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W 노이슬 기자] 김선호는 스스로를 '느린 사람'이라고 말한다. 상대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지만 한번 이해하기 시작하면 그 다음은 쉽단다. 그는 자신의 스크린 데뷔작 '귀공자'로 만난 박훈정 감독에 '왜?'라는 질문을 많이 했다. 느리지만, 오랜 시간을 들여 감독과 소통하는데 성공했다. 심지어 차기작까지 함께 하고 있다. 김선호가 박훈정 감독을 만난 것은 말 그대로 '운명'이 아닐 수 없다.
김선호의 첫 영화 '귀공자'(감독 박훈정)는 필리핀 불법 경기장을 전전하는 복싱 선수 마르코(강태주) 앞에 정체불명의 남자 귀공자(김선호)를 비롯한 각기 다른 목적을 지닌 세력들이 나타나 광기의 추격을 펼치는 이야기로 오늘(21) 개봉했다.
▲영화 '귀공자' 귀공자 役 김선호/스튜디오앤뉴 |
김선호는 '귀공자'에서 귀공자로 분해 '맑은 눈의 광인'을 그려냈다. 앞서 김선호는 지난 2020년 사생활 논란으로 잠시 활동을 중단했던 바. 당시 박훈정 감독은 끝까지 김선호를 고집했다. "당시 저에게는 선택권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감독님이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셨다. 제 입장에서는 영화가 조금 미뤄졌고, 참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근데 감독님께서 고민하시다가 할 수 있으면 하자고 했던 것이다. 작품에 누가 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작품에 임했다."
부담감을 안고 시작한 '귀공자'. 덕분에 오로지 작품과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김선호는 '깔친놈'(깔끔한 미친놈)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연기 호평을 받고 있다. 더불어 영화의 제목은 '슬픈열대'에서 '귀공자'로 바뀌었고, 박훈정 감독의 새로운 페르소나의 탄생이라는 평까지 이어지고 있다. 박훈정 감독 특유의 유머 코드와 진지함 속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김선호의 연기는 닮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선호는 "제목이 '귀공자'로 바뀐 것도 처음에는 부담이 됐다"고 털어놨다. "저는 느린 사람이다. 제가 말을 알아듣는게 느리다. 근데 확실하게 알아들으면 바로 변화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나눠서 이제는 물든 것 같다."
▲영화 '귀공자' 귀공자 役 김선호 스틸/NEW |
귀공자가 마르코를 쫒는 이유는 극 후반부까지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있다. 김선호 역시 처음 시나리오를 받은 후 '왜'라는 질문을 항상 던졌다. 귀공자가 미스터리한 인물이기에 더욱 궁금했다. 박훈정 감독의 디렉은 '여유'와 '즐김'이었다. "사람을 죽이고도 해맑게 웃는다. 귀공자는 이게 나쁜 짓인지를 모르는 인물이 습관적으로 그 상황을 즐기는 것이다. 콜라를 마시는 장면도 어린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맛있게 먹으라고 하셨다. 터널 안에서 휘파람을 부는 것도 대본에 있었다. 감독님 입장에서는 여유와 즐거움이 보였으면 한다고 했다."
천진난만함과 별개로 마르코의 뒤를 바짝 뒤쫓는 귀공자는 초인에 가까운 능력을 발휘한다. 지붕과 담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모습은 마치 초인이 아닐까 의심하게 한다. 이 역시 박훈정 감독의 의도다. "공연할 때도 예를 들면 없는 물건을 있는 척을 한다. 근데 하다보면 설득이 된다. 감독님 영화도 초반에 그런 설정을 두면 어느 순간 받아들여지고, 액션이 통쾌하고 리얼하게 받아들여진다고. 저는 현장에서 매번 굴렀다. 감독님은 더 프로답고 깔끔한 모습을 원하셨다. 그래서 구르는 것을 하나도 안 쓰셨더라."
그럼에도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고가에서 뛰어내리는 액션씬이었다. "대본만 보면 그런 곳인지 모른다. 현장 가서 보니 고가더라. '이게 사람이 안 죽어요?'가 제 첫번째 질문이었다. 여러 버전으로 뛰어내렸다. 다리 위에서가 아니어도 집 위에서도 굴러도 봤다. 그게 다 감독님의 세계관이라고 생각하니 바로 이해가 되더라(웃음)."
▲영화 '귀공자' 귀공자 役 김선호/스튜디오앤뉴 |
남달랐던 박훈정 감독과의 호흡한 소회가 궁금했다. 김선호는 "희열이 느껴진다"고 했다. " 마르코의 얘기는 너무 리얼한 면이 있다. 그 말투가 이해 안될 때가 있었다. 리얼함 속에서 판타지적인, 만화적인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는 게 스스로 재밌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도 감독님의 세계관에 뼈져들어간 느낌이다. 그래서 상상의 폭이 더 커진 것 같다."
첫 스크린 데뷔 소감도 덧붙였다. "영화 씬을 찍는데 기회가 많은 느낌이다. 공을 많이 들인다. 연습을 같은 씬을 5시간을 한다. 현장에서 5시간 연습하는 것과는 집중도가 다른 것 같다. 모든 스태프들이 나를 보고 있다. 긴장도 된다. 집중하다보니 발전적인 것이 많더라. 3시간 정도를 다 채워서 그 씬을 찍으면 다양한 고민들에 집중을 하고 늘었을까? 생각했는데 다음 작품 하면서 그걸 느끼더라. 무엇보다 이제는 감독님이 말씀하시면 레퍼런스가 생겨서 금방 알아듣게 되더라. 경우의 수도 많이 생겼다. 그런 게 많이 다양해졌다."
김선호는 어려웠던 시절, 박훈정 감독의 두터운 신뢰 하에 어렵게 얻은 기회로 다른 스텝을 밟을 수 있게 됐다. 재기의 기회를 준 박훈정 감독에게 거듭 감사의 말도 전했다. "박훈정 감독님은 정말 감사한 분이다. 저에게 좋은 연출자이자 좋은 형이다. 인생으로서도 조언도 많이 해준다. 촬영하면서 중간중간 산책을 많이 했다. 항상 동네 형처럼 조언해준다. 걱정이 많았었는데 영화가 청소년관람불가여도 아쉬움이 없다. 감독님이랑 많이 닮아 가는 것 아닌가 싶다. 어떤 것에 장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저는 물든 것 같다(웃음)."
▲영화 '귀공자' 귀공자 役 김선호/스튜디오앤뉴 |
차기작 '폭군'도 함께 하게 됐다. "감독님께서 그 작품으로 김선호를 상상하셨나 보더라. '귀공자' 하면서 '폭군'도 바로 주셨다. 뭐든 처음이 어려운 것 같다. 처음 드라마 주연 맡았을 때는 일주일동안 30분만 자고 피폐해진 기억이 있다. 다행이도 경력이라는는게 생기니까 현장이 크게 다르지 않더라. 박훈정 감독님이 먼저 다가와주셔서 현장이 조금 더 편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김선호는 "저보고 지금 '조커'를 하라고 하면 좋은 레퍼런스가 있으니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저는 누군가가 하지 못했던. 처음일 수 있는 레퍼런스를 만드는 게 목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스포츠W(Sports W).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