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박해일은 취재진에 '한산도가'를 읽어주며 "시도 쓰는 장군님었다. 스트레스가 강하게 왔을 것이다. 7년 전쟁을 버텨내기까지 어마어마한 스트레스가 있었을 것"이라며 이순신 장군의 마음을 헤아렸다. 박해일은 바람 앞의 등불 같았던, 임금도 버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매일 밤 잠도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했던 이순신의 고뇌를 공감했다.
박해일이 출연한 영화 '한산: 용의 출현'(감독 김한민/ 이하 '한산')은 명량해전 5년 전, 진군 중인 왜군을 상대로 조선을 지키기 위해 필사의 전략과 패기로 뭉친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의 '한산해전'을 그린 전쟁 액션 대작이다. 개봉 11일째 400만 관객을 돌파, 누적 관객수는 8일 기준 460만이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이순신 役 박해일/롯데엔터테인먼트 |
'한산: 용의 출현'은 8년전인 2014년 개봉해 역대 한국영화 관객 수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명량'의 프리퀄이다. '명량'에서 배우 최민식이 용장의 모습을 보였다면, 박해일이 연기한 젊은 이순신 장군은 '지장'이다. 전쟁의 기세를 바꿔야하는 지점에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적의 진법인 '학익진법'을 최초로 바다에 실현시킨 것이다.
"'한산'에서 이순신 장군은 좀더 감성적인 부분도 있다고 봤다. 이 시대와 어울리 것이라고 봤다. '한산'의 전투를 '명량'과 다른 결로 보여주자 이야기하셨을 때 '수양을 많이 쌓은 선비같다'는 문장도 저한테 깊숙이 들어왔다. 그런 문장에서 표현하는 느낌을 캐릭터에 살려보려고 했다."
박해일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촬영 전에는 여러 번 봤다. 숙소에도 구비돼 있었지만 촬영 시작한 후에는 대본과 콘티에 집중했다. 촬영 당시는 코로나19로 숙소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실제 이순신 장군이 잠을 이루지 못할 때 활을 쐈다면, 박해일은 잡념이 생기면 숙소 근처를 걸었다. 그 시간 속에서 어려운 국면에서 전쟁을 앞둔 장군의 마음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오랜 전쟁에 스트레스가 어마어마 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수장들을 불러서 술을 한잔 한다던가, 병사들과 마시면 꼭 비가 왔다고 하더라. 아니면 밤에도 답답해서 나가서 안 보이는 과녁에 활을 50발이든 100발이든 땀이 흠뻑 젖도록 쐈다. 그것도 안되면 글을 쓰셨나보다. 그렇게 할 게 많지는 않았나보다. 글을 쓰셨다는게 인상적이었다. 전투에 임하는 수장이 일기도 쓰고 시도 짓는다는 부분을 가져가야겠다 생각했다. 숙소에서 시나리오 볼 때도 양반다리 하고, 의자가 아닌 바닥에 앉아서 많이 봤다. 수양을 하는 느낌으로."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이순신 役 박해일 스틸/롯데엔터테인먼트 |
스크린에 그려진 이순신 장군은 말 수가 적고, 언제나 고뇌하는 모습이다. '명량' 속 최민식은 백병전을 펼치며 동적인 모습인 반면, 해전에서까지도 박해일의 이순신 장군은 정적이다. "'한산'에서는 절제돼 주어진 대사가 적더라도 그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해볼 수 있는 한 모든 기운을 실어서 날려보자였다. 배우가 관객들에 대사로 전달하는 방식이 확실하고 일반적이지만, 얼굴 한번 비추는 몇 초안에 그 드라마를 담은 감정을 눈빛으로 보내던가, 짧은 호흡이라도 활용하던가, 얼굴도 아닌 서 있는 자세 하나로 인물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대사화하는 방식으로 똑같은 기운을 가지고 해보려고 했다."
그러면서 박해일은 "절제돼 있으면서도 기운은 느껴지는 연기톤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제 장면을 촬영할 때 그런 느낌이 있는지 자주 물어봤다. 유달리 이 영화에서는 그걸 많이 물어보면서 그게 잘 담겨지질 바랐고 해보려고 했지만 '완벽하게'라는 말은 못하겠다. 많은 상대 배우들과 편집, 배경, CG효과 등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에너지 넘치는 용맹함은 없었지만, 지략가로서 치열한 모습이 중심이 됐다. 특히 꿈을 꾼 후 처소에 앉아 홀로 진법을 구상하며 내는 눈빛, 혼자 활을 쏘고, 공성이냐 수성이냐 물을 때도 홀로 묵묵히 앉아있는 모습 등에 인간적인 면모를 넣으려 했다.
"주어진 짧은 상황에서도 현실적인 고민과 인간적인 고뇌를 담아내려고 했다. 학익진 결정하는 부분에 인간적인 면모가 안 보이면 전투와 맥이 안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소에선 총도 맞고 자세가 흐트러져 있다. 그 느낌조차도 캐릭터를 보여주는 상황이었다. 그런 부분들이 저라는 기질의 배우가 보여주고 싶은 방식이었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이순신 役 박해일/롯데엔터테인먼트 |
학인진법을 완성하는 장면은 '한산'의 명장면으로 손 꼽힌다. 이순신 장군이 함께 한 수장들 하나하나의 성품과 특기 등을 짚어내며 배치하는 모습은 이순신 장군의 성품과 인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 장면에서 얼굴이 나오는 장면은 저도 필사를 했다. 전문가분이 항상 옆에 계셨고, 도움을 통해 나온 장면이었다. 그 장면 찍기 전에 혼자 숙소에서 휴대전화로 혼자 내레이션을 녹음해서 감독님께 보내드렸다. 다음날 촬영하고 그 녹음된 내레이션을 동시편집 기사한테 넣어보라고 해서 그걸 잘 활용했던 기억이 있다."
51분간 펼쳐지는 해전 씬에서는 거북선을 처음 만든 나대용 장군(박지환 분)과 거북선(귀선, 메쿠라부네)이 드라마틱하게 등장해 활약한다. 박해일은 "거북선은 뛰어다녀도 될 정도로 튼튼했다. 이제껏 거북선이 나왔던 용두와 얼굴을 비교하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고 했다.
"저는 거북선이 좀 한이 서려있는 조선을 지키는 수호신 같은 느낌이었다. 되게 짠한 느낌. 거북선은 이순신 장군의 전투 진법에 없어서는 안될 제2의 주인공이었다. '한산'에서는 큰 몫을 담당한다. 그 설계를 한 박지환씨도 우리가 많이 붙는 장면은 없어도 시작과 끝을 담당해주는 관계라서 촬영할 때도 서로 욱하는, 격정적인 느낌도 있었다. 지환씨가 거북선 없이 이길 수 있느냐고 하는 장면에서 눈물을 보이는 연기를 하더라. 그만큼 거북선이 중요한 캐릭터다. 박지환씨도 기존 작품에서 보여지지 않았던 멋진 연기를 해주신 것 같다. 지환씨는 영화에서 보는 이미지랑 너무 다르다. 되게 섬세하고 미학적이다. 배우로서 보여줄게 무궁무진하다 생각했다."
'한산'은 극 후반부가 바다 한 가운데 학익진법과 함께 펼쳐지는 해전이 채운다면, 전반부는 전쟁의 기세를 바꿔야 했기에 서로의 수를 헤어리며 치열한 지략전을 펼친다. 와키자카 야스하루(변요한 분) 역의 변요한과 첫 호흡이었던 박해일은 그의 캐스팅 소식에 포효하는 표정의 셀카를 보냈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이순신 役 박해일/롯데엔터테인먼트 |
"수군이니까 횟집에서 주로 만났다.요한씨는 일본어 선생님을 대동하고 왔다. 저와 서로 컨디션을 체크하고, 진영에 대한 분위기도 묻고 그랬다. 저는 감독님과 작업 경험이 있는데 요한씨는 처음이니까 촬영하면서 소통의 문제라던지 캐릭터를 해나가면서도 고민들이 있으면 자주는 못해도 많이 이야기를 나눴다. 각자의 역할 때문이라도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톤이 있었다. 서로 고생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짧은 만남에서 힘을 실어주는 태도로 만났다. 서로 장문의 문자를 서로 주고 받고 했었다."
또 박해일은 현장에 대해 "코로나19라서 매일 모두 검사를 하고 촬영에 임하는데도 안성기 선배님부터 변요한씨, 군대 간 공명씨까지. 그리고 일본어를 연기한 배우들, 각 국의 수군들, 전사하는 연기한 단역배우들까지 수백명의 배우, 스태프들이 영화에 소명 의식을 갖고 참여한 느낌이 들었다"고 현장을 전했다.
그러면서 박해일은 "그날그날 촬영이 끝나면 스케줄 표를 시원하게 찢었다. 감독님의 디렉션을 메모 했었다. 그게 많이 도움이 됐다. 감독님은 역사 선생님 같은 느낌이 있었다. 모든 배우들이 그날 찍어야 하는 양을 하나씩 벗겨내는 재미가 있었다. 현장 칠판에도 빨간색 사인펜으로 엑스로 표를 하고 지우는 재미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박해일은 지난 5월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팬데믹 이후 극장에 활력을 더하는데 앞장섰다. 또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던 '행복의 나라로'(감독 임상수) 역시 개봉을 앞두고 있다. 세계적인 거장 박찬욱, 김한민, 임상수 감독과의 작업까지, 이쯤되면 박해일의 '제2의 전성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이순신 役 박해일/롯데엔터테인먼트 |
박해일은 "코로나19 시기에 결은 다른데 개성을 가진 감독님들과의 작업 때문에 제2의 전성기라는 말씀을 해주시는 것 같다. 저한테는 진귀한 경험이었다. 온전하게 관객분들이 자체로 즐겨주셨으면 한다. 저에게 행복감으로 다가오면 좋은 전성기가 오는구나 생각할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헤어질 결심'은 주옥같은 명대사로 SNS에서 패러디, 밈 현상과 동시 N차 관람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한산: 용의 출현'까지 본 관객들은 "조선이 그렇게 만만합니까?", "왜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왜는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이러려고 한산에 왔습니까?" 등의 관람 평으로 웃음을 안기고 있다.
"제 의지가 아닌데 코로나19 지나가면서 관객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보니 작품들이 한데 뭉쳐서 나오는 느낌이다. 관객들에 연이어 전달되는 것이 조심성은 있지만 제 의지가 반영된 부분은 아니라서 즐기자고 생각한다. 반대로 흥미로운 부분도 있다. 장해준이 해군 출신이다. 이순신 장군과 닮은 측면도 있다. 공무원이라는 점, 바다 사나이라는 점이 닮았다. 관객들의 반응들이 흥미로운 것 같다(미소)." [저작권자ⓒ 스포츠W(Sports W).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