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경아의 딸' 김정은 감독 "경아에 대한 영감 엄마에게서 많이 받았다"

임가을 기자 / 기사승인 : 2023-06-15 15: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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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인디스토리


[스포츠W 임가을 기자] “두 사람을 응원할 수 있는 마음이 들었으면 한다. 연수를 우리가 오해하고, 어떤 때는 비난했던 거에 대해서 미안한 감정이 느껴졌으면 좋지 않을까.”

김정은 감독의 첫 장편 영화 ‘경아의 딸’은 연수(하윤경)의 헤어진 남자친구가 둘의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하고, 그로 인해 엄마인 경아(김정영)와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며 일어나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디지털 성폭력을 주제로 하고 있는 영화는 모녀 관계라는 소재를 더해 2차 가해와 가부장제에 대해 고찰하고, 피해자의 일상 회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스포츠W는 영화 ‘경아의 딸’의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모처의 카페에서 김정은 감독과 만남을 가졌다.

‘경아의 딸’은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CGV아트하우스상 배급지원상과 왓챠가 주목한 장편상을 수상했으며 제27회 아이치국제여성영화제에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처음으로 연출한 장편 영화가 규모가 큰 국내 영화제에서 2관왕을 달성하고 국제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일은 괄목할 만한 성과다.

“되게 진부한 말이지만(웃음) 초청해 주신 것만으로도 굉장히 기뻤다. 코로나 시국에 만든 영화이기도 했고,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을 때도 시국이 언제 풀릴지 미지수라 과연 관객들을 만날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는데 관객 분들한테 영화를 보일 수 있었고, 또 감사하게도 큰 상을 주셨다.”

특히 최근 개최된 전주국제영화제의 경우 감독이 ‘경아의 딸’을 감상한 관객과 대면으로 만날 수 있는 첫 번째 창구가 되어주었다. 수상 기회는 물론, 관객이 영화에 대해 가진 궁금증과 감상평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 전주국제영화제에 대해 김 감독은 영화제에서 관객과의 만남을 진행하며 영화에 대한 질문보다는 영화를 감상한 소감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관객분들이 이제 관람평, 영화를 보신 소감을 많이 말씀을 해 주셨다.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걱정하고 염려한 부분이 어려운 소재의 영화고, 때문에 영화를 따뜻한 시각으로 그리려고 애썼는데 영화를 관람하신 분들이 ‘위로를 많이 받았다’, ‘너무 공감됐다’ 이런 평들을 남겨주셔서 인상깊었다.”

김 감독은 개인의 불법 촬영물을 동의 없이 인터넷 사이트에 유포하고, 웹하드사와 헤비업로더, 그리고 디지털 장의사 업체가 유착관계를 맺으며 막대한 수익을 얻는 ‘웹하드 카르텔’의 존재가 알려진 2018년부터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디지털 성범죄라는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든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던 김 감독에게 ‘경아의 딸’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되어준 것은 디지털 성범죄를 다룬 한 다큐멘터리였다.

“우연히 디지털 성범죄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다. 피해자들을 돕는 활동가들, ‘한국 사이버 성폭력 대응 센터’라는 민간 단체에 대해서 다룬 다큐였다. 그들이 하는 발표회나 추모 행사, 피해자들을 위해 행동하는 이들을 지켜보게 됐고 ‘이걸 내가 영화로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더 많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이때 처음 했던 것 같다.”

그간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제작된 창작물이 없지는 않았지만, ‘경아의 딸’은 디지털 성범죄를 모녀 관계라는 소재와 함께 그리는 것으로 차별화를 뒀다. 김 감독은 ‘경아의 딸’의 초고에는 모녀 관계에 관한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원래는 연수가 혼자 주인공이고 무용을 하는 학생인데 남자친구가 성관계 영상을 유출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야기가 단선적으로 흘러가고 주인공이 겪는 고통도 일차원 적으로 그려지다 보니 ‘시나리오 이렇게 흘러가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 사진 : ㈜인디스토리
 

그래서 ‘내가 만약 연수라면 가장 좀 두렵고 무서운 대상이 누굴까’하고 고민 했을 때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는 같은 여성이고, 어떻게 보면 딸한테 가까운 존재라서 기댈 수 있는 존재인데 왜 엄마가 떠올랐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모녀의 이야기로 풀어간다면 보다 많은 분들이 공감하면서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더불어서 엄마가 딸한테 강요하는 순결과 여성성 같은 것들을 함께 다뤄서 디지털 성범죄 문제랑 엮어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영화가 그리고 있는 경아는 굉장히 보편적인 한국 사회의 어머니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인물인 경아라는 캐릭터를 구축할 때 어디서 영감을 받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김 감독은 자신의 엄마라고 말하며 웃음을 보였다.

“집안이 가톨릭 집안이고 보수적이다. 근데 꼭 우리 엄마만 그런 게 아니고 내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다 비슷한 분위기와 환경 속에서 그런 엄마의 통제를 받으면서 자랐다. 특히 대학교 때는 서로가 서로를 도와줬다. 친구의 엄마한테서 전화가 와서 ‘너 혹시 누구랑 같이 있니’ 하고 물어보면 ‘저랑 같이 있어요’ 하고 거짓말 해주고 …

이런 걸 생각하면 우리 집만의 분위기가 아니고 많은 집안에서 여전히 보수적으로 딸을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게 있는 것 같다. 그런 내 친구들이나 어렸을 때의 경험들을 모티브 삼아서 경아라는 인물을 만들었던 것 같다.”

김 감독의 어머니 역시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다고 한다.

 

"(영화에 대해) 아신다. 시나리오 취재를 엄마를 대상으로도 했기 때문에. 내 어떤 감정에서 시작한 거지만 허구의 이야기니까 크게 내색을 안 하시는 건지. 조금 심란해 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웃음) 큰 반응은 없었는데 영화 보시고 감동적이었다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특히 영화 마지막에 엄마가 딸한테 '엄마 집에 한번 와줄래'라는 대사를 한다. 그 대사가 많이 뭉클하셨다고 하더라. 그 말씀에 많은 것들이 담겨있었던 것 같다.

 

김 감독은 ‘경아의 딸’의 완성된 편집본을 촬영이 끝나고 두 달 뒤에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극장에 상영 될 ‘경아의 딸’의 편집본을 처음 봤을 때는 아쉬운 것들이 많이 보였다고 말했다.

“제일 속상한 건 영화를 찍을 때는 감독인 나 스스로도 이 영화에 위로를 받으려고 만든 것도 있는데 막상 지난 2, 3년 동안 영화를 만들고, 최종 편집본을 보게 됐는데 객관화가 안 됐다. 너무 많이 보다 보니까 관객으로서 안 봐지는 거다. 그래서 내가 제일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었지만 처음 편집본 봤을 때도 뭔가 잘 만들었다, 벅차다 이런 감정 보다는 이 장면에서 이런 게 아쉽다, 어떻게 보완을 하지? 이런 편집적인 부분에 대한 생각만 했던 것 같다.”

그동안 단편과 장편을 통틀어 사회와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영화에 담아온 김 감독이 이후에 도전해 보고 싶은 장르는 다름아닌 코미디다.

“너무 일관되게 얘기를 하는데(웃음) 따뜻한 우리 사회의 이야기, 세상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으면서도 약간의 유쾌함이 있는, 관객이 좀 더 편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 사진 : ㈜인디스토리


김 감독은 관객이 ‘경아의 딸’을 감상할 때 연수는 물론 경아의 삶도 이해하고 공감하기를 바라며 두 사람의 앞날이나 관계 회복에 관심을 기울여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연수 같은 경우는 이런 큰 범죄의 피해자다. 다시 일상을 회복하는 게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여전히 많은 응원이 필요하다. 영화를 감상한 후에 두 사람을 응원할 수 있는 마음이 들었으면 한다. 또한 우리가 연수를 오해하고 어떤 때는 비난했던 거에 대해서 관객들 스스로도 미안한 감정이 느껴지면 좋지 않을까.”

 

인터뷰②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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