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W 노이슬 기자] 학교폭력 문제는 언제 들어도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이야기다. '학교폭력 근절'이라고 외치지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없는게 현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인다면 고통받는 아이들이 줄어들지 않을까.
지난달 27일 개봉한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감독 김지훈)의 감독, 배우, 제작진을 비롯한 모든 스태프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당초 2018년 개봉 예정이었으나 출연배우 논란, 투자 배급 이슈 등으로 난항 끝에 관객들을 만나게 됐다. 결코 외면해서는 안되는 학교폭력 문제를 기존의 피해자의 아픔이 아닌, 가해자의 입장으로 그려내며 공분을 자아냈다.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강호창 役 설경구/(주)마인드마크 |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스스로 몸을 던진 한 학생의 편지에 남겨진 4명의 이름, 가해자로 지목된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사건을 은폐하려는 부모들의 추악한 민낯을 그린 작품으로, 일본의 작가이자 현직 고교 교사였던 하타사와 세이고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지난해 영화 '자산어보'로 각종 국내외 시상식을 휩쓸며 또 한번 '믿고 보는 배우'임을 입증한 설경구가 가해자 부모 중 강호중 역으로 분했다.
개봉에 앞서 스포츠W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설경구는 "학교폭력 이야기지만 '부모의 이야기'다. 부모 역할에 대한 이야기. 아이들의 문제로 단순하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영화가 가해자의 시선을 포인트로 맞춰진 것 같다. 2017년에 끝나고 5년만에 개봉하지만 저는 남다르진 않았다. 오히려 과정을 들으면서 '이 영화가 어렵구나' 생각했다. 흥분되지는 않았다"라고 개봉 소감을 전했다.
설경구가 분한 강호중은 접견 전문 변호사로 일반 변호사와는 달리, 법정에 서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는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추악하고 이기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강호창은 정의롭지 못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머리로는 정의롭고 의연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는게 부모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며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설명했다.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강호창 役 설경구/(주)마인드마크 |
"가해자의 시선으로 입장과 말과 행동을 보여준다고 하지만, 저는 가해자를 보는데도 피해자에 이입되더라. 나도 모르게 문소리, 천우희씨에 감정 이입이 돼 끝나고 나서도 눈이 빨개졌더라. 안타깝고 분노하고 속상해하면서 본 작품이다. 관객들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가장 가슴이 아팠던 장면은 피해자 건우 엄마를 연기한 문소리가 출연한 장면들이다. "문소리씨가 건우 뺨 때릴 때, 중환자실 씬, 학교에 영구차가 못 들어올 때 터지더라. 그때는 정말 답답하고 속상하고 분노했다. 참으려고 했는데 안타까움과 화남이 뒤섞였었다."
설경구는 "저는 이 영화가 가해자 부모들의 민낯을 보여주면서 어떤 선택을 할까를 던져주는 게 아니라 악마화 돼 가는 과정을 고발하는 영화라 생각한다. 좀 극대화 시켜서 캐릭터들이 악마가 되고 있는데 누구 하나 그러지 말자 자수하자고 하는 부모가 한명도 없이 극단으로 간다. 좀 더 강력한 메시지를 위한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부모가 그렇지 않겠지만, 우리 영화는 좀 더 자극적으로 던져줌으로서 강렬한 메시지를 주려고 그런 세팅이 된 것 같다. 이 이후의 삶이 평탄하지 않을 것 같다"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강호창 役 설경구/(주)마인드마크 |
설경구가 택한 것은 내 아들을 믿는 아버지의 '억울함'이다.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저는 또 캐릭터에 충실해야 하니 보는 분들로 하여금 분노를 유발하게 해야하고 그래서 충실하다보니 억울함에 집중했다. 우리 아이의 억울함. 정말 비겁한 대사가 있다. 가해자로 지목된 아이들 이름 중 강한결, 우리 아이 이름이 맨 마지막에 있다고 용서해줄 수 있지 않았냐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한다. 강호창이 움직일 수 있는 힘은 억울함인 것 같다.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하는. 그리고 가해 영상에도 우리 아이가 없다. 우리 아이를 믿고 또 믿어야 하는 사람이다. 가해자의 부모이지만 가해자가 아니라 아이의 부모 입장에서 연기하는게 우리 영화의 부모들이다."
그러면서 설경구는 "강호창의 모습에서 이해 안되는 부분도, 그렇다고 이해를 막 한 부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대답이 모호한데 내 머리속도 복잡하다"고 덧붙였다.
설경구의 아들을 믿고자 하는 간절함은 극 중 법정씬에서 드러난다. 해당 장면 속 대사는 설경구가 직접 대사를 써 화제가 됐다. "엔딩 법정씬에서 제가 여태까지 강호창을 연기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정리 하고 싶어서 써보고 싶었다. 최종 목적은 아들을 지켜야한다는 것이다. 이 법정에서 호소하고 재판장의 마음을 돌리고자 하는게 최종 목적이다. 포인트를 두고 어떤 씬에 집중하지 않았다. 맡기면서 흐르는대로 두려고 한 것 같다."
영화는 엔딩에서 반전을 안긴다. 해당 씬은 김지훈 감독 역시 어려워했던 장면이다. 완성된 영화에 나온 장면은 재촬영본이다. "산에 올라가는 장면을 길게 찍었다. 드론 들고 울면서 올라가는 장면을 찍었다. 건우가 갔던 길을 강호창이 가면서 똑같이 행동하고 울고 그랬다. 북받쳐서 주저앉는 것을 반복하면서 울면서 올라갔다. 제 기억으로는 울면서 촬영을 마무리했는데 이 감정이 아닌거 같아서 시간이 흐른 후에 재촬영을 했다. 그때는 강호창의 마음으로 임했다. 강호창의 그 선택과 함께 강호창의 이후의 삶은 영화가 주는 메시지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강호창의 지옥이 시작될 것 같다. 그 순간부터 지옥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강호창, 강한결 스틸/(주)마인드마크 |
런닝타임 내내 가해자 부모들 중 병원 이사장이자, 도윤재의 아빠를 연기한 오달수는 리얼한 연기 덕분에 배우조차도 밉게 보인다. 하지만 영화의 엔딩 속 강호창의 모습은 반전을 선사하며 극 중 최고의 빌런으로 등극한다. 설경구 역시 이 말에 동의했다. "저는 우리 영화에서 강호창이 제일 나쁜 것 같다. 결과적인 것이지만 결국 본인만 속이면 된다는 마음 가짐을 갖는다. 그걸 아는 사람은 본인밖에 없다. 그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았다. 그 마음이 가장 나쁜 캐릭터로 만드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설경구는 "이 영화가 세상을 바꾸진 않을 것이다. 만듦새를 떠나서 여전히 학폭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고 어디에선가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며 안타까워했다.
"촬영하면서 가장 많이 한 질문은 '진짜같애?'였다. 살면서 인간으로서 가치는 죽을 때까지 숙제를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이지, 완성형의 인간이 아니다 계속 실수하고 후회하고 반성하고 좀 더 나아지고 사는 것이다. 나도 잘 갖춰진 인간은 아니다. 늘 실수하고 산다. 조금씩 나아지려고 살고 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늘 반성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 같다. 나이를 한살 한살 먹어가면서 시간이 느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