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947 보스톤' 강제규 감독 "임시완, 요놈은 대단하다 싶었다"

노이슬 기자 / 기사승인 : 2024-09-21 06:3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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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W 노이슬 기자] 1999년 영화 '쉬리',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로 한국 영화 블록버스터 시대를 선두하며 흥행을 이끌었던 '레전설' 강제규 감독이 돌아왔다. 2015년 '장수상회' 이후 8년만에 돌아온 그는 일제 강점기 한국인 최초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와 동메달리스트 남승룡, 그들의 제자 서윤복의 이야기를 전한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았던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감동과 희망 용기를 전한다.


강제규 감독의 8년만 신작 '1947 보스톤'은 1947년 광복 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 대회에 출전하기 위한 마라토너들의 도전과 가슴 벅찬 여정을 그린 이야기를 담았다. 올 추석 연휴 관객들을 만날 준비를 모두 마쳤다.
 

▲영화 '1947 보스톤' 연출 강제규 감독/롯데엔터테인먼트


'1947 보스톤'은 2020년 초 촬영이 마무리됐다. 당초 2021년 구정 개봉을 목표로 했지만,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으로 인해 개봉이 연기 연기됐다. 설상가상으로 주연 배우 배성우의 음주운전 이슈까지 겹치며 3년만에 개봉하게 됐다. 오랜만에 신작 개봉을 앞둔 강제규 감독은 스포츠W와 만나 영화의 뒷 이야기를 전했다.

강제규 감독이 '1947 보스톤'을 만나게 된 것은 2018년 무렵이다. '장수상회'가 끝난 후 중국에서 영화 제안을 받고 캐스팅 단계를 거치던 중 사드로 인해 한한령이 발효됐다. "중국에서 규모가 큰 영화를 제안 받고, 2년 반 정도 시나리오 작업을 마쳤다. 프리 프로덕션 시작하고 캐스팅 단계에서 한한령이 터졌다. 일부 스태프들은 제한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저는 완전 전면 금지가 됐다.그리고 2018년에 장원석 대표가 '1947 보스톤' 시나리오를 제안했다. 그때부터 약 9개월간 각색 작업을 했다."

'1947 보스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손기정 마라톤 선수의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영화의 포문을 연다. 손기정을 연기한 하정우의 내레이션이 연출, 다큐 드라마 같은 모습이다. "마라톤 영화에 오랫동안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마이웨이'에서 일부 연출하기도 했다. 제대로 하고 싶었는데 '1947 보스톤' 시나리오를 받았다. 저는 마라톤을 좋아해서 서윤복 선수는 알고 있었지만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대한 디테일은 잘 몰랐다. 우리 역사의 성공 사례가 많지 않은데,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는 영화일 수 있겠다 싶었다. 벅차고 설레고 흥분될 수 있겠다 생각했다."

 
▲영화 '1947 보스톤' 포스터/롯데엔터테인먼트


보스턴 마라톤 대회는 '제2의 손기정' 서윤복 선수가 광복 이후인 1947년 한국인으로서 처음 국제 대회에 참가한 의미있는 대회다. 미군정 치하 '난민국' 이었던 대한민국 선수가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참가한 대회다. "손기정, 남승룡, 서윤복 세 명이 그 경기에 관련되서 각자 자신의 역할을 한다. 서윤복의 참가 일대기는 그냥 영화더라. 원형 자체가 영화보다도 더한 사실이라서 각색 단계에서도 원형 유지를 많이 신경썼다. 용기를 가질 수 있는 이야기들은 듣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시대에 있던 일이다. 저처럼 마라톤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도 몰랐던 이야기다. 역사를 재발견하는 기능도 있다. 관객들에게 울임을 줄 수 있는 영화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완성된 영화를 스크린으로 본 소감도 궁금했다. "아내가 제가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기술 시사를 하고 오면 그렇게 표정이 어둡다고 하더라. 주변에서는 엄살 떤다는 반응도 있지만, 저는 제 영화를 볼 때 재미없다고 생각하고 흠을 찾으려고 하는 편이다. 이제는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제 영화를 보는 시선이 조금 후해진 것 같다. 이번에는 조금은 편하게, 관객의 시선으로 보는 것 같다. 볼 때마다 우는 구간이 달라지고 있다."

강제규 감독은 '1947 보스톤'으로 하정우, 임시완, 배성우, 김상호와 함께 호흡을 맞췄다. 네명의 배우 모두 전부터 관심을 갖고 지켜봤지만, 함께할 여건이 주어지지 않았다. '1947 보스톤'으로 어렵게 기회가 주어지게 됐다. 캐스팅의 핵심은 싱크로율이다.


▲(위)손기정(손기정기념재단), 하정우 /(아래)서윤복 선수(국민체육진흥공단 국립스포츠박물관),임시완


"실화를 다루다보니 이 이야기의 중심 시작은 결국 손기정이다. 제가 볼 때는 체격도 그렇고 하정우 배우가 손기정 선수와 닮았다. 손기정 선수는 기골이 장대하고 반듯하고 핸섬하다. 경기에 임할 때도 외관을 잘 꾸민다. 너무 비슷했다. 임시완도 서윤복 선생님과 신체적인 조건이 너무 비슷했다. 아담한 체형도 비슷해서 딱이겠다 싶었다.배성우의 연기는 생활인지 연기인지 도무지 구분이 안 간다. 스릴러나 호러에 가면 전혀 다른 분위기를 내는 배우다. 물론 배우들이 기본적으로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배성우는 폭이 넓고, 연기를 맛깔스럽게 잘한다."

보스턴 마라톤 대회 참가를 위해 첫 방문한 미국에서 이들을 맞이한 이는 한인 백남현(김상호)이다. 백남현으로 분한 김상호는 백색 슈트에 중절모를 쓴 멋쟁이 신사의 외형이다. 하지만 어딘가 신뢰가 가지 않아, 사기를 당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기도 한다. 강제규 감독은 "10명 중에 8명은 그렇게 생각하시더라"라며 웃었다. "김상호 배우는 다작하는 배우지만, 그분이 가진 캐릭터 자체가 우리가 쉽게 예측하고 예상하는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신선하고 재밌더라. 백남연 역할이 그런 역할이었다. 외국에 가면 사업가고 하지만 일단은 색안경을 끼고 본다. 다각적 해석이 가능한 사람이 중요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불안하지만 진심이 보이는 사람으로는 딱이었다."

김상호는 손기정 일행을 돕는 사람으로서, 영어 통역의 역할도 했다. "김상호 배우가 처음에 어떻게 영어 대사를 구현할까 궁금했다. 촬영 전에 체크했는데 처음에는 너무 어색하더라. 외국 사람들에게 히어링이 될 것인지 걱정됐다. 근데 오히려 진짜 촬영할 때는 그 느낌이, 이런 유형의 영어를 구사하는 것은 김상호라서 가능하겠더라. 진짜 신경을 많이 써서 '백남현화' 시킨 느낌이었다."


▲영화 '1947 보스톤' 백남현 役 김상호 스틸/롯데엔터테인먼트
 

실제 서윤복이 보스턴 마라톤 대회 참가까지 고비에 고비를 거듭했다. 미군정에서 재정보증금을 지원하지 않아 기자회견을 개최, 대한문 앞에서 국민들에게 알린다. 국민들의 십시일반 모금운동을 통해 결국 자금 마련에 성공한다. 이는 IMF 시절 '금모으기 운동'을 연상케 한다. "실제 대한문 광장에서 그렇게 모금을 한 것은 아니다. 각색 단계에서 극적으로 상황을 만들었다. 당시 미군정에서 재정보증금을 주지 않아서 난감한 상황이다. 미 군정청 고문 스매들리 여사가 제일 큰 리더가 되서 미군 장교들과 함께 해결해 주셨다. 여러 사람들의 의지로 이뤄낸 결과물이라 극화 시킨 부분이다."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은 단연 우여곡절 끝에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서윤복의 경기 장면이다. 특히 하트브레이크 힐은 실제로 드라마틱한 장면이 연출되는 역전극이 펼쳐지는 구간이다. 경기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장소 헌팅 기간만 무려 1년이 가까이 걸렸다. "보스턴 마라톤의 상징같은 곳이다. 제일 극적인 순간이 일어나는 지점이다. 실제 보스턴 현지가 너무 현대화 되고 교통량이 많아서 재현할 수 없었다. 도시 전체를 통제하고 찍는 것도 어려움이 있었다. 당시 건축 양식을 갖고 있는 다른 나라들을 헌팅했다.라트라비아, 헝가리, 폴란드 등을 갔다. 근데 미국과 유럽의 정서가 달라서 안되겠더라. 그리고 우루과이를 갔는데도 아쉬움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호주, 뉴질랜드를 가보자했다. 그곳 소도시에서 해당 구간가 비슷한 지형을 발견했다. 사전준비를 보름간 하고 보름간 촬영했다. 피니시 라인은 한국에서 찍었다. 실제 마지막 구간은 800m 직선거리가 전 세계를 다 뒤져도 찾기 쉽지 않았다. 결국 춘천에서 블루매트를 칠 수 있는 공간을 찾아서 촬영했다."

운동화 한 켤레 조차 살 돈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던 서윤복은 어린 시절 '무악재 고개'를 뛰어다녔다. 하트브레이크힐에서 어린 시절 서윤복의 모습과 플래시백 되는 연출은 인상적이다. "서윤복과 보스턴 마라톤 대회는 숙명적인 연결고리가 있다. 서윤복에게는 무악재 고가개 있고, 보스턴 마라톤에는 하트브레이크힐이 있다. 겹치는 서사가 있더라. 이 부분이 서윤복이 보스텐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장 동력이지 않을까 처음부터 생각했다. 서윤복의 동력의 힘은 무악재였다는게 교차되서 좋았다."

 

▲영화 '1947 보스톤' 연출 강제규 감독/롯데엔터테인먼트


그러면서 감독은 "어린시절 플래시백 장면은 저의 어린 시절의 정서가 담겨서인지, 그 지점이 애잔하게 느껴졌다. 또 피니시 라인에 와서, 남승룡까지 골인하고 함께 기쁨을 만끽하는 순간은 찍을 때도 뭉클하게 다가왔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실제 서윤복의 극적인 장면은 또 한번 펼쳐진다. 그의 앞에 큰 개 한마리가 갑자기 경기장에 뛰어들어 발목 부상을 당하며 고비를 맞는 것이다. 이는 실제 당시 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실화다. "서윤복 일기랑 당시 기사를 보면 관중 중의 한 사람이 선수들이 들어오니까 흥분해서 손뼉을 치다가 손에 있던 개 목줄을 놓친다. 이때 개가 주변에서 박수치는 상황에 긴장되서 뛰쳐나가서 서윤복과 부딫혔다고 써 있다. 촬영 전부터 걱정한 부분이다. 개를 촬영 3주전부터 훈련시켰다. 5번 시키면 한 번 오케이 났다. 훈련받은 개인데도 사람하고 부딪히는 것을 극도로 피하더라. 근데 첫 촬영 때 정말 개가 잘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다시 가보니 또 못하더라. 근데 세번째는 또 잘했다. 마음에 드는 테이크 두 개를 건져서 세번만 촬영했다."

강제규 감독은 특히 해당 씬이 임시완과 작업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임시완에 대한 극찬을 쏟아냈다. "서윤복이 넘어지는 장면들은 일부러 리허설을 안했다. 사전에 정보를 주지 않고 내 콘티 솟에만 있는 그 문장을 가지고 과연 어떤 식으로 연기할지가 궁금했다. 디렉션을 주면 충돌하거나 타협할 수 있을 수도 있다. 임시완 배우가 생각하는 상황을 보고 싶었다. 근데 명품 연기를 하더라. '요놈은 진짜 대단하다' 싶었다. 그 고통과 아픔을 과장되게 포표현할 수도 있는데, 그 정도의 표정과 일어설 수 없는 다리의 떨림과 표정들이 낭패감이 절어있는 선수의 표정은 또 아니었다. 그래서 되게 신선했다. 그 자체로 너무 완벽했다."


▲영화 '1947 보스톤' 임시완 하정우 스틸/롯데엔터테인먼트


'1947 보스톤'은 오는 9월 27일 추석 연휴 첫 날 개봉을 앞두고 있다. 개천절 연휴까지 겹친만큼, 올해는 이례적으로 '거미집',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까지 연휴를 겨냥한 대작들이 한날 동시에 개봉하게 됐다. 강제규 감독은 "3개의 작품 모두 다른 이야기를 한다. 한국 영화를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우리 영화는 가슴 뿌듯해지고 통쾌하고 성취감이 생긴다. 우리 민족으로서 프라이드를 느끼게 해주는 영화라 생각한다. 다 훌륭하고 재밌는 영화이고, 다들 포인트가 다르다. 우리 영화에 보스턴 기자회견장 씬이 있다. 손기정 선수는 올림픽 영웅이 됐지만 일본이 당시 마라톤 선수를 못하게 했다. 이때 손기정이 '일본이 제 두 자리를 자른 것과 똑같다'고 한다. 그리고 '이 청년(서윤복)의 두 다리를 자를 것이냐'고 호소한다. 아픔을 경엄했던 선배가 후배한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대사라고 생각한다. 이런 감동과 희망, 용기의 감정을 원하신다면 '1947 보스톤'을 선택하신 것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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