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다윤(사진: 대한육상연맹·STN스포츠 제공) |
박다윤(19·서울대)은 2022 전국종별육상경기선수권대회 여자 대학부 200m 결선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뒤 깜짝 놀랐다.
"중간고사 기간이어서 훈련량이 충분하지 않았는데 기록(25초33)이 잘 나왔더라고요. 더구나 생각하지도 못한 1등이었고요."
전광판에 박다윤의 이름과 소속이 뜨면서, 관중석에서도 "아!"하는 탄성이 나왔다.
전문 선수가 모이는 전국 규모 대회에서 서울대생이 우승을 차지하는 것은 거의 모든 종목에서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박다윤은 2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대학 입학 후 처음 참가한 대회에서 우승해 정말 기분 좋았다"며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우승한 걸 좋게 봐주시는 분이 많아서 뿌듯한 느낌도 받았다"고 말했다.
2021년 한국 여자 400m 실업·학생 전체 랭킹 1위에 오른 박다윤은 첫 중간고사에 집중하고자, 종별육상대회 주 종목 400m 출전을 포기했다.
그러나 대신 출전한 200m에서 자신도 예상하지도 못한 1위를 했다. 이날 200m 기록도 개인 최고(25초00)에 크게 뒤지지 않은 25초33이었다.
직선 주로에 세 번째로 진입한 박다윤은 막판 '불꽃 스퍼트'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25초50의 전유림(경운대)이었다.
사실 박다윤에게 '1등'은 낯선 자리가 아니다.
박다윤의 초, 중, 고 시절을 지켜본 사람들은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2022학번'이라는 타이틀을 신기하게 보지도 않는다.
박다윤은 인천 당산초교 4학년 때 육상에 입문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소년체전이 끝난 뒤 육상을 그만둘 생각도 했지만 마지막 대회라고 생각하고 출전한 문화체육관광부장관기 대회에서 예전에 나보다 느렸던 선수가 앞서가는 걸 보고 의욕이 샘솟아 다시 출발선에 섰다고 한다.
스타트에 약점이 있었던 박다윤은 400m에 주력하면서 '전국구 선수'가 됐다.
지난해에는 10월 열린 전국체전 여자 고등부 400m(56초11)와 1,600m계주에서 우승하며 화려하게 고교 생활을 마무리했다.
박다윤이 세운 400m 기록인 56초11은 실업 선수를 합해도 2021년 한국 최고 기록이었다.
고교 시절 마지막 대회에서 개인 최고이자, 시즌 한국 최고 기록을 세운 박다윤은 한 달 동안 '수능'에 전념했고, 수시전형 합격 조건을 충족했다.
인천체고를 수석으로 입학한 박다윤은 전문 육상 선수로 뛰면서도 철저하게 내신 관리를 했다.
'실기'는 이미 전국대회 입상으로 국내 최고 수준이라는 걸 증명했다.
박다윤은 2021년 12월 16일 서울대 사범대학 체육교육과 합격증을 받았다.
박다윤은 "고교 1학년 때부터 서울대 입학을 목표로 공부하고, 운동했다. 응원해주셨던 부모님, 선생님들이 함께 기뻐해 주셨고 친구들은 '해낼 줄 알았다'고 축하해줬다"며 "나는 단거리 선수지만, 대학 입학을 위해서는 장거리·단거리를 모두 뛴 기분이다. 좋은 성적으로 레이스를 마쳐 행복했다"고 합격의 순간을 떠올렸다.
서울대 새내기 박다윤은 '새로운 만남'을 즐겼다.
박다윤은 "대학 생활이 재밌다. 나와 다른 학창 생활을 보낸 친구들과 만나 배우는 점도 많다"며 "공부 잘하는 친구들도 많아서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의욕도 생긴다"고 했다.
첫 중간고사도 치른 박다윤은 "걱정했던 것보다는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고 수줍게 웃었다.
박다윤의 꿈은 체육 교사 또는 체육학과 교수다.
그는 "고교 1학년 때부터 체육 교사가 되고 싶었다. 대학에 왔으니, 체육 관련 여러 공부를 하면서 적성에 맞는 분야가 있으면 대학원에 진학해 교수에도 도전할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육상 선수' 박다윤의 꿈에도 아직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
그는 "대학 4년 동안만 선수로 뛸 생각"이라고 '선수 생활 기간'을 한정하면서도 "내 개인 기록 경신에 도전하고, 국제대회에서 꼭 태극마크를 달고 뛰고 싶다"고 목표를 제시했다.
서울대에도 육상부는 있지만, 전문 코치는 없다.
박다윤은 "인천체고에서 훈련할 때보다 개인 시간이 많다. 일주일에 두 번 팀 훈련을 하고, 부족한 건 개인 훈련으로 채운다"며 "당장 4월 종별선수권을 앞두고도 중간고사 기간이 겹치고, 훈련량이 부족하다고 느껴 400m에 출전하지 못했다. 학교생활을 충실히 하면서도, 훈련 강도를 높여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다짐하듯이 말했다.
박다윤은 아직 국제대회에 출전한 적이 없다. '청소년 대표'에 선발될 기량을 갖췄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2021년에 주니어 육상 국제대회가 취소되면서 태극마크를 달 기회를 놓쳤다.
다만, 올해 1월과 2월 '우수 선수'로 뽑혀 국가대표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는 '국가대표 간접 체험'을 했다.
박다윤은 "훈련량이 부족했는데 종별선수권 200m에서 기록이 괜찮게 나온 건, 동계훈련을 잘 소화했기 때문"이라며 "선수로 뛸 대학 기간에 열심히 훈련해서, 국가대표 훈련 참가 자격을 얻고 국제대회에도 출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사실 육상계에서는 박다윤의 서울대 입학을 축하하면서도 "아직 전성기를 맞이하지 않은 선수인데 전문 훈련을 하기 어려워졌다. 기록 향상도 어려울 것"이라는 아쉬움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고교 시절 실업 선수 기록도 넘어선 박다윤이 1991년 박종임(당시 성균관대)이 세운 한국 여자 대학부 400m 기록인 54초87을 깨는 걸 기대하는 전문가가 더 많다.
박다윤은 "아직 내 기량이 박종임 선생님 기록을 넘어설 정도는 되지 않는다"고 냉정하게 자신을 평가하면서도 "대학 최고 기록에 도전해보고 싶다. 아직 1학년이니까 일단 내 고교 시절의 56초대 기록에 다시 진입하고, 55초대, 54초대 기록에 도전할 생각"이라고 구체적인 계획을 밝혔다.
그는 "사실 나도 고교 시절 내 기록을 넘어서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걱정했는데, 훈련량이 충분하지 않았던 종별선수권에서 200m 기록이 괜찮았다. 더 열심히 하면 기록이 좋아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고 덧붙였다.
대학에서도 박다윤은 학업과 운동을 병행한다. 다시 태어나도 공부와 육상, 모두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박다윤은 "내가 감히 중·고교 선수에게 '학업과 운동 중 어느 것에 더 비중을 두라'고 말할 수 없다. 실업팀 입단과 대학 진학 중 어떤 길이 정답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말하면서도 "다만 후배들에게 '공부를 병행하면 선택지가 많아진다'는 조언은 하고 싶다. 나는 대학이라는 출발선에 섰고, 앞으로도 학업과 운동을 병행할 생각"이라고 했다.
박다윤은 "제가 크게 이룬 게 없어서"라고 누군가에게 조언하는 걸 조심스러워했지만, 공부도 육상도 일등이었던 그는 트랙과 강의실에서 모두 '좋은 선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