행기에서 공황장애를 경험한 바 있다고 언급했다. 연이은 세트 비행기 세트 촬영에 답답함을 없었을까. 그는 "공황장애가 완벽하게 나을 수는 없다고 하더라. 상황에 따라서 나온다고 한다. 재혁같은 사람들은 비상약을 항상 가지고 다닌다. 저도 마찬가지다. 언제 어떤 상황에 올지 모른다"고 했다.

재혁은 딸의 치료를 위해 비행기에 오르고, 딸을 지키기 위해 애뜻한 부성애를 선보인다. 영화 '싱글라이더'에서의 부성애 연기와 어떤 차별점이 있을까. 이병헌은 "'싱글라이더' 보다 좀 더 자식과의 관계에 있어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라 연기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딸과 함께이기 때문에 내가 가지는 부모로서의 입장, 내가 이 비행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책임지는 사람의 입장까지 두 가지가 부딪히고 갈등하고 고민하는 부분이 제일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경험했던 것을 연기할 때는 확신을 가지고 할 수 있다. 아이의 아빠로서 연기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같지는 않더라. 딸 가진 후배들과 같이 밥 먹고 하는데 그 아빠들이 딸을 대하는 모습을 관찰해보니 아들 아빠와 딸을 가진 아빠의 말투나 대하는 모습, 놀아주는 모습들이 다 다르더라. 그런 것들을 많이 참고했다"고 덧붙였다.

'비상선언'은 역대급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았다.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박해준 김소진 등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의기투합했다. "영화 결정할 때 좋은 배우들과 함께하게 된다면 그게 정말 큰 힘이 된다. '남산의 부장들' 때도 좋은 배우들과 처음 일을 같이 해봤다. 하물며 전도연 송강호씨는 다른 작품에서 만났던 편한 동료다. 물론 호흡을 맞춘 부분 없이 지상파와 비행기파로 나뉘었지만, 정말 재밌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다들 고생하면서 자신의 역량을 잘 발휘한 것 같아서 더 좋은 영화가 된 것 같다."
 

▲영화 '비상선언' 재혁 役 이병헌 스틸/쇼박스
 

완성된 영화를 본 후 가장 인상 깊었던 배우는 임시완과 송강호다.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뿜어낼 때 좋은 배우구나 생각이 들었고 완성된 영화를 볼 때는 별것도 아닌 대사인데 여러 감정을 느끼게 하는 송강호씨의 디테일이 좋았다."

앞서 송강호는 "'범죄도시2'에 손석구가 있다면, '비상선언'에는 임시완이 있다"고 극찬한 바. 임시완은 '비상선언'에서 이전에 본 적 없는 빌런 연기로 역대급 연기 변신을 선보였다. 이병헌은 "늘 날 고민하게 만드는 친구"라고 했다.

"임시완 배우는 평상시 보면 막내로서 그 아주 귀엽고 엉뚱한 매력이 있는 친구다. 엉뚱한 질문들도 많이 한다. 나도 생각해보지 못한, 대답하기 힘든 질문들도 자주 던져서 늘 날 고민하게 만드는 후배다. 직접 얼굴을 맞대고 있지 않으면 문자로라도 질문한다. 궁금한게 많고 항상 질문이 많은 배우다. 현장에서 연기하는 것을 보며 '참 좋은 후배를 내가 발견했구나, 정말 좋은 후배구나' 생각했다. 그 예쁘장하고 착하게 생긴 얼굴에서 그런 무시무시한 역할과 분위기를 뿜어낸다는 것이 좋은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병헌은 비행기파이자, 승무원 사무장으로 분한 김소진에 대해 "김소진씨는 정말 진지한 배우다. 촬영장에서 자신이 해야할 것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연구하고 고민하는 신중한 배우"라고 했다. 이어 비행기 부기장으로 분한 김남길에 대해 "김남길 배우는 정말 유쾌한 친구다. 물론 준비를 다 해왔기 때문에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에는 진지하고 롤에 집중하지만, 꺼지는 순간 개구진 모습으로 잘 웃는다. 제가 어떤 농담을 던지던지 제일 크게 웃어준다. 저한테는 좋은 관객같은 존재다. 잘 웃어주니까 저도 쓸데없는 농담을 하게 된다. 둘이서 웃고 많이 떠들었던 기억이 있다"며 미소 지었다.
 

▲영화 '비상선언' 재혁 役 이병헌/쇼박스
 

상공에 떠 있는 비행기에 탑승한 비행기 파와 지상파로 나뉘어 전도연, 박해준과는 실질적으로 연기로 호흡을 맞출 수 없었다. 구인호로 분한 송강호는 지상파 임에도 불구하고 딱 한번 마주한다. 송강호는 경찰서 강력계 팀장으로서 비행기에 탄 아내를 구하기 위해 지상에서 고군분투하는 인물이다. 이병헌은 "초반 촬영 한달이 안됐을 때, 제가 한번 커피차를 가지고 (지상파)촬영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게 아마 유일한 지상파의 세트 촬영일 것이다. 이분들은 야외 촬영이 더 많다. 그때 한번 방문했다. 만나는 씬일 때 '그쪽 촬영은 좋았겠다 우린 답답했다'고 하고 송강호씨 등은 '안에서 촬영해서 좋았겠다'고 했었다. 근데 막상 영화보고 나서는 서로가 힘들었겠구나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비상선언' 제작진은 실제 대형 비행기를 미국에서 공수하여 세트를 제작하고, 비행기 세트를 360도 회전시킬 짐벌을 활용했다. 360도 회전 장면에서는, 촬영 감독이 직접 발을 고정하고 세트와 함께 회전하며 핸드헬드 촬영을 진행해 흔들리는 기내의 모습을 사실적이게 담아냈다. 이병헌은 "처음 비행기 세트장에 갔을 때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실제 비행기와 똑같은 크기로 잘려있고, 360도 굴리기 위한 짐볼이 장착돼 있었다. 할리우드에 뒤지지 않는 기술력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내부도 실제 비행기에서 떼어온 인테리어 소품이다. 실제 비행기에 타고 있다고 최면을 걸 수 있는게 쉬웠다. 폐쇄공포까지는 아니었다. 내가 세트라는 것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답답함은 없었다. 코로나19 겪으면서 모여서 함께 촬영하는게 신경쓰이긴 했다. 아침마다 온도 체크하고 했었다. 안전 부분은 최대한 신경썼다. 360도 돌아가는 비행기는 초반 며칠동안 돌릴 때는 매번 긴장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안전벨트 잘못 메서 떨어지면 어쩌나 생각도 했었다. 다행히 아무 사고 없이 잘 진행됐다."

실제 영화에서는 최대 360도 돌아가는 비행기를 표현하며, 승무원이나 긴 머리의 여성 탑승객이 위쪽으로 솟구치는 등 위험천만한 연출이 펼쳐졌다. 이를 보고 이병헌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한 가지 연출을 제안했다. "그런 상황 비슷한 상황이 놀이기구에 탑승한 모습이 연상됐다. 실제 놀이기구를 타다가 기절하는 사람들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걸 감독님께 보여드렸더니 '진짜 기절하는 사람이 있냐'며 재밌게 보시더라. 그래서 승객 중에 한 사람을 표현하면 사실적일 것 같다고 해서 추가한 부분도 있다."
 

▲영화 '비상선언' 재혁 役 이병헌/쇼박스

'비상선언'은 코로나19 시국을 겪어온 우리에게 만약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는 물음을 던진다. 실제 사례로, 2020년 코로나 펜데믹 초기에 영화에서처럼 선내 집단 감염이 발생했던 크루즈 유람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도 일단 입항은 하고 하선을 거부당한 바 있다. 사실 어떤 선택도 쉽지 않기에 영화가 끝난 후 스스로에 끊임없이 질문하게 된다.

"항상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읽는다. 내 딸이 함께 있으니까, 어떤 것이 큰 희생을 막는 것인지 알면서도 고민하고 갈등한다. 저라면 아직도 생각해보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저는 잘 모르겠다. 시나리오 처음 읽을 때 후반부 시위를 하는 장면이 나올 때는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이기심이 불러온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과장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실제 촬영하는 와중에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 그때 조금 많이 놀랐다. 영화적으로 과장한 상황이 아니었구나. 실제 이런 상황을 뉴스에서 보면서 충격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영화적인 과장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현실적인 에피소드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비상선언' 이전, 이병헌은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로 안방 시청자들을 만났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소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로 시청자를 웃기고 울렸다. 이병헌은 생소한 제주도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구사해 많은 화제를 모았다. 그는 "익숙하지 않은 사투리라서 고민하고 레슨을 받아야 하지 않겠냐 물었다. 함께 출연한 후배 중에 제주도 분이 계셨다. 그분한테 사투리가 나오는 부분만 리딩하고 체크하는 시간을 거쳐서 입에 익숙하게 연습을 했었다. 현장에서는 고두심 선배님이 있으니까 그 앞에서 연습을 해본다. 그럼 바로 조언을 해주셨다. 그게 저한테 도움이 됐다"고 했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작은 섬마을의 소소한 이야기로, 마을 주민들의 에피소드로 희로애락을 전했다. 한국적인 드라마 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에서 글로벌 TOP 10 차트에 꾸준히 이름을 올렸다. 글로벌 인기 요인을 묻자 이병헌은 "처음에는 호기심이었을 것 같다"고 했다.
 

▲영화 '비상선언' 재혁 役 이병헌/쇼박스
 

"처음에는 호기심이었을 것 같다. 아름답고 독특하네. 차에 물건을 가득 싣고 팔러 다니고, 여자들만 잠수복을 입고 전복을 따는 그런 모습이 특이할 것이라 생각했다. 되게 이국적이고 독특하고 그래서 보게 되다가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고,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아픔, 회복하는 과정 이런 것들이 우리랑 비슷하다는 생각에 계속 보게 된 심리라고 생각한다."

글로벌 히트작 '오징어 게임'을 필두로 전 세계적으로 K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사실 이병헌은 일찌기 할리우드에 진출한 월드스타다. '오징어 게임2'에 출연을 확정지었지만 또 다른 글로벌 프로젝트가 있는지 궁금했다.

이병헌은 "에이전트가 있어서 늘상 작품에 대한 논의도 하고 프로젝트 제안 받은 것들도 소통한다. 작품이 나랑 안 맞는 것 같거나, 스케줄 상 맞지 않은 경우들이 있다. 요즘에는 너무 빠르게 한국 콘텐츠 영향력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커져서 중요하고 조심해야 하는 시기인 것 같다. 질보다 양으로 승부를 보려하거나, 또 다른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는, 그래서 정말 신중하고 좋은 작품으로 승부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할리우드에서 좋은 작품이 있다면 한국의 배우가, 감독이, 주목받고 있을 때 합류하는 것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우리 나라의 좋은 작품이 웬만한 어중간한 할리우드 작품보다 잘 만들어진 콘텐츠를 하는 것이 사실은 큰 힘이 되는 세상이 된 것 같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최근 많은 배우들이 영화인으로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병헌은 남자친구를 사귀기 위해 노력하는 10대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다루는 넷플릭스 미국 오리지널 영화 '아이 빌리브 인 어 띵 콜드 러브'(I Believe In A Thing Called Love) 제작에 참여한다. 제작자 이외의 영역을 넓히는 것에 대한 생각이 있느냐는 물음에 "저한테도 그런 재능이 있었으면 좋겠다. 근데 저한테는 그런 재능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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