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령' 설경구, 지천명 아이돌의 기분좋은 배신

노이슬 기자 / 기사승인 : 2024-01-30 03:5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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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W 노이슬 기자] (해당 인터뷰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는 경우 읽지 않기를 권고드립니다.)


설경구의 기분좋은 배신이다. '유령' 속 설경구는 기존 영화에서 봐왔던 그의 모습이 아니다. 하지만 끝까지 관객들은 의심과 믿음의 끈을 놓지 않는다. 배우 설경구이기 때문이다.

영화 '불한당: 나쁜놈들의 세상'에서 스타일리시한 재호를 연기하며 '지천명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를 얻은 설경구가 '유령'으로 또 한번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유령' 속 쥰지는 판을 흔들고 관객을 혼란시키며 몰입도를 높인다.
 

▲영화 '유령' 쥰지 役 설경구/ CJ ENM
 

'유령'(감독 이해영)은 1933년 경성, 조선총독부에 항일조직이 심어놓은 스파이 '유령'으로 의심받으며 외딴 호텔에 갇힌 용의자들이 의심을 뚫고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사투와 진짜 ‘유령’의 멈출 수 없는 작전을 그린 영화로 설 연휴 극장을 겨냥해 지난 18일 개봉했다.

'유령'에서 쥰지로 분한 설경구는 이제껏 본적 없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쥰지는 명문 무라야마 가문 7대손으로 고위 장성의 아들이다. 조선말과 사정에 능통해 성공 가도를 달리던 엘리트 군인이었으나 조선총독부 통신과 감독관으로 좌천된 인물이다. 조선말과 사정이 능통한 이유는 그가 반은 조선인이기 때문이다.

설경구는 처음 이해영 감독에게 쥰지를 제안 받았던 때를 떠올렸다. "그 시대의 작품을 안해봐서 시대가 끌렸다. 모든 배우들이 그렇지만 이전의 모습이 반복되는 것을 싫어한다. 시대와 착장이 바뀌면 조금 도움을 받지 않을까 생각이 있었다. 이해영 감독님을 만났을 때 장르로 접근하고 싶다, 결을 달리 하고 싶다는 점이 저한테 끌렸던 것 같다."
 

▲영화 '유령' 쥰지 役 설경구 스틸/ CJ ENM
 

쥰지는 자신의 피 덕분에 조선을 더 싫어하고 질려하는 몸부림을 친다. 설경구는 쥰지의 연민에 집중했다. "정체성의 혼란, 콤플렉스, 혈통 등 꼬여있는 인물이지만 이 영화에서 기능적으로 쓰인다고 생각했다. 저는 연민이 있었다. 쥰지의 목표는 악역의 기능도 있지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연민도 있다. 그 시대의 쥰지는 기능적으로 쓰여지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조선이라는 말을 쥰지는 대사를 씹는다. 자기 속에 조선의 피가 있어서 보여주는 몸부림이다. 증오하듯이. 안 지워지는 것을 알면서 그렇게라도 지우려는 마음이 아닐까 싶었다. 단순하게 청중 앞에서 경멸스러운 대사를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다 자신한테 하는 것도 있다고 생각했다."

쥰지는 암호문 기록 담당 차경, 정무총감 비서 유리코(박소담), 암호 해독 담당 천계장(서현우), 통신과 직원 백호(김동희)와 함께 영문도 모른 채 카이토(박해수)가 짜 놓은 판, 호텔에 갇힌다. 그는 판을 뒤흔드는 역할인 탓에 차경 카이토와 계속해서 부딪힌다. 특히 여성인 이하늬와 사투를 벌이고 총격전을 펼친다. 설경구는 본인이 '통뼈'라서 액션 씬에 걱정이 있었다. 극 후반부 공예단 커튼 뒤 추격 액션은 3~4일동안 촬영됐다.

"저는 액션을 못하는 배우다. 힘으로 하다보니 상대가 다칠 수도 있다. 그래서 초반에는 부상 우려 때문에 걱정됐다. 서로 성별을 잊고 싸우는 것을 보여주자고 했다. 서로 주고 받다가 제가 하늬 배우한테 '너 이렇게 맞으면 죽는다'고 걱정도 했었다. 근데 하늬 배우가 잘 받아줬다. 상대 배우가 힘들어서 인상을 쓰면 부담스럽다. 근데 이하늬 배우는 유쾌하다. 그래서 되게 편하게 촬영했다. 내가 더 미안해질 수 있는데, 전혀 그런 부담은 안 줬다."
 

▲영화 '유령' 쥰지 役 설경구/ CJ ENM
 

반은 조선인인 탓에 일본어와 한국어를 함께 써야했다. 일본어 대사는 쥰지 분량 중 3분의 1 분량이었다. 앞서 영화 '역도산' 때는 거의 모든 대사가 일본어였던 설경구는 자신보다 급하게 캐스팅돼 2주만에 일본어 대사를 다 외운 박해수에 감탄했다. 특히나 호텔 내 식당 씬은 박해수가 홀로 일본어로 이끌어가야 했다.

"저는 '역도산'때 너무 고생해서 그런지, 조금 덜 부담스러운 부분은 있었다. 연습은 당연히 했다. 발음도 계속 반복하고 일본어 선생님한테 발음 하나하나 꼼꼼하게 체크했었다. 사실 일본인 역할은 일본 배우가 캐스팅됐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못 들어왔다. 2주만에 일본어 대사를 통으로 외우는 것은 무리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박해수 배우가 그걸 해냈다. 일본어 선생님이랑 거의 합숙을 했다. 식당 내부 세트 촬영을 제일 먼저 했다. 그때 기운이 너무 좋았다. 그걸 해내더라. 2주동안 해냈다는게 물리적으로 어려운 시간이었는데 너무 대단해서 박수쳤었다."

'유령'으로 처음 호흡한 이해영 감독과의 호흡은 어땠을까. 설경구는 "이해영 감독은 짜여진 각본대로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연극적인 부분도 있다. 약속에 따라서 배우가 내적으로 보여주는 것인지, 키워서 드러내는지를 많이 신경쓴다. 천계장 역의 서현우씨 같은 경우는 애드리브를 칠 수 있는데 안 했다. 감독님이 안 좋아하셨다"고 호흡 소감을 밝혔다.
 

▲영화 '유령' 쥰지 役 설경구 스틸/ CJ ENM
 

사실 '유령' 촬영 중 설경구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섬세한 이해영 감독의 주문이었다. "꼭짓점, 중심점을 정확히 두고 좌우, 위아래 대칭이 똑같아야 한다. 모자 챙 조차도 2mm만 내리라고 주문할 정도였다. 정말 되게 정확한 감독이다. 결국엔 마지막 공예단 장면에서 모자가 너무 신경쓰일 것 같아서 모자를 벗는다고 하고 찍었다."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이라면 '배우 설경구'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 그의 최근작만 해도 '자산어보', '킹메이커'다. 쥰지가 판을 뒤흔드는 인물로 그려지지만, 명확한 확신이 생기기까지 쥰지 캐릭터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 하지만 설경구는 기분좋은 배신을 선사한다.

"사실 영화를 보다보면 다들 알게 된다. 근데 몇몇 분들은 끝까지 저를 (유령으로)믿었다고 하더라. 하하. 그렇게 봐주셨다면 정말 감사하다."
 

▲영화 '유령' 쥰지 役 설경구/ CJ ENM
 

'유령'으로 올 한해를 시작한 그는 아직도 공개되지 못한 작품들이 많이 남아있다. '지천명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를 얻은 후 맡은 캐릭터가 멋있어진 것이 아니냐는 물음에는 영향은 없다고 했다.

"작년에 3편을 공개했다. 올해도 '길복순'도 '더 문'도 아직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사실 '자산어보'도 사극을 안 해봐서 한 것이다. 흑백일줄은 몰랐다. 사극을 하고 싶어서 한 것이지 멋있을 것 같아서 한 결정한 것은 아니다. 물론 저를 환영해 주는 것은 되게 힘 받는 일이다. 응원해주시면 더 힘이 난다(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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