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적은 분량에 비해 임팩트 있는 배우를 '신스틸러'라고 한다. 말 그대로 그 씬을 자신만의 매력으로 채워 돋보였다는 좋은 의미다. 매 작품 안정적이고 몰입도 높은 연기력을 선보여온 김성철이 '올빼미'로 또 한번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올빼미'(감독 안태진)는 밤에만 앞이 보이는 맹인 침술사가 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후 진실을 밝히기 위해 벌이는 하룻밤의 사투를 그린 스릴러다. 개봉 이후 꾸준히 입소문을 타고 7일만에 100만 관객 돌파, 개봉 2주차 주말에도 굳건히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5일 기준 누적 관객수는 176만이다.
▲영화 '올빼미' 소현세자 役 김성철/NEW |
김성철은 '올빼미'에서 비운의 역사적인 인물, 소현세자로 분했다.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던 소현세자는 8년만에 귀국하고 아버지 인조(유해진)와 의견 대립을 이룬다. 짧은 분량이지만 김성철은 소현세자로 관객들의 마음을 훔쳤다. 관객 뿐만 아니라 함께 호흡한 유해진을 비롯해 안태진 감독까지도 극찬을 쏟아내고 있다.
차기작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어렵게 시간을 쪼개 취재진을 만난 김성철은 "저는 영화 보고 아쉬운 부분도 많았다. 근데 사람이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혼자는 좋은데 직접적으로 들으면 되게 쉽지 않다. 어떻게 반응할지도 모르겠다. 저는 보통 '아닙니다' 라고 한다. 기분은 좋다. 이번에는 기사로 보면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많이 찾아주시니 너무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올빼미'는 인조실록에 쓰여진 소현세자의 죽음을 묘사한 글을 모티브로 하는 팩션극이다. 소현세자는 실존인물이고, 그의 생애가 길지 않았기 때문에 분량이 크지 않아 아쉬움을 더한다. 김성철은 "소현세자의 죽음으로 인해 극이 훅 진행된다. 회상 장면이 몇 개 더 나왔으면, 조금 더 기억을 해주셨겠다는 생각도 있지만 지금으로 만족한다. 분량은 애초부터 알았던 것이다. 분량에 대한 욕심이 많이 없다. 캐릭터만 돋보이면 되고 임팩트 있는 단 한번의 장면만으로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성철은 무엇보다 실존인물을 연기해보고 싶었었다. "실제 모델이 있는 캐릭터에 항상 도전하고 싶다. 갈망한다. 해외 영화나 대작을 보면 분장도 정확히 따라하고 캐스팅을 맞게 비주얼을 한다. 초상화 한 두개 남아있는데 너무 다르더라. 아무리 분장해도 못하겠더라. 학질 때문에 아팠다는데 살을 20kg을 찌워야할 것 같더라(웃음). 기록에 너무 좋게 써 있다. 왕위에 오르지 못한 비운의 세자다. 비운을 표현하고 싶었다. 비운을 표현하고 싶었다. 실존인물이니까 기록에 있는대로 성격을 만들어내야 했다."
▲영화 '올빼미' 소현세자 役 김성철 스틸/NEW |
'올빼미'는 제목처럼 극의 분위기와 색감이 새벽녘을 떠올리는 차가운 파랑이다. 특히 소현세자의 죽음을 암시하듯 소현세자와 그의 아내 강빈(조윤서)은 푸른 계열로 연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현세자는 극 중 유일한 따스함을 그렸다. 경수(류준열)가 주맹증(밝은 곳에서의 시력이 어두운 곳에서보다 떨어지는 증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천리경을 선물하는 장면이다.
"경수의 편이 소현세자밖에 없다. 심적으로 도와주는 사람은 소현세자 뿐이다. 경수의 시점으로 흘러가는 영화니까 관객들도 그 시점으로 본다. 그래서 마음 써주는게 와 닿은 것 같다. 저도 만족하는 장면이다. 음악적으로 좋은 bg가 나온다. 따뜻한 테마곡도 한 몫 했던 것 같다(미소)."
김성철이 가장 아쉬워 했던 장면은 소현세자의 첫 등장이다. 청에 끌려갔다가 아내와 귀국한 그는 부모 없이 홀로 자란 자신의 아들인 원손을 처음 맞이한다. "첫 등장이 조금 아쉬웠다. 귀국하고 원손 아들 만나는 장면이다. 저는 좀 아쉬웠다. 그때 8년의 힘듦을 표현하고 싶었다. 우리 가족의 재회를 표현하고 싶었는데 좋아만 할 수 없는 걱정 근심이 가득한 표현을 담고 싶었는데, 아들이 너무 그리웠고 가족의 행복에 조금 더 집중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올빼미' 소현세자 役 김성철/NEW |
'올빼미'로 함께 호흡한 유해진, 류준열은 앞서 인터뷰에서 김성철에 대한 극찬을 쏟아낸 바. 김성철은 부자로 호흡한 유해진과 닮았다는 반응에 공감했다. "예전에 제가 선배님 나왔던 영화 오디션을 본 적이 있다. '닮아서 불렀다'고 한 적이 있다. 대기하실 때 계속 고민하시고 대사나 수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미디어에서 봤던 선배님의 모습과 달랐다. 엄청 집중하셔서 말씀을 먼저 못 붙였다. 먼저 다가와주셨다(웃음). 많이 이야기 안했는데 '아버지' 했는데 '너 같은 아들 낳은 적 없다'고 하셨다 분위기를 풀어주려고 하시더라. 호평 기사 보고 바로 문자 드렸다. 네 홍보만 하다가 왔다고 하더라. 감사했다. 제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배우가 칭찬해주면 나 잘 살고 있구나 생각한다. 잘못된 길은 아닌거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유해진 선배님께 정말 많이 배웠다."
또 김성철은 "아버지랑 지구본 보면서 이야기하는 장면의 지구본 그림은 CG다. 초록색을 보면서 여기가 조선 땅이라고 한다. 그림을 빨리 달라고 요청했었다. 지금 지구본이랑 달라서 못 알아보겠더라. 내가 처음 접했듯이 소현세자도 처음 접했을 때 어떤 기분일까 상상을 많이 했다. 계속해서 어떤 자극들이 오고 해진 선배님과 리허설 할 때는 또 다른 에너지가 들어와서 좋았다"고 덧붙였다.
류준열과는 극 중 가장 따스한 장면을 연출했지만, 두 사람은 특별한 대화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신뢰했기에 두 사람 모두가 만족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준열형 작품을 많이 봤으니까 저 혼자만의 신뢰도가 있다. 모니터 할 때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다. 형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느끼고 그에 맞춰서 같이 했었다. 에너지 자체가 잘 맞았던 것 같다. 같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다. 굳이 대화를 많이 안해도 우리는 대사로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있었다. 제가 준열이 형 또래 형들과 잘 지내서 굳이 말 안해도 잘 되겠다 했다. 연기할 때 되게 편했다. 좋은 기억이다."
그러면서 김성철은 "'올빼미'는 다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특수분장 5시간을 총 세번 했다. 15시간인데 분장팀한테 너무 감사드린다. 새벽부터 나와주셔서 해주셨다"고 덧붙였다.
▲영화 '올빼미' 소현세자 役 김성철/NEW |
무려 15시간을 특수분장 하게 된 장면은 바로 소현세자의 죽음 씬이다. 소현세자의 죽음 이후 본격 전개가 이어지는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엄청나게 긴장감 있어야 한다. 그로테스크했으면 했고, 이 장면이 충격적이었으면 한다고 감독님과도 이야기했다. 평화롭던 이 영화에서 비주얼적으로 놀란 것이 나오면 관객들도 훅 빨려들어가지 않겠나. 그래서 몸짓을 더 그럴 듯하게 했다. 피 분장이나 눈, 코, 입, 귀에서 나오는 피도 가장 충격적이고 현실적인 것을 고민했다. 몸에 피부를 덧 댔다. 얼굴에 있는 침은 붙인 것이다. 쉴 때도 나체로 쉬어야했고, 공간이 있으면 배가 나온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쉽진 않았던 장면이었다. 많이 도와주셔서 배려많이 받으면서 촬영했다."
'올빼미'에서 신스틸러로 활약했지만, 사실 김성철은 '신스틸러'라는 말보다 '치트키'라는 수식어가 더 좋단다. "신스틸러라는 말은 그 사람이 이 씬에서 돋보였다는 말이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크게 욕심을 안냈다. 모든 배우들이 다 그랬다. 적재적소에 적당한 캐릭터로 나왔다고 생각한다. 극에서 그 사람이 돋보였다고 하면 방해한다는 느낌이 든다. 저한테 과분하다. 공연할 때부터 들었던 얘기다. 어떤 분이 '치트키' 라는 수식어를 써 주신적 있는데 그게너무 좋았다. 이 배우의 등장으로 극이 더 수월해지는 것이 아닌가, 게임할 때 치트키를 쓰고 더 원활해지는 거니까 그 수식어가 좋다. 신 스틸하지 않고 어우러지고 싶다."
김성철은 대중에 2019년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에서 잎생 역으로 송중기와 브로케미로 시청자에 눈도장을 찍었다. 이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그 해 우리는'에서 짝사랑남 캐릭터를 연기, 아련한 서사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사랑받는 대세 배우로 떠올랐다. 김성철의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은 '장사: 잊혀진 영웅들'이다.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을 찍고 많은 것을 내려놨다. 모든 배우들은 쪼가 있다. 예전에는 연기를 잘해야겠다는 욕심이 너무 많았다. 입증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연기로 입증하고 싶어서 힘이 더 들어갔던 것 같다. 이번에는 눈이나 자세나 시선 처리 이런 것으로 표현하고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욕심을 많이 안내서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욕심이라는 게 과하면 안 좋은 것 같다. 여태 연기할 때는 과했던 것 같다. 30대 접어 들면서 욕심을 많이 내려놨다. 그때 그 영화 보고 욕심이 그득그득한 스스로의 모습이 실망스럽더라. 그때 감독님이 왜 그렇게 나를 도와주셨는지 알게 됐다. 내가 욕심내고 잘 하고 싶다고 하면 역효과가 나는구나 알았다. 이제는 나 자체가 좋고 나은 사람이 되면 연기도 발전하지 읺을까 생각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영화 '올빼미' 소현세자 役 김성철/NEW |
어느 덧 내년이면 데뷔 10년차를 앞두고 있는 김성철은 "열심히 살았고 뜻깊은 10년일 것 같다. 데뷔할 수 있을까 걱정도 많았다. 열심히 잘 살았다고 생각할 것 같다. 후회는 하지 않을 것 같고. 아마 내년부터는 계획을 좀 세워볼까 한다. 작품적으로도, 제 삶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도 찾아나가고 싶다"고 바랐다.
이전에는 많은 것들을 인정하지 못하고 고집을 부렸지만, 지금은 타협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인정할 수 있는 인물이 됐다. 스스로의 변화에 좋은 반응이 이어지고 있기에 지금의 모습에 만족한다. "데뷔 전에 어떤 연출님께서 저보고 '보석같은 존재'라고 하셨다. 그게 23살 때였다. 그때는 왜 그런 말씀을 하실까 했는데 너무 좋아해주셨다. 저희 분야 자체가 신선함이 중요하고 '올빼미'의 새로운 얼굴이 됐다면 영광이다. 저도 영화볼 때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번 영화에서 그런 존재가 된다면 내 할 몫이 잘 되었구나 생각할 것 같다."
스스로를 무채색이라고 말하는 김성철은 앞으로도 작품에 잘 어우러져가고 싶다. "저는 무채색이라고 생각한다. 강렬한 색을 표현하는 배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품에 묻혀 어우러져서 가고 싶은 배우다. 저는 백지같은 배우가 되고 싶지만 작품하다보니 맡은 역할들이 중복되는 것도 있고, 제 이미지 자체가 이별남 짝사랑남 이런 것으로 가니까 '내가 안타깝나?' 하는 생각도 한다. 나는 아련함을 갖고 있나? 내 인생은 너무 행복한데? 그런 생각도 한다. 굳이 색을 나누자면 아련함인 것 같다. 그게 저의 주 무기인 것 같다(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