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W 노이슬 기자] "내 인생에 어떻게 이런 날이 올 수 있을까. 너무 과분하고 기쁜 것 같다."
대한민국 배우로서 여름 시장에 주연작을 무려 두 편이나 내놓는 일은 거의 드물다. 여름방학, 휴가 시즌이 겹치는 7, 8월은 영화 시장에서 가장 핫한 시장이라, 배급사나 배우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극이나 캐릭터의 성격이 다른 경우라면 배우에겐 그야말로 팔색조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배우 조정석이 2024년 여름 시장에 주연작 2편 '파일럿'과 '행복의 나라'를 내놓으며 연달아 관객들을 만났다. 조정석의 팬이라면 그야말로 '럭키비키'인 셈이다.
▲영화 '파일럿', '행복의 나라' 연달아 개봉한 배우 조정석/잼엔터테인먼트 |
먼저 지난달 7월 31일 개봉한 영화 '파일럿'은 스타 파일럿에서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한정우(조정석)가 파격 변신 이후 재취업에 성공하며 벌어지는 코미디 영화다. 개봉 3주차인 8월 21일 400만 관객을 돌파한 '파일럿'은 조정석이 작정하고 여장까지도 소화한, 관객들에게 '코미디=조정석 장르'라는 것을 각인 시켰다.
조정석의 여장은 뮤지컬 '헤드윅'을 통해 여러 차례 보여졌기에 신선함은 없었다. 하지만 '파일럿'은 영화적 허용일지라도, 여장을 한 한정우가 재취업에 성공, 파일럿으로서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 포인트. 조정석 역시 "한정미는 누군가가 나를 한정우가 아닌 다른 사람, 한정미로 볼 수 있어야 하는 변신이었다"고 짚었다. 그렇기에 조정석은 '여성스러운 라인'을 살려야 했다. 한정미가 되기까지 분장 테스트만 2~3일이 걸렸다.
"제가 한정미를 연기해야 한다. '헤드윅'은 드랙퀸이다. 그게 다 내 얼굴이라서 다이어트를 열심히 했다. 분장팀과 의상팀의 승리라고 생각한다. 식단과 운동으로 7kg을 감량했다. 키토 식단으로 다이어트를 하고, 림프선 마사지도 하긴 했다. 가발도 정말 많이 써봤다. 의상도 100벌이었지만, 긴 머리부터 묶은 머리, 파마 머리 등 가장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아나갔다. 분장 테스트를 2~3일 했다. 하루에 5~6시간을 집중했다. 처음 테스트 촬영은 2시간 넘게 걸렸다. 쿨톤이 잘 맞는다는 게 결정이 난 후에는 최대한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영화 '파일럿' 조정석 스틸/롯데엔터테인먼트 |
개봉 소식과 함께 공개된 조정석표 '한정미' 스틸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 중 최강희, 박보영을 닮았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조정석도 댓글을 봤다며 "최강희 누나를 닮았다는 글을 보는데 너무 죄송했다. 너무 영광이다. 저희 가족들은 이제 무덤덤하다. 아내 거미씨는 '너 진짜 예쁘다'고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고 말했다.
한정우에서 한정미로 변신하는 과정은 영화의 일부다. 여장을 마친 한정미가 첫 등장하는 모습은 '미녀는 괴로워'의 김아중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초반에 전단지 받을 때 쭉 걸어가는 장면인데 많은 보조출연자들이 저를 못 알아보더라. 가까이 계시지 못한 분들은 아예 저를 몰라보셨다. 그 사이에 저희 출연자분들이 아닌 일반인 분들이 지나가면서 눈이 마주쳤는데도 못 알아보셔서 너무 짜릿했다(웃음)."
여장으로 인한 코믹 설정 역시 '파일럿'의 관전 포인트다. 직장 동료 윤슬기(이주명), 서현석(신승호) 등과 함께한 상황은 물론, 동생 한정미(한선화), 모친 등 가족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도 조정석표 코미디 연기는 빛을 발한다. 이런 상황들이 쌓이고 쌓여 '파일럿'의 앙상블이 완성됐다. "저는 상황적인 코미디가 제일 재밌다. 말장난 개그는 안 웃기더라.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코미디를 위해서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그런 것들이 쌓이다보니 코미디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건축학개론' 납뜩이도 제가 앞에서 아무리 열심히 코미디를 한다고 해도 이제훈씨의 리액션이 없으면 재미가 없다. 원톱 주연 부담감은 알고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촬영장에서도 열심히 했다."
▲영화 '파일럿', '행복의 나라' 연달아 개봉한 배우 조정석/잼엔터테인먼트 |
조정석이 원톱으로 '파일럿'을 이끌었다면, 든든한 뒷받침이 되어준 이는 여동생 한정미로 함께한 한선화다. "저희 영화 장르는 코미디다. 동생과 나오는 장면과 상황들이 중요한 지침이 될텐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힘이 됐다. 현장에서 정말 짜릿했다. 왜 이제야 만났을 까 생각했다. '술꾼도시여자들' 너무 좋아했다. 연기하는데 너무 센스있고 순발력 있고 재치, 호흡도 너무 좋더라. 그래서 왜 이제야 만났을까 생각할 정도로 너무 좋았다. 너무 힘이 됐다(미소)."
조정석은은 스크린 데뷔작 '건축학개론'으로 배우 본명을 잃어버린 대표적인 배우다. 미친 존재감의 납뜩이로 눈도장을 찍은 조정석은 1396만 '엑시트'로 '코믹 장인'이라는 수식어의 주인공이 됐다. '파일럿'으로 또 한번 코미디 영화계에 획을 그었다. "'코믹장인' 수식어는 너무 감사하다. 개인적으로 슬랩스틱은 최고의 코미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슬랩스틱을 잘하고 싶다."
지난 8월 14일에는 영화 '행복의 나라'가 개봉했다. 조정석은 여름 시장에 박스오피스 1, 2위를 동시에 차지하는 행운을 누리게 됐다. 그는 "영화 두 편을 연속으로 개봉하는 경우가 드물다. 먼저 개봉한 영화가 잘 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과분하고 걱정도 되지만 기분이 좋다. 박스 오피스 1, 2위를 동시에 차지하는 일이 내 인생에 어떻게 이런 날이 올 수 있을까. 너무 과분하고 기쁜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 '파일럿', '행복의 나라' 연달아 개봉한 배우 조정석/잼엔터테인먼트 |
'파일럿'에서 관객들에게 유쾌, 통쾌한 웃음을 선사했던 조정석은 '행복의 나라'로 새로운 얼굴을 꺼냈다. '행복의 나라'에서 조정석은 법정에 정의가 아닌 승패만 있다고 믿는 생계형 변호사 정인후를 연기, 故이선균, 유재명과 호흡을 맞췄다. 코믹한 생활연기로 주목 받아온 조정석에게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 "저는 유쾌한, 로코 장르의 제안을 많이 받는 편이다. 저한테는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였다. 너무 해보고 시었다. 기존에 제가 가진 웃음기가 있는 유쾌한 기조를 덜어내고 영화의 톤에 맞는 기조를 꺼내면서 저도 모르게 밝아지기도 했다."
'행복의 나라'는 1979년 10월 26일, 상관의 명령에 의해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박태주(이선균)와 그의 변호를 맡으며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에 뛰어든 변호사 정인후(조정석)의 이야기를 그렸다. '남산의 부장들'(2020년)과 지난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서울의 봄'의 시대를 이어주기는, 현대사 3부작으로 실화를 모티브로 재구성했다. "제가 알지 못하는 인물이 들어온 순간 흥미로웠다. 그 당시 재판부터 다양한 기록을 찾아봤다. 그 전부터 12. 12 사건은 많이 알고 있었지만, 실존인물 박홍주는 새롭고 흥미로워서 그에 대해서 많이 찾아봤다."
정인후는 실존인물 태윤기를 포함한 실제로는 여러명이었던 변호인단을 모티브로, 한 사람으로 합친 가공인물이다. 특별한 레퍼런스가 된 인물은 없다. 조정석은 "특별히 떠오르는 레퍼런스가 없었다. 변호사가 나오는 법접 씬들이 많다보니 '변호인'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정인후가 박태주의 서사에 잘 더해져 잘 흘러가길 바랐다. 당시의 변호사 모습은 버리고, 법정씬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외형적인 부분도 전혀 신경을 안 썼다. 그래서 막 캐낸 흙감자처럼 나온다. 그렇게 보여져서 더 좋은 것 같다(웃음)."
▲영화 '행복의 나라' 조정석 스틸/NEW |
법정씬에서는 기존에 본적 없는 새로운 자신의 얼굴을 발견했다. "영화에 쓰이진 않았지만 최종 진술하는 법정씬을 롱테이크로 찍었다. 거기서 제가 저 스스로도 처음 보는 얼굴을 발견했다. 울분도 울분이지만, 현실에 억울함이 느껴지는 얼굴이 있었다."
초반 생계형 변호사였던 정인후는 박태주를 만나면서 점차 정의로운 변호사로 변화, 성장하는 인물이다. 조정석은 "박태주라는 인물에 안타까움도 분명히 있지만 동질감, 미러링이 됐다"고 했다. "정인후는 자신의 아버지를 감옥에서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대한민국 최악의 졸속 재판임에도 불구하고 재판에 뛰어든 것이다. 그것 자체가 정인후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박태주 딸이 귤을 쥐어줄 때 그 아이들의 심정이 미러링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들이 디테일하게 쌓여서 인간적인 점이 생기고, 이 사람을 살리고 싶고, 자연스러운 흐름에 맞게 신경을 많이 썼다. 감정적인 부분들이 개인적으로 북받치는 장면들이 꽤 많아서 그것들을 얼마만큼 조절하는지가 저한테는 중요했다."
정인후를 성장 시키는 인물 박태주로 고인이 된 이선균이 함께했다. "항상 그립다. 영화를 보다가 취조실에서 박태주와의 하이파이브 장면에서 무너졌다. 유일하게 서로 웃는 장면이다. 현장에서는 너무 좋았다.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변호인단, 검찰단까지 나오는 모든 배우들, 스태프들까지 모두 끈끈했다. '행복의 나라'만큼 좋았던 현장은 드문 것 같다. 그 중심에 계셨던 분이 선균 형이다."
▲영화 '행복의 나라' 유재명, 이선균, 조정석 스틸/NEW |
실존인물 전두환이 모티브가 되는, 전상두를 연기한 유재명과는 첫 대면 씬과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으로 손꼽히는 골프장 씬이 강렬하다. "전상두와는 서로 대치되는 캐릭터인데 첫 대면 씬이라 되게 중요했다. 재명 형의 분위기, 그 눈빛, 아우라 같은 것들에 압도당하는 느낌이라 놀라웠다. 자연스럽게 수긍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다. 격분하는 느낌을 상상했다. 전상두가 정인후한테 호통도 세게 치고 격분하는 장면도 상상했었는데, 그런 느낌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느낌으로 와서 너무 좋았다."
전상두와 골프장 씬은 영화적 허용, 판타지 장면이기도 하다. 중요한 씬인만큼 여러 테이크로, 매번 다른 연기를 펼쳤다. "저도 끈질기게 하려는 성향인데, 감독님도 차분하지만 조용하고 악착같고, 섬세하다. 그게 잘 맞았다. 골프장 씬이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한다. 저는 판타지를 되게 좋아한다.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데, 영화적으로 가공된 정인후가 우리 영화의 길잡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흐름 속에서 골프장 씬이 나오는 게 판타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권력자에 일갈하는 모습이 개인적으로 통쾌했다. 대들 수는 있지 않나. 그런 게 판타지고 되게 만족스러웠다. 여러 버전을 찍었다. 일갈하는 대사 톤으로, 자조적인 느낌으로 읊조리며 조명하듯이 해보고, 조소하듯이 해보고, 울분을 토해내듯이도 해봤다. 지금 영화에 나온 테이크가 가장 좋았던 것 같다."
'행복의 나라'는 조정석에게 도전이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배움의 터였다. 그에게 '행복의 나라'란 어떤 의미일까. 그는 "작품적으로 '행복의 나라'를 통해 배우적으로 좋은 인정을 받으면 너무 감사할 것 같다. 정인후 캐릭터는 저에게 또 다른 변신, 새로운 터닝 포인트인 느낌이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이 시나리오가 저한테 주는 재미, 즐거움, 감동도 남달랐다. 배우들과의 끈끈한 우정도 어떤 현장보다 남달랐다. 영화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얼굴 등이 저한테 남다른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고 했다. 이어 "또 행복이라는 단어의 기준은 모든 사람들이 다르다. 제 기준에서 행복의 나라는 가족인 것 같다. 가족이 화목하고 행복하고 평화롭고 그 자체가 저에게 행복의 나라에 있는 것이다"고 했다.
▲영화 '파일럿', '행복의 나라' 연달아 개봉한 배우 조정석/잼엔터테인먼트 |
연달아 스크린을 점령한 조정석은 데뷔 20년차에 새로운 도전에도 나선다. 넷플릭스 예능 '신인가수 조정석'으로 싱어송라이터에 도전한 것이다. 조정석은 정규 1집 앨범을 자신의 자작곡으로 채운다. 드림메이커로서 아내 거미는 물론, 배우 정상훈, 문상훈, 정경호, 김대명, 공효진, 다이나믹 듀오, 김이나 작곡가가 조력한다. 특히 '음원퀸'이자 아내 거미와 함께하는 첫 작품이다.
"음악을 만드는게 너무 좋아서 하게 됐다. 예능이니까 예능적인 모습, 가수로서의 모습이 함께 있다. 아내 거미는 오래전부터 음악적으로 인정받은 분이다. 제가 감히 따라갈 수 없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옆에서 자연스럽게 보면서 배우게 되는 것이 많다. 그분의 업적이라던지, 음악을 만드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될만한 것ㄷ들을 배우려고 하고, 많이 물어보려고도 한다."
2004년 데뷔 후 배우로서 20년차를 맞이한 조정석은 "아주 오래전에 드라마 시작 전에 공연 열심히 할 때 인터뷰 할 때 '쓰임새가 많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은 없는 것 같다. 저를 찾아주는 곳이 어느 장르던지, 제가 쓰여지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즐거움을 드리고 싶다. 저도 창작을 너무 좋아하니까 머릿속에 상상하는 것들을 풀어내고 싶다"고 바랐다. [저작권자ⓒ 스포츠W(Sports W).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