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배세영 작가 "'나쁜엄마' 과거 암 의심소견 후 시나리오화...실시간 피드백 긴장의 연속"

노이슬 기자 / 기사승인 : 2024-06-19 08: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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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W 노이슬 기자] "대본은 보물이 아니라 ‘보물을 찾아가는 지도’일 뿐이기 때문에 배우님들이 대본을 읽고 해석해 내는 캐릭터를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배우님들을 통해 구현 된 캐릭터를 보는 것이 제겐 또 다른 재미와 낙이었습니다."

 

지난 8일 시청률 12%로 막을 내린 JTBC 수목 드라마 '나쁜엄마'(극본 배세영, 연출 심나연)는 자식을 위해 나쁜 엄마가 될 수밖에 없던 영순(라미란)과 뜻밖의 사고로 아이가 된 아들 강호(이도현), 훈훈한 조우리 패밀리의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이야기로 안방에 웃음과 감동을 선사했다. 최종회가 12%를 기록하며 역대 JTBC 수목드라마 1위 시청률을 기록하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나쁜엄마'는 영화 '바람 바람 바람', '원더풀 고스트', '완벽한 타인','극한직업', '인생은 아름다워'를 통해 관객들이 믿고 보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배세영 작가의 첫 드라마 데뷔작이다. 과거 'SNL' 시리즈를 통해 남다른 웃음을 선사, 다수의 영화 시나리오로 남다른 유머코드와 감동까지 선사해온 배 작가가 드라마 데뷔작 '나쁜엄마'를 마친 소감을 서면을 통해 전했다.

 
▲JTBC 수목드라마 '나쁜엄마' 배세영 작가/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필름몬스터

Q. 예능, 영화 시나리오 각본 경험은 많으셨지만 드라마 작업은 '나쁜 엄마'가 처음입니다. 사실 처음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 회차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알차게 가득 채워져 있어서 시청자로서는 너무 좋았습니다. 영순이 혼자가 돼 나쁜엄마가 되는 과정의 빌드업도 인상깊었습니다. 첫 드라마 작업 소감 시작하게 된 동기가 있을까?

 

A. 처음 '나쁜엄마'는 영화 시나리오로 기획 됐습니다. 당시 제가 검강검진에서 암 의심소견을 받고 3개월 후 있을 재진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남겨질 아이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가득했습니다. 마침 남편이 동물약품 회사에 재직하고 있었을 때라 돼지농장을 함께 여러차례 방문했던 적이 있었는데 '어미돼지는 28일동안만 새끼돼지와 함께 할 수 있어서 그 기간동안 돼지의 모든 습성을 가르치고 떠나야 한다'는 말을 듣고 마치 어미돼지의 삶이 그 당시에 제가 처한 상황 같다고 느꼈습니다.

 

길고 짧은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어찌보면 사람은 모두가 시한부 인생이고,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을 남겨두고 먼저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즉, 부모라면 누구나 '영순'과 같은 처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아니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식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떠나야 할까요. 만약 그 자식이 몸도 정신도 성치 않다면요, 도움을 청할 가족 하나 없다면요... 바로 이러한 질문에서 '나쁜엄마'가 시작되었습니다.  

 

Q. '돼지'와 엄마 영순이 일치되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마지막까지도 아들의 행복을 바라면서 당부를 잊지 않았던 모습이 '엄마 돼지는 새끼 돼지한테 다 알려주고 떠난다'는 드라마 속 내레이션이 겹쳐져 많은 시청자의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돼지'를 소재로 사용해 시청자들에 작가님께서 하고싶은 말이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A. 28일동안만 새끼와 있을 수 있는 어미 돼지의 상황과 주인공 영순이 너무도 닮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닮았지만 다른 시한부 상황을 은유적으로 작품과 연결하려고 하였고, 하늘을 볼 수 없는 돼지가 하늘을 보기 위해서는 넘어져야 한다는 시련이 있지만 그것을 견디고 이겨내어 기적을 만든다. 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엄마를 상징하는 동물이 있다면 항상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돼지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JTBC 수목드라마 '나쁜엄마' 스틸/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필름몬스터
 

Q.첫 드라마 작업을 하면서 작가님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 드라마 작업은 단순히 짧은 이야기를 분량적으로 길게 늘리는 작업이 아닙니다. 각각의 화에서 독립적인 기승전결이 필요했고, 전체 주제로 귀결하기 위한 빌드업 과정도 필요했으며 각 화간의 연계성과 연속성, 다음 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엔딩 포인트도 중요했습니다.

 

영화적 문법에 익숙했던 저에게는 긴 호흡을 가지고 여러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얽혀 돌아가는 드라마의 문법이 굉장히 낯설고 어려웠습니다. 또한 개봉 후 단번에 전체적인 평가를 받는 영화와는 달리 매 화 달라지는 평가와 시청률, 대사 한 줄, 행동 하나하나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받는 '실시간 톡' 시스템은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Q. '나쁜엄마'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호흡이 길어서 작가님이 하고 싶은 것을 복합적으로 넣었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심각하게 작당모의를 하면서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면, 순박한 조우리 마을 사람들은 유쾌하게 힐링을 선사했습니다. 역시 긴 호흡을 가져가야 하는 드라마 특성상 분위기 전환을 반복하는 것도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가장 쉽게 술술 써내려갔던 장면과 반면에 정말 풀리지 않아서 가장 어렵게 써내려갔던 장면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 가장 쉽게 썼던 장면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휴먼 코미디, 즉 조우리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가장 어려운 부분은 좀처럼 악당들을 잘 그려내지 못하는 저를 매번 실의에 빠뜨렸던 송우벽회장과 오태수 부분이었습니다.         

 

▲JTBC 수목드라마 '나쁜엄마' 스틸/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필름몬스터

Q. '나쁜엄마' 영순은 심나연 감독님의 전작인 '판타스틱'의 시한부 인생을 사는 홍준기(김태훈 분)처럼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두분이 통하시는 부분이 많았을 것 같고, 더욱 더 단단하게 빌드업 되면서 '나쁜엄마'라는 제목과 달리 누구보다 따뜻하고 착한 드라마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는데요. 감독님과의 작업 소감도 궁금합니다.

 

A. 정말 영리하고 능력있는 성실한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라마 집필이 처음이어서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있었을 때, 감독님이 합류하시면서 방향을 잘 이끌어 주셨습니다. 나이도 젊은데다가 아직 아이가 없는데도 엄마의 감성을 너무 잘 이해하고 있어서 오히려 제가 감독님에게 엄마의 감성을 배울 때가 많았습니다. 자칫 올드해 질 수 있는 이야기를 너무도 감각적으로 잘 연출해 주셔서 '나쁜엄마'가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들려오는 배우님들의 목소리는 늘 감독님의 연출과 현장 진행 능력, 성품에 대한 칭찬일색이었습니다. 작품의 작가로서 너무나도 감사한 부분이었습니다. 감독님과의 작업의 과정과 결과가 너무나도 만족스러워서 언제고 다시 함께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Q. 최종회에서 윤항기의 '나는 행복합니다'가 울려퍼지는 장례식장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토이의 '뜨거운 안녕' 장례식장 시퀀스가 겹쳐보였습니다. 연이은 두 작품에 이같은 장례식장을 넣은 것은 작가님의 인생 가치관일까요? 

 

A. 두 작품의 집필 시기가 15년이상 차이가 나는데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공개가 되며 주변 분들에게 혹시 건강에 문제가 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나쁜엄마' 에서 시한부는 제한된 시간이라는 타임리미트가 중요하게 작용하였고, '인생은 아름다워'에서의 시한부는 극의 메인 플롯이었습니다. 시한부라는 설정보다는 이별이라는 주제에 더 집중했습니다.

 

▲JTBC 수목드라마 '나쁜엄마' 스틸/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필름몬스터

Q. 두 작품 모두 캐릭터와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그 파장은 더욱 심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행복합니다'는 이 드라마의 주제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지정해서 하신 것인지, 아니면 심나연 PD님이랑 이야기를 나눈 부분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A. '나는 행복합니다' 는 집필과정에서 선택한 노래였습니다. 1986년이라는 시대상황에 맞는 노래였고, 영순의 불행 속에서도 마치 자기 주문처럼 '나는 행복하다'고 읊조리는 게 아주 잘 어울린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강호가 부르는 성시경의 '두 사람'은 각각 영순과 미주에게 한 번씩 불러주는 설정인데 영순에게 하는 말로도, 미주에게 하는 말로도 너무 잘 어울리는 가사라고 생각해 선택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노래이기도 하구요.   

 

Q. 라미란, 이도현 배우 출연 확정 후 캐릭터 표현 방향에 대해 나눈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A. 작가에게는 좋은 스토리가 몫이듯 좋은 캐릭터는 배우가 만들어 나가야 하는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캐릭터를 잘 만들어 내는 작가라고 칭찬을 듣곤 하지만 제가 대본에 아무리 좋은 캐릭터를 만들어 놓는다고 해도 배우님들의 해석과 연기가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절대 좋은 캐릭터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배우님들께 늘 배우님들이 표현하시는 그 방향이 무조건 옳다고 믿고 지지해 드리는 편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게 가장 엄하고 까다로운 캐릭터에 대한 주문이 될 수도 있겠지만요^^

 

▲JTBC 수목드라마 '나쁜엄마' 스틸/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필름몬스터

Q. 주연 라인업은 물론, 조연, 아역, 특별출연까지 연기 구멍이 없는 웰메이드 명작이었습니다. 라미란, 이도현, 안은진, 유인수까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그들의 연기 장면, 또는 촬영 전 당부하신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 대본은 보물이 아니라 ‘보물을 찾아가는 지도’일 뿐이기 때문에 배우님들이 대본을 읽고 해석해 내는 캐릭터를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배우님들을 통해 구현 된 캐릭터를 보는 것이 제겐 또 다른 재미와 낙이었습니다.

 

먼저 라미란 배우님의 연기는 정말 단 한 장면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장면들이 많았는데요. 그 중 정씨(강말금)에게 안겨 무섭다고 살려달라고 말하며 오열하는 장면(11회)이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너무나도 강인하고 당당하게 웃으며 죽음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말하던 영순이 정씨 앞에서 한없이 여린 한 인간으로서 무너지는 장면이어서 더 애틋하고 슬펐던 것 같습니다.

 

이도현 배우님의 배역은 정말 어려운 연기였습니다. 냉철함과 천진난만함을 오가야 했고 어린아이의 모습에서도 한 상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기억이 돌아오며 성장해 나가는 연기를 보여줘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3회의 강호와 11회의 강호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셨을텐데요. 12회에 정신이 돌아왔을 때 갑작스럽거나 이질적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계산된 빌드업 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완벽하게 구현해 내주신 그 모든 과정이 베스트 연기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모르게 심쿵해서 소리를 지른 부분은 미주와의 계단 키스씬(13회)이었지만요. ^^

 

▲JTBC 수목드라마 '나쁜엄마' 스틸/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필름몬스터

안은진 배우님은 이번 나쁜 엄마를 통해 그 진가를 알게 된 보석같은 배우입니다. '리틀라미란'이란 별명에 걸맞게 감정 연기도 코믹하고 재치있는 연기도 너무나도 좋았는데요. 특히 한밤중에 깨어난 예진이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부분(11회)에서 그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는 눈빛과 표정들이 너무나도 가슴 저미게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삼식(유인수)이는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의 배역으로 작품을 쓰는 동안 저희 작가들 사이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았던 캐릭터인데요. 엉뚱하고 코믹한 연기들은 말할 것도 없이 귀엽고 좋았지만 미주를 찾아가 결혼하자고 고백하는 장면(8회)에서 처음으로 보여준 진지함과 진심이 또 다른 매력으로 느껴져 좋았습니다.

 

▲JTBC 수목드라마 '나쁜엄마' 스틸/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필름몬스터

Q. 조우리 마을 사람들로 나온 조연 배우들은 정말 이만큼 조연라인이 탄탄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습니다. 어려우시겠지만 그 중에도 가장 애착이 갔던 캐릭터가 있으면 두 세 캐릭터 정도 이유와 함께 부탁드립니다. 

 

A. 캐릭터들 마다 애착을 가지고 작업을 해서인지 그 경중을 따지기가 매우 어려운데요. 다만, 영순의 곁에서 각각 또 다른 형태의 모성을 보여줘야했던 박씨(서이숙)와 정씨에게 많은 정성을 쏟았던 것 같습니다.  

 

Q. 트롯백(백현진)의 역할은 뭐였나요? 영순에 위기를 안기고 마을 사람들을 뭉치게 한 것인가요?

 

극 중 마을 사람들은 영순에게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늘 사이좋게만 보이지만 그 속내에는 영순네 농장에 대한 불만과 강호에 대한 질투, 자기 자신의 처지에 대해 말 못할 속앓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순의 사정을 알고 오랜기간 함께 살아온 정으로 인해 쉽게 마음을 꺼내 보이지는 못합니다. 그런 마을 사람들을 선동하고 그 불편한 속내를 잠시나마 표출하게 해준 역할이 트롯백이었습니다. 원래 트롯백에게도 농장을 뺏어야 하는 나름의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는데요. 강호가 아프다는 생각에 송회장과 오태수의 악행이 잠시 멈춘 사이에 또 다른 식의 위기와 갈등을 만들어주고 싶어 설정했고, 영순이 자신이 죽고 난 후 농장을 뺏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암에 걸린 사실을 처음으로 털어놓을 수 있었고 그 덕에 정씨가 그 비밀을 알게 되는 임무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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