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W 노이슬 기자]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관객들의 것". 이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속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라고 외치는 대사를 변형한 것이다.
'가려진 시간' 이후 7년만에 신작을 내놓은 엄태화 감독은 '콘트리트 유토피아'로 질문을 던졌다. 다양한 인간군상이 나오는 만큼, 결말에 대한 해석도 남다르다. 이는 감독이 원했던 바다. 관람 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를 선호한다는 엄태화 감독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 관객들이 서로 다른 의견으로 토론하길 바란다.
▲영화 '콘트리트 유토피아' 연출 엄태화 감독/롯데엔터테인먼트 |
9일 개봉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서울,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여들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재난 드라마다. 엄태화 감독의 세번째 장편 영화이자 첫 텐트풀 영화다. 감독은 이병헌을 필두로 박서준, 박보영, 김선영, 김도윤, 박지후 등 믿고 보는 배우 라인업을 구축, 웰메이드 수작을 만들어냈다.
개봉일 자정 기준, 예매 관객 수는 17만 9천 여명으로, 실시간 전체 예매율 1위를 기록 중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코로나19 기간을 포함, 4년동안 공을 들였다. 지난해 개봉을 예정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올해로 연기됐다. 개봉이 연기된 기간동안 엄태화 감독은 CG의 퀄리티를 더 높이고, 2번의 블라인드 시사를 통해 편집의 편집을 거듭했다. 그리고 지금의 웰메이드 수작 '콘트리트 유토피아'가 탄생한 것이다.
'잉투기', '가려진 시간'에 이어 '콘크리트 유토피아'도 한국 사회 문제를 소재로 한 엄태화 감독.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재난물의 외피를 둘렀지만,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담았다. "현실의 문제를 다루는 이유는 어떤 인물이나 현상을 볼 때 이면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잉투기'의 경우에도 인터넷 커뮤니티의 겉으로 보이는 것과 실제보 들여다봤을 때 달라보이는 것들을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가려진 시간'도 세월호 이야기가 직접적이진 않지만, 판타지 세계가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것처럼 보여지길 바란 것은 아니다. 아파트는 제가 너무 잘 아는 공간이라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저에게는 너무 익숙한 공간이다. 예전에 복도식 아파트에 살았는데, 문을 열어놓고 살았다. 요즘은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지 않나. 유토피아 같지만, 요즘 세태를 녹여내며 이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게 혜원(박지후)의 모습이다."
▲영화 '콘트리트 유토피아' 포스터/롯데엔터테인먼트 |
대지진에도 무너지지 않고 유일하게 세워진 황금아파트 주민으로는 불구덩이에 용감하게 뛰어들며 봉사정신을 발휘한 영탁(이병헌)부터 자신의 아내를 지키려는 든든한 가장 민성(박서준), 따뜻한 인간미와 강인함을 가진 민성의 아내 명화(박보영), 황금아파트의 부녀회장 김금애(김선영) 등이 있다. 어떤 인물에 몰입해서 보느냐에 따라 결말의 해석도 다른 것이 영화의 특징이다.
앞서 제작보고회 당시 출연 배우들은 "이병헌 때문"이라며 절대적인 신뢰감을 드러냈다. 매 작품 레전드를 경신하는 이병헌은 '콘트리트 유토피아'에서 무려 새로운 얼굴을 선보인다. 시사 후 "얼굴을 갈아 끼운 것 같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아시다시피 배우님께서는 연기를 너무 잘하신다. 영탁은 처음 제 시나리오에는 스트레이트한 인물이었다. 이병헌 배우님이 같이 하게 되면서 변화했다. 30여년간 많은 작품을 하셨는데 아직도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시는게 너무 놀라웠다. 과거 회상 장면을 찍을 때, 저도 모니터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모니터 하실 때 선배님도 새로운 얼굴이라고 놀라시더라. 분장 실장님이 선배님이랑 여러 작업을 하셨는데 그분도 처음 보는 얼굴이라고 하더라."
사실 이병헌과 연출, 배우로서의 호흡은 처음이지만, 과거 연출부 막내 시절 '쓰리 몬스터' 촬영장에 함께 했었다. "제가 연출부 막내일 때 파주 세트장에서 '쓰리 몬스터'를 촬영했다. 그때 원테이크로 길게 이어지는 촬영을 하는데 무려 24번째 테이크만에 오케이가 났다. 근데 감독님이 제가 붐마이크를 거꾸로 든 것을 보시고 결국 31 테이크까지 갔었다. 이번에 '콘크리트 유토피아' 촬영도 똑같은 파주 세트장이어서 남다른 느낌이었다."
▲영화 '콘트리트 유토피아' 연출 엄태화/롯데엔터테인먼트 |
박서준, 박보영의 경우 이병헌에 대한 팬심과 더불어 시나리오를 먼저 찾아보고 하고 싶다고 먼저 연락을 해왔다고 밝힌 바. 엄태화 감독은 "감독으로 서 배우들이 먼저 하겠다고 연락을 한다는 것은 평생 쓸 운을 다 끌어다 쓴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그냥 저만 잘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시작은 부녀회장 금애를 주축으로 열리는 반상회다. 이 장면에 출연한 배우는 무려 36명으로, 영화가 던지는 질문과 일맥상통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엄 감독은 한번에 그렇게 많은 배우들과 현장에서 호흡한 적이 없기 때문에 가장 고민한 장면이라고 했다. 그는 "리허설 후 배우들이 저한테 질문을 하면 어떡하지 걱정이 되더라"라고 말했다. "40명 가까이 되는 배우분들이 한 자리에서 촬영했다. 이분들에게 최대한 자세한 설정을 줘야 했다. 그래서 몇 호 사는지, 가족 구성원, 가족의 전사까지도 일일이 써서 드렸다. 그 상태로 리허설을 했다. 그리고 한분 한분께 전화를 다 드렸다. 배우들이 다 연극 판에서도 유명하신 분들이다. 톤 조절이라던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 말씀드렸다. 36명의 배우들과 다 통화를 하고 나니 저도 마음이 편해지더라. 다음날 첫번째 테이크를 갔는데 정말 살아있는 에너지가 느껴져서 너무 좋았다(웃음)."
해당 반상회 장면에서 명화는 '외부인들을 추방하기보다 같이 살 방법을 찾아보는 것은 어떠겠냐'고 질문한다. 명화는 따뜻한 인간미와 강인함을 지닌 인물이지만, 디스토피아 세계관에서는 말뿐인 정의를 보여, 빌런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특히 감독은 이병헌, 박서준에게는 특별하게 세세한 디렉팅을 하지 않았던 것과 반대로, 박보영에게는 정확한 디렉팅을 했다.
▲영화 '콘트리트 유토피아' 연출 엄태화/롯데엔터테인먼트 |
"영탁과 민성은 시나리오에 이미 명확하게 길이 정해져 있다. 명화 같은 경우는 미묘한 부분을 잡고 가야하는 부분이 있었다. 제가 놓친 부분이 있는지, 배우님과 서로 체크하면서 캐릭터를 만들려고 했다. 명화는 이런 디스토피아 세계관에서 옳은 말을 하는 사람이 답답한, 말뿐인 정의로운 사람으로 보이는 것을 많이 경계했다. 그렇게 안 보이게 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이 캐릭터에 감정의 변화들이 많이 느껴져서 입체적으로 보여야 누군가는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 질문하는 사람이 중요했다. 그녀도 사실은 그 상황에 저항하지 못하고 순응해서 가려고 한다. 그러다가 변하기 시작하는 포인트가 남편이 변해가는 모습을 막기 위한 절박함이 이유다. 명화는 황궁아파트 가치 안에 갇히는 사람처럼 보였으면 했다. 그런 사람이 역지사지로 그런 질문을 들었을 때 표정이 중요했다."
박서준과 박보영은 극 중 신혼 부부로 호흡을 맞췄다. 디스토피아 세계관 속 민성, 명화 부부의 달달함은 극히 일부만 보여져 아쉬움을 더한다. 감독의 아이디어로 민성의 인스타그램을 개설, 연애시절의 알콩달콩한 모습들을 공개하고 있다. "민성, 명화 소품사진을 많이 찍었다. 영화 1회로 생각하고 엄청 많이 찍었다. 편집상 다 쓰지 못해서 아쉽더라. 영화 외적으로 연출자의 목적이 이 영화를 볼 때 어떻게든 몰입시켜야하는게 제 목표라고 생각한다. 다른 요소로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두 사람의 전사가 인스타그램을 만들었다. 이걸 보고 오는 분들은 두 사람의 전사를 보면서 재미를 더 느낄 수 있길 바란다."
박보영이 분한 명화가 변화해가면서, 영탁과 맞서게 된다. 엄태화 감독은 이병헌을 마주하는게 무섭다는 박보영에게 '영탁'의 영상을 캡처해서 보내주며 '갈치보듯 해라'라고 조언한 사실이 밝혀져 많은 화제를 모았다. 감독은 "사실은 멸치였다. 그때 생각난 게 그냥 멸치였다"고 비화를 전했다. "배우들이 캐릭터를 연기할 때 늑대에 대입을 한다거나 하는 경향이 있다. 그 순간 떠오르는게 멸치였다. 저희가 영화를 순서대로 찍었다. 영탁의 무시무시한 얼굴을 캡처해서 보영 배우한테 보냈다. 너무 대선배고, 한국 최고의 배우를 마주해야하니 많이 걱정을 하더라. 그걸 보면서 익숙해지라고 한 것이다. 반 장난 같은 것이었다. 근데 보영 배우가 눈을 보라면서 더 무섭다고 이걸 보고 어떻게 적응이 되냐고 하더라(웃음). 그냥 공허한 생선 눈이 떠올라서 멸치 확대한 눈을 보여주면서 멸치 보듯이 하라고 한 것이다. 이게 그렇게 화제가 될 줄 몰랐다."
▲영화 '콘트리트 유토피아' 연출 엄태화/롯데엔터테인먼트 |
감독은 '콘트리트 유토피아'가 끝난 후 토론의 장이 열리길 바란다. 서로 다르게 본 부분에 대해서 토론하고, 각자의 해답을 찾길 바라는 마음에 영화를 결심했다. "제가 원작을 보고 재미를 느껴 회사에 제안한 작품이다. 다양한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어떤 인물에 내가 몰입해서 보느냐에 따라서 엔딩이 다르게 느껴졌으면 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무드가 있다. 이 세계관에서 너무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의 희망을 벗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7년만에 돌아왔지만, 차기작은 아직은 명확하게 정해진 것은 없다. 다만, 호러 영화 연출에 의지를 드러냈다. "저는 호러 영화를 되게 하고 싶다. 호러 영화를 못 보기 때문에 무서운게 뭔지 진짜 잘 안다. 그게 재밌을 것 같아서 연출해보고 싶다." [저작권자ⓒ 스포츠W(Sports W).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