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홀로 선 권유리에 선물같이 다가온 '돌핀'

노이슬 기자 / 기사승인 : 2025-03-27 06:3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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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W 노이슬 기자] 데뷔 17년차 권유리가 화려함을 벗어던지고 소박한 모습으로 스크린을 찾았다. 걸그룹 소녀시대에서 연기자로서 자립, 홀로서기를 결심하던 당시 '돌핀'을 만난 권유리는 누구보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나영에 공감했다.


지난 3월 13일 개봉한 영화 '돌핀'(감독 배두리)은 삶의 변화가 두려운 30대 여성이 우연히 발견한 즐거움을 통해 용기를 얻어 세상으로 튀어 오르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권유리가 첫 단독 주연으로 활약했다.
 

▲3월 13일 개봉한 영화 '돌핀' 나영 역 권유리/㈜마노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
 

'돌핀'이라는 말은 볼링공이 도랑에 빠졌지만 마지막에 돌고래처럼 튀어 올라 볼링핀을 쓰러뜨리는 예상치 못한 뜻밖의 행운을 뜻한다. 비록 점수 처리는 안되지만, 안타까운 순간에 작은 '희망'을 선사하는 선물같은 순간이다. 극 중 볼링장을 운영하는 미숙(박미현)이 만들어낸 말이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기에 영화는 관객들에게 힐링을 선사하고 있다.

권유리는 '돌핀'에서 작은 바닷가 마을에 사는 평범한 30대 여성 나영으로 분했다. 2007년 시트콤을 시작으로 연기자로서 필모를 쌓아온 권유리는 첫 단독 주연을 맡았다. 극 특성상 나영이의 서사를 중심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촬영 분량도 많고, 감정선도 다양해서 부담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권유리는 나영이 가진 감정선에만 집중했다. "첫 주연작이자 단독 주연에 대한 인지는 많이 없었다. 글이 무겁고 어렵지 않은 마음이었다. 나영이의 서사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은 맞지만 저는 가족들이나 사장님, 새로운 가족, 이사 온 외부인의 감정까지 모두 공감했다. 오히려 다 촬영한 후 개봉하니 주연의 무게감을 느낀다. 포스터에 제 얼굴만 나왔는데 얼떨떨하더라."

대중이 익히 알고 있는 화려한 걸그룹이었던 권유리의 모습과는 달리 나영은 소박하고 수수하다. 조용하고 표정 변화도 거의 없기 때문에 다채로운 감정을 그려내는데 한계가 있다. "나영은 작은 마을에 사는 마을 지킴이 같았으면 했다. 내가 뭔가를 굳이 하지 않아도 살아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제 기존의 이미지를 덜어내고 비워내고 새롭게 칠해지는 것이 담백했으면 했다. 나영만의 내재적인 아픔과 상처가 담담히 비춰지려면 얼굴도 메이크업을 최대한 덜어내고 맨 얼굴을 가진 모습이었으면 했다. 헤어나 의상도 생활감이 묻어나도록 돌려입기도 했다. 서천에서 촬영내내 그렇게 지내면서 나영이의 정서를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배우들과의 하모니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배우들과 친숙함을 자연스럽게 갖고 있어야 가족같은 집합체 느낌이 나겠다 싶었다."

 
▲3월 13일 개봉한 영화 '돌핀' 나영 역 권유리/㈜마노엔터테인먼트

비록 점수 처리는 안되지만 뜻밖의 행운을 뜻하는 돌핀. 사실 작은 바닷가 마을 지킴이 나영의 인생은 돌핀과도 닮아있다. 어린 시절 양친을 여읜 후 지금의 가족을 만났기 때문이다. 돌핀이 의도하지 않았듯이, 나영이 의도한 적 없는 삶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영은 이를 더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런 나영의 올드한 마인드에 대한 시선을 엇갈리기도 한다. "나영이 처음 '돌핀'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한번에 알아채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 성격상 당장 물어본다거나 자신에게 좋은지, 나쁜지에 대한 판단조차 안 하고 넘겼을 것이다. 그런 성격에 집에 대한 남다른 애착이 생긴 것도 아닐 것이다. 다만 원해서 이뤄진 것들이 아님에도 갖고 있는 것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흥미로운 점은 매 씬마다 나영의 얼굴로 끝난다는 점이다. 권유리에게는 매 장면이 숙제였다. 그 정답은 배두리 감독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권유리라는 얼굴로 씬이 마무리된다는 것은 감사하고 신기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돌핀'이라고 할 때 제 얼굴이다. 캐릭터의 감정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은 배제시켰다. 감정의 표현이 설명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게 연기할 때 있어서 어렵기는 했다. 나영이는 켜켜이 쌓아서 응축된 함축적인 표현 방식을 한다. 대사나 숨겨진 서브 텍스트를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감독님과 이야기하다보니 성향과 화법과 화술이 감독님과 나영이랑 닮아있더라. 감독님을 이해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통해서 나영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 감독님도 표현을 굉장히 아껴서 하신다. 고심 끝에 표현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더 쉽게 나영이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씬을 마무리 짓는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대사는 드러내면서 할 수 있지만 표정으로만 가져간다는게 쉽지 않은 부분이라 생각했다. 매 장면 끊임없이 의심했다. 그럴 때마다 길해연 선배님이 많이 도움이 됐다. 그러면서 의심을 덜어낼 수 있었다."

 

영화의 시작과 끝은 나영의 심리변화를 대변해준다. 극 초반 집안의 모든 문과 창문을 철저하게 닫고 커튼까지 쳤던 반면, 마지막에는 바람이 들어올 수 있게 연다. 권유리는 "내가 가진 것을 꽉 쥐고 있는 나영의 모습을 커튼을 닫는다는 것으로 형상화한 것 같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커튼을 여는 장면이 있다. 결국은 순환을 의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3월 13일 개봉한 영화 '돌핀' 나영 역 권유리/㈜마노엔터테인먼트

'돌핀'을 제안받았을 당시 권유리는 걸그룹 소녀시대에서 홀로서기를 결심하던 시기였다. 13살 때부터 연습생을 시작, 고생 끝에 2007년 걸그룹 소녀시대로 데뷔했다. 극 중 그 어떤 변화도 받아들이지 않던 나영이 시나브로 변화를 받아들이게 되는 곳이 바로 볼링장이다. 권유리에게 볼링장 같은 곳은 압구정 지하철역과 이전 SM엔터테인먼트 사무실을 오가던 길이다. 권유리는 질문을 듣고 당시를 떠올리며 울컥하기도 했다.

"연습생 때가 13살 때였다. 일산에서 학교 다니면서 연습실을 오가는 것을 반복했다. 그때 얼마나 미래가 뿌였는지 모르겠다. 늘 안개가 자욱하다고 생각했다. 결정된게 아무것도 없었던 때다. 보장된 게 없었다. 매일 반복되는 삶이었다. 교복을 입고 그렇게 수없이 오갔던 길이다. 성인이 돼서도 걸었다. 해가 저무는 시간 때마다 연습생 시절 걸었던 길과 그 길에 들었던 생각이 지금도 난다. 되게 어두울 때. 연습 끝나고 오디션 떨어지고 걸어 다니면서 여러가지 감정들이 들었다. 지금도 생각이 많을 때 걸으면 그때가 떠오른다. 최근에도 떠오른 적이 있다. 취미가 걷는 것이다. 생각이 복잡하다, 쉬고 싶다 할 때 혼자 걷는다."

권유리는 K팝 2세대를 대표하는 걸그룹으로서 정상을 찍고, 연기자로서 대중에 인정받고 제2막을 걷고 있다. '돌핀' 속 나영이 집과 작은 섬마을을 버릴 수 없듯이, 권유리에게도 모든 것을 놓고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았다. 권유리는 "되게 큰 욕심을 냈던 적도 있고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나의 괴리감에 빠져서 힘들었던 순간도 있다. 돌핀처럼 행운의 순간들이 찾아온 적도 있다. '돌핀' 나영이를 만난 시점이 제가 소녀시대로서 활동을 열심히 하다가 홀로서기를 하는 시기와 맞물렸다. 많은 제 나이 또래들이 비슷하게 느낄 것 같다. 자립심이 있어야 하는데 그룹 생활하다가 혼자 하려니까 어렵고 따끔거리는 시기가 많았다. 맞닥뜨리는 것만으로도 따갑더라. 원래 8분의 1의 힘만 썼으면 됐는데 온전히 1의 힘을 써야 했다. 처음해보니까 생소하기도 했고 어렵기도 했다. 해왔던 것이라 순조롭게 될 줄 알았는데 혼자 하니까 아니더라. 많은 사람의 도움과 힘이 합쳐져서 이뤄냈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그런 것들이 되게 힘들고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3월 13일 개봉한 영화 '돌핀' 나영 역 권유리/㈜마노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

"너무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어서 한번에 정리한 적이 있다. 그때 다시 전화해서 찾아온 적도 있다. 홀가분했던 나로 돌아가고자 산에 올라가서 '정말 좋다' 하면서 자연인으로 살았던 것처럼 가까이 살자고 마음먹고 내려와서는 다 잊어버리더라. 다시 세속적인 면들에 대해 갈망하고 원한다. 어느날은 인기 같은 내가 가지고 누렸던 것들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 꽉 쥐기도 했다. 모두에게 사랑 받는 것은 놓고 싶지 않더라. 근데 그게 욕심이었다. 어쩌면 그것만이 답이 아닐 수 있겠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다수를 만족시키는 것보다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더 특별한 것일수도 있겠다는 새로운 생각도 들었다. 그게 새로운 것의 받아들임의 시작이었다. 지금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과정이었다. 균형있게 살자고 고민하는 중이다."

 

권유리는 지난 2017년부터 본격 정극에 출연했지만 장르에 따라 평이 갈리기도 했다. 하지만 2021년 MBN 창사 10주년 드라마 '보쌈-운명을 훔치다'에서 화인옹주 역으로 안정적인 연기를 펼치며 호평이 쏟아졌다. 첫 단독 주연작인 '돌핀'은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고, 오는 29일 대만과 6월 홍콩 개봉을 앞두고 있다. '돌핀'은 권유리에게 선물같은 작품이다.

 

"감독님과 첫 미팅했던 날이 떠오른다. 흰 티에 맨 얼굴로 나타나서 길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우직해보였고 담담하게 내 얘기를 하는게 묵직하고 단단해 보였다고 하시더라. 고집있어 보였다고 하더라. 그게 나영이와 비슷해보였던 것 같다. 정말 친한 사람들만 아는 저의 모습이었던 것 같은데 그걸 발견해주시고 새로운 색채를 입혀주셔서 반갑고 기다렸던 작업인 것 같다. '돌핀' 촬영을 2022년에 한 달 반정도 했다. 작품과 나영이를 만난 후 제가 조금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나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 깊어진 것 같아서 그런 부분에서 성장한 것 같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보고 감독님께 전화드렸었다. 감사하고 죄송하고 미안한 부분이 있다. 선물같은 작품 주셔서 용기내 주셔서 감사한다고 했다."

 

촬영 내내 의심이 가득했던 '돌핀'. 배누리 감독만큼이나 권유리에 힘이 돼준 사람은 엄마 정옥으로 함께한 배우 길해연과 볼링장 사장을 연기한 박미현이다. "두 분은 정말 많이 닮았다. 길해연 선배님은 제가 이 작품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해준 결정적인 분이다. '미저리' 작품으로 보고 꼭 한번 뵙고 싶었는데 엄마 역할로 캐스팅돼 있으셨다. 선배님이 오는 순간부터 나영이가 풀리기 시작했다. 궁금증이 풀리고, 나영이에 대한 해석도 깊이 있게 많이 알려주셨다. 그걸 현장에서 수월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까지도 꼼꼼하게 알려주셨다. 어색하다고 하면 한쪽으로 데려가셔서 연습시켜 주시고 알려주실 정도로 에너지를 써주셨다. 모든 스태프가 단합할 수 있도록 자리도 많이 마련해주셨다. 리더로서 선배로서 너무 많이 배웠다. 닮고 싶었다(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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