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박은 이런 역대급 지질하다 못해 불쌍한 빌런으로 분해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2020년 '산후조리원'에서는 '국민 연하남편'에 등극, 지난해 '너는 나의 봄'에서 사이코패스 연기, '기상청 사람들'에서 역대급 지질한 빌런 한기준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시청자들에 다양한 재미를 선사했다.
▲JTBC 토일드라마 '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편' 한기준 役 윤박/에이치앤드엔터테인먼트 |
JTBC 토일드라마 '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편'(이하 '기상청 사람들')은 3일 최종회 시청률 7.3%로, 15회가 기록한 5.7%보다 1.6%p 상승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종영을 앞두고 스포츠W와 화상 인터뷰를 진행한 윤박은 "촬영을 마치고 나서도 스스로 설정한 도전이 성공인지 실패인지는 잘 모르겠다. 너무 감사하게도 '박이 너 아니었으면 안됐다'는 반응을 주고 계신다. 스스로도 거부감이 들었던 캐릭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캐릭터를 잘 만들어주신 감독님 배우 스태프들까지 감사하다. 좋은 반응까지 주셔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 또한 좋은 결말을 맺을 수 있겠구나, 과정이 순탄하다고 좋은 결말이 있는 것도 복잡하다고 해서 나쁜 결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 작품인 것 같다"고 종영 소감을 전했다.
윤박이 분한 한기준은 겉으로 보기엔 반듯한 외모를 지녔고, 논리정연해 설득력 또한 뛰어나다. 신입시절 예보국 총괄팀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그는 여자친구 하경(박민영)의 서포트로 대변인실로 스카웃됐다. 반듯한 외모와는 달리, 드라마 시작부터 결혼을 앞두고 바람을 펴 파혼했다. 초반부터 '쓰레기' 낙인을 찍고 시작한 캐릭터가 한기준이다. 윤박은 처음엔 거절했다.
"연기 변신을 의도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거절하려고 미팅을 갔다가 감독님 말씀에 설득을 당해서 참여하게 됐다. 한기준이 나쁜 캐릭터는 아닌데 지질해서, 대본에만 충실하면 자칫 위험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박이 너의 성향을 가지고 연기하면 동의를 얻지 못해도 이해는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주셨다. 그 말씀이 저한테 도전으로 다가왔다. 도전해보고 싶었다. 한기준을 연기했을 때 시청자분들도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마냥 나쁜놈으로만 그려지면 도전에 실패하는 것이다. 도전해 보고 싶어서 하게 됐다."
▲JTBC 토일드라마 '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편' 한기준 役 윤박/에이치앤드엔터테인먼트 |
한기준은 일명 '발암캐'로 시청자들의 불쾌지수를 높인 반면, 윤박에겐 칭찬이 쏟아졌다. 윤박은 "주변 반응도 너무 좋다. 제가 나오는 클립은 조회수나 댓글이 많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많이 달려서 관심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댓글을 떠나서 지인들의 연락이 제일 와 닿는다. 친척 누나도 매형이 잘 보고 있다고 말해줄 정도다. 주변에서 본방사수 잘 하고 있다고 연락을 많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시청자들에 한기준 캐릭터가 이해를 얻을 수 있게 한 것은 윤박의 연기였다. 그는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연기하려고 하지 않았다"며 연기 포인트를 전했다. "기준과 저의 닮은 점은 겉으로 보이는걸 중요시한다. 저도 그런 경향이 있다. 그 이외의 모습들은 닮은 것 같지는 않다. 기준을 연기할 때 중점적으로 생각한 것은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연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의도를 가지고 하는지, 순수하게 얘기하는 지가 중요했다. 기준은 본인이 그렇게 생각해서 얘기하는 것이지 특정 목적 달성을 위해서 하는 말들이 아니다. 그런 부분들을 직설적으로 보여준다면 '원래 저런 애 같다'고 이해하실 것이라 생각했다. 어떤 것을 해도 납득이 가고, 여지를 주려고 유연하게 풀어놨던 지점들이 기준이를 나쁘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를 만든 것 같다."
그럼에도 기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계속됐다. 파혼 후 유진(유라)과 결혼해놓고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하경이 이시우(송강)와 같이 다니는 모습에 집착했다. 윤박은 "이해할 수 없었던 행동이 참 많았다. 특히 하경이랑 시우가 캠핑을 가는데 자신의 어머니 생신이고 부인이 알려주고 인지하고 있음에도, 어떤 목적 달성을 위해서 미행하는 씬과 그 뒤의 행동들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과해도 모자랄 판에 적반하장이었다"고 전했다.
▲JTBC 토일드라마 '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편' 한기준 役 윤박/에이치앤드엔터테인먼트 |
스스로도 가장 지질하다고 느꼈던 장면은 유진과 시우가 결혼 전 동거했다는 사실을 알고 술 취해서 하경의 집을 찾아가 하소연 하는 씬이란다. "당시 집 앞까지 갔다가 현관문에서 멱살 잡혀서 집 앞 밴치로 끌려간다. '대화를 끊고 하경이가 가려고 하자 기준이가 흐느낀다' 라고 대본에 써 있었다. 그래서 다시 대화를 이어가는데 하경은 흥분한 상태였고, 간다고 하면 제가 흐느낌으로 가는 하경이를 붙잡을 수가 없겠더라. 그래서 현장에서 소리내면서 울면서 했더니 하경이 깜짝 놀란 것이다. 그 장면이 가장 지질해 보였다."
모든 드라마의 갈등은 후반부에 마무리되는 법. 철 없고 지질했던 한기준은 아내 유진과 갈등 끝에 임신한 소식을 듣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성장한다. 윤박은 "16회에서 기준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해된 장면보다 마음에 와 닿은 장면은 유진이랑 아이를 낳아야할까 말아야할까 고민하다가 유진이에 진심을 담아서 아이에 대해 얘기를 하는 씬이다. 그 씬이 마음에 와 닿았다"고 했다.
도전하는 마음이 컸지만 윤박은 '한기준'을 연기하며 이해가 되지 않아 힘들었다. 앞서 '기상청 사람들' 제작 발표회 당시 원형탈모가 왔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기준은 결혼 생활을 잘 유지하려고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기준의 결혼 생활 방식이 다 마음에 안 들었고 이해가 안 됐다. 그런데도 해야한다. 하기 싫어서 눈물 날 것 같은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헤어 담당하는 형이 알려줘서 원형탈모 사실을 알게 됐다. 두 달 반 정도 치료 받았다. 두피에 주사맞고 나아졌다."
▲JTBC 토일드라마 '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편' 한기준 役 윤박/에이치앤드엔터테인먼트 |
'기상청 사람들'은 기존의 드라마에서 다루지 않았던 '기상청'을 소재로 해 신선함을 안겼다. 기상청 대변인실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 있을까 궁금했다. "제 직업은 날씨와 밀접하지만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잘 몰랐다. 드라마 찍으면서 TV화면에 자막 한 줄을 내보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치열하게 회의하고 갈등하고 고민하는지 알게 됐다. 촬영 중간에 쉬는 날 식사하는데 TV에 날씨 자막이 나오더라. 아버지께 저 한 줄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치열한 줄 아냐고 말씀을 드렸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노고가 있고 힘든 곳이구나, 요즘은 날씨 조금만 틀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됐다(웃음)."
날씨 예보와 관련있는 매 회차의 부제도 눈길을 끌었다. 첫 회 '시그널'부터 5회 '국지성 호우', 8회 '불쾌지수' 등 드라마의 내용을 유추할 수 있게 했다. 윤박이 가장 좋아하는 부제는 11회 '1ºC'다. "물이 100ºC에서 끓는데 1º만 올리면 끓는다. 조금 만 다가가면 뭘 할 수 있는데 그 1ºC가 모자라서 항상 실패하는 모습들이 공감갔다. 저도 살면서 100으로 했다고 하지만 99밖에 안해서 잘 안 됐던 것들이 생각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