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W 노이슬 기자] "글을 쓴게 2018년, 2019년이다. 올드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현재 진행형 이야기더라."
지난 2016년 영화 '검사외전'으로 유쾌한 버디 플레이를 선보인 이일형 감독이 신작으로 돌아왔다. 그의 신작 '리멤버'는 '친일파 청산'을 소재로 하는 복수 액션극이다. '친일파 청산' 문제는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풀지 못할 숙제다. 감독은 '리멤버'를 통해 다시 한번 우리 사회에 화두를 던졌다.
▲영화 '리멤버' 연출한 이일형 감독/㈜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10월 26일 개봉한 '리멤버'(감독 이일형)는 가족을 모두 죽게 만든 친일파를 찾아 60년간 계획한 복수를 감행하는 알츠하이머 환자 필주(이성민)와 의도치 않게 그의 복수에 휘말리게 된 20대 절친 인규(남주혁)의 이야기로, 개봉날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본격적인 흥행을 예고했다.
이일형 감독은 전작 '검사외전'(2016) 이후 무려 6년만에 신작으로 돌아왔다. '리멤버'는 80내 노인의 복수를 그려낸 작품으로 동명의 원작을 리메이크했다. "쉬면서 우연치 않게 원작을 보게 됐다. 그 영화는 홀로코스터를 겪은 유태인 할아버지가 독일 장교를 찾아 떠나는 로드무비였다. 이걸 한국 얘기로 대입이 되겠다 생각했다. 제작사 월광에서 함께 이야기하면서 윤종빈 감독이 기획에 참여해 연출을 하게 됐다."
이 감독에 따르면 원작은 예술영화에 아깝다. 감독은 상업영화로 풀어내기 위해 고민했다. "원작에는 살인 설정이 없다. 복수의 테마지만, 할아버지의 심리를 따라간다. 길을 걷고 고민하고 실수하는 것을 반복한다. 살인을 실행하려는 순간 반전이 존재한다. 원작은 심리적인 요소가 강해서 각본은 거의 다시 쓰는 수준이었다."
여기에 주인공인 80대 노인 필주 중심으로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탄생된 '리멤버'는 일제강점기, 친일파에 의해 가족을 잃고 80평생을 살아온 노인의 복수극으로 탄생했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가 올드하다고 할 수 있는데, 반대로 모두 다 아는 이야기다. 특별히 설명하지 않아도 관객들도 아는 이야기라 풀어내는 방법을 고민했다. 복수극이라는 테마가 주는 이야기를 재밌게 풀면, 장르적으로 하고 싶은 영화 형태를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영화 '리멤버' 메인 포스터/㈜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80대 노인의 살생부 명단에 오른 이들은 현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 학자, 군인, 정치인들로 구성된 위정자들이다. "세팅할 때 상식적인 개념으로 생각했다. 그때 당시에 친일 행위를 하면서 우리 사회에 되게 위정자로 살고 있다는 인식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저는 제가 이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들과 비슷한 역사적 인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특별한 이견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전체적인 빌런을 만들었다."
조연출 때 함께한 '군도: 민란의 시대' 때부터 '검사외전'까지 감독과 함께한 이성민이 80대 노인 필주를 연기했다. "80대 노인 역이니까 많은 선배 연기자들이 계시지만, 이성민 선배가 딱이라고 생각했다. 물리적으로 격한 상황이고, 타이트 하게 진행되는데 부담되는 부분이 있었다. 분장이냐 실질적이냐를 고민했다. 이성민 선배님은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매일 3시간씩 분장하시면서 고생 많이 하셨다(웃음)."
필주의 곁에는 이 시대의 청춘을 대표하는 인규(남주혁) 캐릭터를 두었다. 인규는 절친한 할아버지 필주의 부탁으로 얼떨결에 복수전에 휘말린 인물이다. "인규는 20대 청년의 평범함을 상징하는 캐릭터다. 슬퍼하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복수를 향해 직진하는 필주에 리액션을 주는 캐릭터다. 인규가 필주를 바라보는 지점이 제가 관객과 소통하는 지점이다."
남주혁은 전작 드라마 '스타트업', '스물다섯 스물하나', 영화 '조제' 등으로 사실상 '청춘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배우다. 이일형 감독은 "캐스팅 전까지 남주혁 배우를 잘 몰랐다. 저는 '눈이 부시게'를 보고 캐스팅했다. 그때는 그런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저런 키와 외모를 가진 배우가 평범한 연기를 하면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 이후 청춘스타가 돼 있더라. 하하."
▲영화 '리멤버' 연출한 이일형 감독/㈜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앞서 이성민은 인규로 분한 남주혁이 잘해줬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감독 역시 "인규가 필주를 바라보는 지점이 제가 관객과 소통하는 지점이다. 극이 전개될 수록 필주의 정체가 드러나고 인규가 짜증을 낸다. 처음에는 놀라고 받아들이다가 부정하기도 한다. 케미가 기본이 되야 할 수 있는 리액션이었다. 남주혁씨와 이성민씨의 케미가 자연스럽게 묻어나왔다고 생각한다"고 만족해했다.
'복수극' 장르의 특성에 박진감 넘치는 카체이싱과 맨손 액션 씬을 더하고 코믹함을 더하며 다채로운 재미를 안겼다. "우리 영화에 빨간 포르쉐가 나온다. 모든 행동이 기본적으로 느린데 오직 그 차를 탈때 속도감과 박진감이 있다고 생각해서 강한 임팩트를 받기 원했다. 배기음 같은 부분을 신경써서 작업했다. 상황들은 느리지만, 차를 타면 속도감을 느끼길 바랐다."
특히 관객들은 사채업자(양현민)이 등장하는 씬에서 빵빵 웃음을 터뜨렸다. 이 감독은 "양현민씨가 출연한 장면은 심각하게 진행될 수 있는 부분들을 중간중간 환기시키는 느낌으로 생각했다. 수축이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본 분량만큼 나와서 편집된 것도 없다. 극을 환기시킬 목적이었는데 그 장면에서 많이들 웃어주시더라. '그 정도까지 웃긴가' 싶은 생각까지 들 정도로 좋아해주시더라."
필주는 80대의 노인에도 불구하고 MZ세대와 소통하는 인물이다. 이일형 감독은 신조어 작업에 대해 "대본을 2019년도에 썼다. '킹받네'라는 신조어도 지금은 올드해졌다. 촬영할 때 남주혁씨가 '존맛탱'(JMT) 등의 단어는 이미 너무 지나갔다고 그러더라. 빨리 찍자고 했는데 개봉이 미뤄지면서 2년이 넘었다. '플렉스', '킹받네' 라는 단어가 그때 나와서 나름 공들여서 썼었다. 그걸 쓰는 제 모습이 너무 부담됐었다"고 회상했다.
▲영화 '리멤버' 연출한 이일형 감독/㈜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필주가 60여년동안 복수를 준비한 만큼, 복수의 대상이 되는 김치덕 장군(박근형), 재벌이자 대기업 회장 정백진(송영창), 양성익 교수(문창길), 일본 자위대 퇴역 장성이자 일본 상임 고문인 토조 히사시(박병호) 역은 기라성 같은 대선배 박근형, 송영창, 문창길, 박병호가 조연 라인업을 완성했다.
"저한테는 선배라고 붙이기 힘든 배우분들이다. 엄청난 경력과 내공을 지닌 배우와 소통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너무 쿨하셨다. 질문도 많이 해주셨다. 첫 리딩 끝나고 고사 들어갈 때 앉아있었다. 그때 박근형 선생님께서 계속 저를 보더라. 약간 무서웠다. '감독님 잠깐만요' 하더니 불렀다. '내 연기가 맞는지 궁금했다'고 하시더라. 연기에 대해 말해달라고. 오랫동안 연기하신 배우분들은 뭔가 다르구나 그때 생각했다. 소통하는데 부담도 없었다. 쉴때는 옛날 충무로 이야기 들려주시고 그랬다(웃음)."
필주의 복수심의 깊이를 보여주며 일제강점기 시대도 스크린에 그려진다. "일제강점기 시대는 필주의 과거 정보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이 영화가 달리다가 그 순간만큼은 멈춘다. 아련한 느낌으로 촬영했다. 슬프지만 아련함. 그런 느낌으로 수채화처럼 느껴졌으면 했다."
동시에 감독은 필주를 공감하게 하며 친일파 청산의 순간에 통쾌함을 선사한다. 기존의 상업영화 속 방식들과는 달리, 우직하고 뚝심 있는 연출은 우회하는 법이 없다. "시대극이었다면 저도 다른 방법을 쓸 수 있었을 것 같다. 근데 정확하게 개인의 복수극이다. '존 윅', '테이큰' 같은 영화다. 어떤 행위에 멈춤이 없다. 일단 필주의 감정은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거기에 친일파라는 감정이 들어온 것이다. 그 감정에 있어서 멈춤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 큰 감정을 받아줘야하기 때문에 고속도로를 내달리는 느낌으로 연출했다."
▲영화 '리멤버' 회장 폭탄 연출씬 스틸/㈜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2020년 6월 크랭크업, 코로나19 여파로 개봉이 미뤄졌지만, 우연치 않게 '리멤버'의 개봉일은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일본 제국의 제4, 6대 내무경, 초대 내각총리대신, 초대 귀족원 의장, 초대 추밀원 의장, 초대 한국통감을 역임한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사살한 의거날인 10월 26일이다. 또한 극 중 필주가 일본 상임 고문인 토조 히사시에 복수하는 연회장 폭탄 연출씬은 마치 우리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받쳤던 의사들의 도시락 폭탄 의거를 연상케 한다.
"개봉날은 의도한 적은 없다. 이날이 '문화의 날'이라서 결정된 것이다. 의도한 부분은 1도 없다. 도시락 폭탄 연상 역시 의도했다기 보다는 은유는 있을 수 있다. 배우들에 제가 제안한 것은 아니었다. 배우의 몫이 있으니까."
이일형 감독의 차기작은 현재 각본 작업 단계다. 2016년 35세의 나이로 첫 상업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감독은 '리멤버'를 촬영하며 한 단계 성장했다. "'검사외전'은 흥행을 노리고 연출하지 않았다. 당시는 데뷔 자체가 감사했다. 어느 순간 개봉하고 흥행하면서 정말 시키는대로 했던 것 같다.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 후에는 자아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쉬면서 고민을 하다가 이 영화를 선택했다."
이어 감독은 "지금은 시간이 지나고 경험을 가지면서 나름 영화에 대해 설명하고 책임지는 부분이 생겼다. '검사외던' 찍을 때 촬영 중에 시간이 남아서 더 찍으라고 하더라. 뭘 찍어야할지 모르겠더라. 뭐가 부족해서 그런가 생각을 했었다. 그때는 첫 연출작이라 불안했다. 이번에는 찍다보니 그런 것들이 보이더라. 순간순간 부족함이 보이고, 시간을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연출하면서 기술적인 부분이 달라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감독은 '리멤버' 예비 관객들에 "제가 이 글을 쓴게 2018년, 2019년이다. 올드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현재 진행형 이야기더라. 이야기가 가진 주제, 이야기 적인 것들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마련하려고 노력했다. 영화적, 장르적 장치들을 즐기면서 2시간 동안 가볍게 생각하면서 보셨으면 했다. 연출하면서 강요하려고 한 부분은 전혀 없다. 편하게 봐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