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께 금메달 받는 박혜정(사진: 연합뉴스) |
국내 무대는 물론이고 세계 주니어에서도 적수가 없는 박혜정(19·안산공고)에게도 '포스트 장미란'이라는 수식어가 주는 부담감은 꽤 컸다.
이런 부담감은 슬럼프로 이어졌다.
박혜정은 8일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03회 전국체육대회 역도 여자 최중량급(87㎏ 이상)에서 인상 124㎏, 용상 161㎏, 합계 285㎏을 들어 '손쉽게' 금메달 3개를 목에 건 뒤 "슬럼프라는 걸 인식하지도 못했는데, 지나고 보니 내가 슬럼프를 겪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전국체전에서 개인 최고인 합계 290㎏(인상 124㎏, 용상 166㎏)을 든 박혜정은 "2022년에는 합계 300㎏에 도전하겠다"고 호기롭게 말했다.
1년 전을 떠올리던 박혜정은 "그땐 너무 당당하기만 했다. 지금은 소심해졌다"고 웃었다.
박혜정의 합계 개인 최고 기록은 여전히 1년 전 세운 290㎏이다.
기록이 오르지 않아도 세계 주니어 무대를 평정했다.
올해 박혜정은 5월 그리스 헤라클리온에서 벌인 세계주니어선수권(인상 120㎏, 용상 161㎏, 합계 281㎏)과 7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치른 아시아주니어선수권(인상 115㎏, 용상 155㎏, 합계 270㎏)에서 모두 우승했다.
그러나 박혜정의 기준은 '자신'이었다. 합계 기록이 270㎏까지 떨어졌을 때는 우승을 하고도 자책했다.
시행착오를 겪은 박혜정은 더 단단해졌다.
그는 "진천선수촌에서 오래 생활하고, 국제대회도 짧은 시간 안에 두 번 치르는 등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것 같다.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며 "이제는 몸도 마음도 조금 자란 것 같다"고 말했다.
기록이 박혜정의 반등을 말해준다.
이날 박혜정은 실패하긴 했지만, 용상에서 자신이 보유한 한국 기록(166㎏)보다 높은 167㎏에 도전했다.
"해보자"라고 외치고 플랫폼에 들어섰지만 아쉽게 바벨을 놓친 박혜정은 "한국 기록에 도전할 수 있을 정도로 기량을 회복했다. 아직 대회가 더 남았으니, 다시 용상 한국 기록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올해 12월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2022 세계역도선수권대회가 열린다.
'세계주니어선수권 챔피언' 박혜정이 이제 세계 시니어 무대 정상을 겨눈다.
현재 시니어 무대에서도 세계 기록(합계 335㎏)을 보유한 리원원(중국)을 제외하면 박혜정을 위협할 상대는 없다.
박혜정은 "내가 많이 겸손해지긴 했지만, 올해 목표로 했던 합계 300㎏에 다시 도전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크다"고 말했다.
내년에 박혜정은 실업(고양시청 입단 예정) 무대에 서고, 첫 국제 종합대회(항저우 아시안게임)에도 나선다.
박혜정은 '계단식 성장'을 예고했다.
그는 "(장미란 선배가 뛰었던) 고양시청에서 더 성장해서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파리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겠다. 파리올림픽은 메달 색깔에 관계없이 시상대에만 서도 내게 큰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며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노릴 수 있는 선수가 되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침착하게 인터뷰를 이어가던 박혜정은 '어머니'가 화두에 오르자 눈시울을 붉혔다.
대한역도연맹은 2018년부터 전국체전과 소년체전 시상을 부모 또는 지도자에게 부탁한다.
하지만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고등부로 축소해서 열린 전국체전에서는 '가족 또는 지도자 시상식'을 열지 못했다.
지난해 전국체전 3관왕에 올랐을 때 담담하게 메달을 걸었던 박혜정은 이날 어머니 남현희 씨로부터 메달을 받은 뒤에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박혜정은 "엄마라는 단어는 눈물 버튼"이라며 "어머니께 자랑스러운 딸이 되겠다"고 했다.
남현희 씨도 "딸이 정말 대견하다. 딸에게 메달을 걸어줄 기회를 주신 대한역도연맹에 정말 감사하다"며 눈물을 꾹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