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 은폐, 결탁설' 등 공문에 자극적 표현 수두룩…"조합을 범죄집단으로 본 것" 지적
조합 19일 긴급 이사회 개최해 징계 예정…이미 정리된 사안 번복해 ‘짬짜미’ 의혹
▲한남 4구역 투시도. (이미지=서울시 제공) |
[스포츠W 이일용 기자] 서울 용산구 한남4구역 재개발 조합과의 유착설이 나돌았던 현대건설이 이번엔 조합 인사권을 침해한 정황이 드러나 조합원들로부터 공분을 사고 있다.
더욱이 한남4구역 조합이 현대건설의 요구에 응하면서 추석 명절 직후 이사회를 개최해 표적이 된 총무이사 등에 대해 징계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져 조합 내 갈등이 격화되는 모습이다.
한편 업계에서는 현대건설이 한남4구역에서 삼성물산과의 맞대결에서 열세를 느끼자 단순 해프닝으로 정리된 사안을 새삼 들추어 공정한 경쟁입찰을 위해 노력해온 상근이사들의 징계를 압박하며 조합을 길들이려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14일 도시정비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이달 9일 한남4구역 재개발 조합에 '공정성 위반사항에 대한 진상규명 및 조치 요청의 건' 제하의 공문을 보내 협박성 표현과 함께 노골적으로 특정 상근이사에 대한 인사조치를 요구했다.
현대건설은 공문에서 "상근이사가 조합원의 이익을 보장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의 법률자문서를 임의로 삭제해 은폐한 사건이 있었다"며 "조합이 어떠한 제재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어 경쟁사와 조합의 결탁설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고 했다.
▲ 이달 9일 현대건설이 한남 4구역 조합에 보낸 공문 일부 / 조합원 제공 |
그러면서 "현대건설은 이러한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은 채 입찰절차를 진행하게 되면 공정한 기준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기에 당사는 입찰 여부를 심사숙고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철저한 진상규명과 향후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대응방안을 신속히 마련하라"고 덧붙였다.
현대건설의 이 같은 공문이 공개되자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기가 막힌다", "우리를 무시한 처사", "한남4구역을 어떻게 봤길래 협박을 하는 거냐" 등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
현대건설의 공문을 접한 한 조합원은 "현대건설이 선동, 은폐, 결탁설 등 상당히 불쾌한 단어들을 일부러 골라 사용한 것 같다"며 "대의원회 부결은 경쟁사의 선동이 아닌 우리가 경쟁입찰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미 해명이 끝난 사안에 대해 '은폐'라고 묘사한 것이나, '결탁설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등의 표현은 조합을 범죄집단으로 본 것이나 다름없다"며 "철저한 진상규명은 이미 이뤄졌고, '입찰 여부를 더욱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협박에 혀를 내둘렀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곧바로 한남4구역 조합이 회신한 공문이 공개되면서 파장이 더욱 커지고 있다. 외압에 순순히 굴복한 꼴이 됐다는 것이다.
현대건설에 회신한 공문에서 조합은 "감사가 관련 사안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으며, 그 내용을 기초로 9월 19일 이사회를 개최할 것"이라며 "사안의 내용 확인과 당사자 소명 그리고 이사회 의결로써 그 사안에 대해 조치가 있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 이달 12일 한남 4구역 조합이 현대건설 공문에 대한 회신 발췌 / 조합원 제공 |
그러면서 조합은 "이사회 의결 내용을 차후 전달하겠다"며 "조합의 시공자 선정과 관련해 현대건설의 그동안의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을 앞으로도 계속해 주길 바라며, 좋은 입찰 제안서로 만나길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익명의 한 조합원은 "이미 오해가 있었던 부분에 대해 당사자들이 화해를 하고 한마음으로 힘을 합쳐 사업에 매진하겠다고 조합원들을 안심시켜 놓고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새삼 이 문제에 대해 트집 잡는 현대건설도 이해하기 힘들지만, 조합이 갑자기 명절 연휴 다음날인 19일에 이사회를 열어 인사 조치를 논의하겠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조합원들은 또 다시 이렇게 일을 벌린다는 건 조합장과 현대건설 간 짬짜미가 있다는 얘기밖에 안된다"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조합 관계자가 언급한 '총무이사 사건'은 조합장의 '공개 저격'을 통해 드러났다.
한남4구역 조합은 지난 달 23일 제115차 이사회를 개최하고, 조합장이 조합 자료 유출과 법률검토 메일 삭제와 관련한 문제를 지적했다.
앞서 한남4구역 대의원회는 일각에서 제기된 '독소조항'이 포함된 시공사선정계획안을 부결시켰고, 이 때문에 조합 상근 임원들을 비롯한 이사 및 대의원들은 수정안을 마련했다.
조합은 대의원회 부결과정을 거치며 제기된 조합원들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하고 변호사 자문을 거쳐 수정안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수정안에 대해 혹시 모를 오류 등을 확인하기 위해 조합은 법률검토를 의뢰했고, 8월 9일 오후 6시 30분경 1차 법률의견서를 받았다.
8월 9일이 금요일이었기 때문에, 조합 총무이사는 주말 이후 월요일에 조합장에게 보고하기 위한 법률의견서를 출력해 놓은 뒤, 해당 문서를 휴지통으로 옮겨두었다.
▲ 한남 4구역 조합 총무이사 소명서 일부 / 조합원 제공 |
이에 대해 조합 총무이사는 "이른 아침에 출근하는 조합 직원이 항상 메일함을 확인해 조합업무방에 올리기 때문에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에 보고 후 공유하고자 했다"며 "(법무법인의 수정 전) 의견서 공유로 혼선이 생길 가능성을 우려해서 였다"고 설명했다.
휴지통에 넣어두면 한 달 이내에는 바로 원상복구가 가능하기 때문에, 일시 보관에 대한 개념이지 일각에서 제기하는 '법률검토 메일 삭제'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 조합은 8월 13일 최종 법률의견서를 받았는데, 14일 열린 이사간담회에서는 8월 9일자 의견서와 8월 13일자 의견서가 혼재되어 배포되기도 했다.
조합 총무이사는 "8월 9일 변호사와 통화 도중 변호사가 조합장에게 '퇴근시간이 지나서야 보내 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긴급한 일이 아닌 것으로 생각해 월요일 아침에 출근해 보고할 생각이었고, 늦게라도 전화로 일단 상황보고를 했으면 조합장도 오해가 없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후 조합 내에서는 총무이사와 관리이사 등이 그간 조합 일을 하면서 보여준 공정한 업무 집행과 성실함 등을 볼때 일련의 사건이 보여주는 개연성을 감안하면 단순 해프닝에 지나지 않는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실제 조합장도 소란을 일으킨 데 사과하고, 공식적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 같은 공문이 오간 것에 대해 '현대건설의 조급함이 만들어 낸 코미디'라고 입을 모았다.
한 전문가는 "건설업계 내부에선 한남4구역에서 보여주고 있는 현대건설의 행보에 대해 열패감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결론 지었다"며 "현대건설 입장에선 한남4구역과 관련한 판을 다 짜놨는데, 상대하기 힘든 삼성물산이 갑자기 등장해 눈에 거슬리는 상황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상식적으로 조합원을 위해서는 경쟁입찰이 당연히 유리한 것"이라며 "조합원들은 누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갇히는 것이 아닌, 본질을 꿰뚫어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남4구역 조합 임원과 정비업체 임원간 사회관계망 대화 내용 일부 / 조합원 제공 |
한편, 한남4구역 내에서는 최근 현대건설 홍보요원이 배포한 '한남 2·3·4구역 입찰지침 비교표'가 조합 정비업체가 작성한 문서와 동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8월 6일 오전 조합 정비업체가 조합장과 상근이사들에게만 배포한 문서와 글씨체 외에는 모든 것이 동일해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조합의 정비업체와 현대건설이 내통하고 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한 관계자는 "조합 정비업체는 '8월 6일 회의할 때 책상 위 자료가 펼쳐져 있었는 지 없었는 지가 기억나지 않는다'. ‘회의 자리에 누가 서 있었던 걸 봤다’고 설명했는데 이는 유출 책임을 그날 오후 간담회에 참석했던 대의원에게 떠넘기려는 발언이 아니냐며 정비업체와 특정 건설사간 커넥션도 의심된다”고 말했다.
현대건설 측은 "8월 6일 간담회 참석 대의원 중 한 명이 조합사무실에서 가져온 문서를 당사에 전해줬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