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희 없이 치른 첫 시즌서 우승…"주전 고른 활약이 원동력"
▲위성우 감독(사진: 연합뉴스) |
"우승이라고 하긴 좀 그렇죠. 그냥 1위일 뿐이죠."
여자프로농구(WKBL) 아산 우리은행 위성우(49) 감독은 20일 사상 초유의 '리그 중단'으로 갑작스럽게 2019-2020시즌 정규리그 우승 감독이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리그를 중단했던 WKBL은 결국 이날 열린 이사회에서 '잔여일정 취소'를 결정했다.
그러면서 1위에 올라있던 우리은행은 그대로 우승팀이 됐다. 자력 우승까지 '1승'만 남겨놓은 상태에서 2위 청주 KB와의 치열했던 선두 경쟁은 허무하게 끝났다.
위 감독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이런 식으로 끝나 우리를 우승팀이라고 부르기가 좀 그렇다"면서 한동안 '허허' 웃었다.
그는 "코트에서 우승해야 우승 느낌이 날 텐데 이렇게 우승해서 너무도 아쉽고, 당황스럽고, 무작정 기분이 좋지도 않다"면서 "국가적 재난 상황이다 보니 더 우승 기분이 안 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시즌 동안 땀 흘린 선수들을 향한 고마운 마음의 크기는 지난 6번의 통합우승 때보다 오히려 크다.
2010년대 '최강 우리은행'의 핵심이었던 임영희 현 우리은행 코치가 현역에서 은퇴하고서 치른 첫 시즌이었다.
이런 우리은행이 박지수가 건재한 '디펜딩챔피언' KB에 역부족일 것이라는 전망이 매우 우세했다.
위 감독은 "선수들은 물론 나에게도 임영희 없는 첫 시즌이어서 정말 긴장을 많이 했다"면서 "그러나 선수들이 생각보다 빨리 적응해줬다. 특히 박지현이 언니들을 잘 거들어 준 게 컸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신인 드래프트에서 우리은행은 4.8%의 확률을 뚫고 당시 '최대어'로 꼽힌 박지현을 품었다.
프로에 순조롭게 적응한 박지현은 시즌 중반부터 '특급 유망주'라는 평가에 걸맞은 활약을 펼쳤다. 시즌 평균 8.37득점으로 팀 내 5위, 어시스트는 3.44개로 2위, 리바운드는 5.11개로 4위에 올랐다.
위 감독은 "무엇보다 어느 한 명에게 많이 의존하지 않고 주전 선수들이 고루 활약해준 게 1위의 원동력이 된 것 같다"고 자평했다.
'임영희 없는 코트'가 주는 불안감을 후배들이 잘 해소하도록 도운 건 임 코치 자신이었다고 위 감독은 전했다.
위 감독은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경기를 풀어가야 하는지부터 후배들의 개인적인 고민을 듣는 것까지 임 코치가 여전히 '언니' 역할을 해주며 선수단에 정신적으로 큰 도움을 줬다"고 강조했다.
이사회가 끝나면서 우리은행의 우승이 확정된 건 이날 오전 9시 30분께. 그 뒤 한 시간 반 가까이 지났지만, 전화기 너머에서는 선수들이 농구공 튀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날도 선수들은 여느 때처럼 오전 훈련을 했다. 위 감독이 1위가 확정됐다는 소식을 훈련 중에 전하자, 선수들은 허탈하다는 듯한 웃음만 서로 잠시 나눴을 뿐, 오전 훈련을 끝까지 마쳤다고 한다.
"한 시즌 고생했으니 선수들이랑 밥이나 먹고 시즌 끝내야죠. 우승 잔치는 안 할 겁니다. 우승이 아니라 1위일 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