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연합뉴스 |
"직접 보면 깜짝 놀랄걸요? 일반인 남자들은 상대도 안 될 겁니다."
제103회 울산 전국체육대회 족구 예선전이 열린 지난 8일 오전 울산 현대예술관 체육관.
현장에서 경기를 준비하던 대한민국족구협회 이상훈 경기위원은 여성부 선수들의 경기력에 놀라지 말라고 언질을 줬다.
이런 호언장담처럼 오전 11시부터 시작한 대구와 광주의 경기에서는 발로 공을 강하게 내려칠 때 나는 경쾌한 파열음이 쉴 새 없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1세트 14-9로 앞선 대구의 공격수 이도희(38)가 네트 앞에서 상체를 180도 가까이 비틀며 공중으로 뛰어오르더니, 반대쪽 코트로 날카로운 스파이크를 찍었다.
예리한 궤적에 광주 선수들이 반응하지 못하자 세트를 가져간 대구 선수들의 기합이 체육관을 가득 메웠다.
족구 경력이 20년이라는 관중 박모씨(52)는 이를 지켜보더니 "저건 나도 못 받아낸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광주의 에이스 이수경(27)도 발을 얼굴 높이까지 쭉 뻗어 올려 상대 코트 모서리에 강스파이크를 여러 차례 꽂으며 맞섰다.
그러나 대구 선수들의 물샐틈없는 수비에 스파이크 횟수가 많아지면서 이수경이 지쳤고 점차 공의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결국 2세트도 15-7로 가져간 대구가 이번 체전에서 시범 '첫선'을 보인 족구 여자일반부 8강에 진출했다.
시범 종목으로 지정된 족구는 남자 일반부 14개 팀과 여자 일반부 16개 팀으로 나뉘어 9일까지 이틀간 진행된다.
다음 라운드로 팀을 올려놓은 이도희는 경기 후 "시범 종목으로 올해 처음 체전에 들어온 만큼 더 대회에서 잘하고 싶은 욕심이 난다"며 투지를 불태웠다.
장교 출신 이도희는 군에서 족구를 접했다.
▲ 이도희(아래쪽 오른편)와 대구 선수단(사진: 연합뉴스) |
이도희는 "그때는 계급이 높은 분들이 있어서 일종의 '접대 족구'를 했다"며 "그때는 봐주면서 할 수밖에 없었다"고 웃었다.
그는 족구가 더는 '아저씨들의 스포츠'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이도희는 "여자들도 요즘에는 힘이 많이 강해졌고, 기술도 좋아졌다"며 "잘하는 여성들은 선수급 남성과는 비교할 수 없어도 일반 남성과는 비등한 경기를 한다"고 강조했다.
분전한 광주의 이수경도 이에 동의했다.
이수경은 "족구가 남자의 운동이라는 건 이제 옛말"이라며 "군대에서 공 좀 찼다면서 팀에 들어오는 분들이 오히려 처음에 경기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어한다"고 웃었다.
두 사람은 족구의 매력으로 생활 스포츠로서 접근성과 함께 부상 위험이 적다는 점을 꼽았다.
이수경은 "남성분들 보면 60, 70대인 분들도 꾸준히 하시는데 다치는 게 없다"며 "적당히 뛰어야 하는 운동이라 건강에도 굉장히 좋다"고 힘줘 말했다.
이도희는 한술 더 떠 "확실히 돈이 안 든다"고 말해 인터뷰를 지켜보던 대구 대표팀 동료들을 폭소케 했다.
그는 "신발 하나만 있으면 된다"며 "내가 부족해도 동료가 도와줄 수 있는 종목이다. 못해도 쉽게 접근해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축구와 다르게 몸싸움이 없다는 점도 크다"며 "다치지 않고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운동"이라며 "규칙도 간단하다"고 덧붙였다.
그 말처럼 족구 규칙은 다른 구기 종목보다 간단하다.
4명이 팀을 이뤄 무릎 아래 발과 머리만 이용해 공을 상대 코트로 넘기면 된다.
15점을 내면 한 세트를 가져가며, 두 세트를 따면 이긴다.
몸싸움이 없는 덕에 각종 반칙 상황을 규정해야 하는 축구, 농구 등 종목보다 쉽게 경기를 이해할 수 있다.
이날 경기를 지켜본 유경아 대한민국족구협회 여성이사도 족구가 '서민 스포츠'라는 점을 강조했다.
장비를 마련하는 데 드는 부담이 적고, 연습만 꾸준히 하면 여성도 훌륭한 기량을 선보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14년간 족구를 했다는 유 이사의 바람은 더 많은 여성이 족구의 매력에 빠지는 일이다.
유 이사는 "처음 족구를 했을 때는 여성팀이 없어 남자들 사이에서 뛰었다"며 "최근 여성팀이 늘어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 승리한 대구 선수들만 봐도 일반 남성들은 이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많은 여성분이 족구의 매력을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