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당구선수 김진아, "11년 해온 포켓볼보다 3쿠션이 좋아진 이유는..."

최지현 / 기사승인 : 2019-10-26 1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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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아(사진: 스포츠W)


국내 최초의 여자 3쿠션 리그 ‘2018 알바몬 여자프리미어당구리그(이하 WPBL)’에서 활약중인 프로 당구선수 김진아를 만났다. 

 

김진아는 11년간 포켓볼 선수로 활약하다 최근 3쿠션 선수로서 WPBL에서 활약하고 있는 화제의 주인공이다.  

김진아는 지난 19일 막을 내린 제99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유승우와 한조를 이뤄 혼성복식에 출전해 동메달을 획득했다. 김진아는 우선 파트너 유승우에게 공을 돌렸다. 

 

“포켓볼 국내랭킹 1위인 유승우 선수와 함께 출전한 덕분이죠. 저를 많이 이끌어줬어요.”


김진아는 전국체전 포켓볼 최연소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하다. 포켓볼 선수들에게 가장 중요한 대회가 전국체전이라고 밝힌 김진아는 2014년 전국체전 포켓9볼에 출전해 23살의 나이로 금메달을 획득할 당시 상황을 잊을 수 없다. 


“당구는 많이 칠수록 실력이 늘어나는 스포츠라서 경력이 쌓일수록 그 경력을 무시할 수 없어요. 근데 당시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믿을 수가 없었죠. 다른 팀들은 시합 중이었는데 금메달을 딴 순간 제가 소리를 지르고 체육관을 뛰어다니는 바람에 시합이 중단됐었다고 해요. 근데 저는 기억이 안나요. 너무 기쁘기만 했어요.”

포켓볼만 치던 그가 3쿠션에 입문하게 된 것은 ‘허사부’때문이었다. ‘허사부’는 대학당구연맹 사무국장 허해룡 프로다. 당구 고수로 유명한 ‘허사부’에게 3쿠션을 배운지 1년 6개월 정도 된 김진아는 우연히 WPBL선발전 공지를 접했고, 기회라고 생각해 망설임 없이 출전을 결심했다.

 

수영이 영법에 따라 세부종목이 나눠지듯 당구도 공에 따라 3쿠션, 포켓볼 등 세부종목이 나뉜다. 포켓볼과 3쿠션은 공이 다르다. 뿐만 아니라 공을 치는 큐, 경기를 진행하는 당구대, 자세도 다르다. 그래서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김진아는 선발전에서 전체 2위를 기록했다.

“WPBL에 선발이 되고 나서 ‘낙하산’이라는 얘기가 많았어요. 국내랭킹 55위인데 12명에 뽑혔으니까. 근데 선발전에 출전한 48명의 선수 중 저보다 기록이 좋았던 선수가 단 한 명뿐이었어요. 같은 팀의 김예은 선수가 1위를 하고 제가 2위를 했어요. 그날 운이 좋았던 건 맞지만 낙하산까지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혜성처럼 등장한 김진아는 WPBL 첫 경기에서 국내랭킹 2위인 이미래를 이겼다. 하지만 쟁쟁한 선수들 사이에서 이내 연패에 늪에 빠진 잔카는 3차 리그까지 4팀 중 꼴찌였다. 패배를 거듭했지만 팀원들끼리만큼은 서로를 격려하며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덕분에 잔카는 3차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벤투스를 제압하고 3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처음에는 모두들 저를 버리는 카드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고. 제가 3쿠션 시합에 나가본 적이 없어서 저에 대한 데이터가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저 또한 제가 얼마만큼 치는지 몰랐어요. 근데 경쟁을 해보니까 최하위권은 아닌 거 같아요. 팀에서 기본은 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기대했던 것보다 더 제 역할을 해내고 있지 않나 생각해요.”

 
▲ (왼쪽부터)김예은, 김보미, 김진아(사진: 김진아 인스타그램)

김진아는 팀 성적과 관계 없이 팀 분위기 만큼은 잔카의 분위기가 최고라고 자랑스러워했다.  


“팀 분위기는 우리 팀이 제일 좋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다른 팀은 외국인 선수가 한명씩 있는데 저희는 모두 한국선수라 잘 맞고, 나이대가 맞아서 통하는 것도 많아요. 그리고 애들이 워낙 밝고 재밌어요.”

TV중계로 진행되는 경기에 돌발상황은 없지만 경기 중 웃지 못 할 에피소드는 있었다. 

 

3쿠션은 뱅킹을 통해 선구와 후구를 정한다. 뱅킹은 선수가 서 있는 쪽 단쿠션에 가장 큐볼을 가깝게 붙이는 선수가 선공을 하는 것으로 뱅킹에서 이기면 첫 세트에 선구를 잡고 두 번째 세트에서 후구를 잡는다.

“뱅킹에서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어요. 그러다 3차 리그에서 벤투스의 김정미 선수랑 게임할 때 처음으로 이겼어요. 근데 그날 두 번째 세트에서 너무 당연하게 선구를 치려고 나간 거예요. 그동안 두 번째 세트 선구가 너무 익숙했던 거죠.”

당구의 매력에 대해 묻자 그는 ‘재미’를 꼽았다.

“당구가 되게 재미있는 게 1cm만 다르게 쳐도 아예 다른 플레이가 되어버려요. 그래서 하나의 사례로 두 세 시간씩 연습할 수 있어요. 기본배치로 놓고 연습을 많이 하는데 재미있어요. 제가 볼링, 골프 등등 다른 스포츠도 많이 해봤는데 당구보다 재밌는 걸 발견하지 못했어요. 이게 직업이지만 진짜 재미있거든요. 남자친구를 만나도 당구보다 재미없고 컴퓨터 게임보다도 못해요. 뭘 해도 당구보다는 재미없어요. 선수이다 보니 기록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기는 하지만 그래도 며칠 안치다보면 치고 싶고. 그런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어요.”

김진아는 당구가 좋지만 아직 여자 선수들의 경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소신을 밝혔다.

 

“옛날에는 영화에서 양아치들 싸우는 곳 당구장이고, 담배연기 자욱하게 묘사됐잖아요. 요즘은 당구장에서 담배는 물론이고 시끄럽게 떠들어도 제지받아요. 입구에 보시면 만취하신 분은 다음에 이용해달라고도 쓰여 있어요. 몇 년 사이에 인식이 많이 바뀌었어요. 저는 인식이 좋지 않을 때부터 쳐왔으니까 몸으로 느껴요.”

이런 변화 가운데 여자 선수로서 겪었던 어려움도 서서히 해소되어 감을 느낀다. 

“당구가 복장도 그렇고 되게 신선스포츠예요. 당구장이나 경기장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차별적인 발언을 하거나 불편했던 적은 없었어요. 오히려 여자가 많이 없어서 우대를 받은 적은 많아요.”

김진아는 그러나 인터넷 공간에서 여자 선수들 또는 외국인 선수들에게 가해지는 악성 댓글을 대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유투브로 생중계 되는 WPBL 경기 장면 옆 채팅창에는 ‘훈수’로 둔갑한 악성 댓글을 '도배'하는 시청자가 적지 않다. 


“여자선수가 아무리 잘 쳐도 그 선수보다 훨씬 잘 치는 남자 동호인이 더 많거든요. 그렇다보니까 시청자 분들 중에 여자선수를 무시하는 발언을 서슴치 않는 분들이 계세요. 당구가 유독 ‘어떻게 저것도 못치냐.’, ‘내가 쳐도 그것보다 낫겠다.’ 하는 발언이 많아요. 여자 선수들보다 잘 치시는 남자 분들이 워낙 많다보니까..." 


▲ 사진: 김진아 인스타그램
 

11년간 선수생활을 해온 포켓볼과 3쿠션 중 어느 쪽이 더 좋은지를 묻자 김진아는 의외로 3쿠션을 선택했다.  

“매력이 달라요. 3쿠션하다 스트레스 받아서 포켓볼 치면 재미있고, 포켓볼 치다 스트레스 받으면 3쿠션 재미있고. 근데 제 정서에는 3쿠션이 훨씬 재미있는 거 같아요. 포켓볼은 수비를 잘해야 이기고, 3쿠션은 득점을 해야 이길 수 있어요. 그래서 3쿠션은 경기진행이 무척 빠르죠. 한 게임에 1시간이 넘지 않아요. 포켓볼에 비하면 내 차례도 금방금방 돌아와서 더 재미있는 거 같아요.”

세계적인 선수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힌 김진아는 당분간 3쿠션과 포켓볼을 병행할 계획이다. 

“3쿠션은 WPBL이 끝나면 경기가 없고 포켓볼은 남자 선수와 팀으로 복식출전하는 대회가 남아있어요. 그래서 좀 더 미래가 있는 곳으로 차차 정할 계획이에요. 조금 힘들더라도 평소에는 3쿠션 연습하고 대회직전에는 포켓볼 연습하면서 좀 더 확실한 곳에 투자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김진아는 여자 선수들을 위한 대회가 더 많이 열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자 선수들이 출전할 수 있는 대회가 늘어나야 미디어 노출도 더 늘어나고 선수들이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것.   

“요즘 사람들이 많이 알아봐주시는데 저를 3쿠션 선수로 아시는 분이 많아요. 포켓볼을 10년 넘게 쳤는데 고작 1년 된 3쿠션으로 알아봐주시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요. 이기고 지는 걸 떠나서 여자선수들이 출전할 수 있는 대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많은 대회에 나가야 미디어에 노출이 되고,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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