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삼청동 모 카페에서 만난 박해일은 영화 '헤어질 결심'(감독 박찬욱) 인터뷰 시작 전에 자리에 앉자마자 테이블을 한번 닦아냈다. 아무것도 없던 자리였기에 그 모습이 해준과 닮았다고 하자 "배우들은 역할을 하다 보면 촬영하고 개봉하기까지는 캐릭터가 일부분이 남아 있기는 한 것 같다. 한동안은 그럴 것 같다. 원래 이러지 않는다"며 웃었다.
▲영화 '헤어질 결심' 해준 役 박해일/CJ ENM |
'헤어질 결심'은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를 만난 후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박찬욱 감독의 11번째 장편 영화로, 감독의 작품 중 유일하게 청불 등급을 받지 않아 화제를 모았다. 또한 '복수와 폭력'이라는 주로 다뤄왔던 소재와는 달리, 어른들의 감춰야만 하는 사랑 이야기를 특유의 색을 더해 섬세하게 그려냈다.
박해일은 "감독님의 전작들이 워낙 강렬한 인상이 있어서 시나리오를 읽고 담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가 맞다고 느꼈다. 이야기가 더 궁금해지고, 감독님을 만나서 이야기하면서 이 부분도 '감독님 작품이 맞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박해일이 분한 형사 '해준'은 기존의 작품들 속 캐릭터와는 색다르다. 항상 예의 바르고 청결한 성격이다. 박해일은 박찬욱 감독과 작업도, 형사 캐릭터도 처음이었기에 모든 게 신선했다. "배우로서 처음으로 해보게 된 형사 역할이다. 그렇기 때문에 궁금했고 그 캐릭터가 한국에서 주로 다뤄오던 '살인의 추억'에 나왔던 형사 느낌을 포함한 캐릭터들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미지도 다르고 드라마의 톤도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대본을 받고 첫 인상이다. 낯설지만 되게 호기심이 강해졌다. 이런 형사면 재밌게 잘 해보고 싶다는 측면이 강해졌다. 그래서 형사물을 그동안 참고 기다렸나 싶다(미소)."
▲영화 '헤어질 결심' 해준 役 박해일/CJ ENM |
형사인데 문어체를 쓰는, 시적인 표현을 쓰는 지점도 흥미로웠다. "서래가 사망자의 남편으로 안치실에서 해준과 처음 만난다. 그때 '마침내'라는 단어를 쓴다. 그게 둘의 관계를 엮는 장치라고 생각이 들었다. 질감 같은 표현이라던지, '단일한 중국음식입니다'라던지 리듬감 있게 표현해주는 대사들이 되게 맛깔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사 캐릭터에 문어체 적인 대사나 시적인 언어를 형사가 쓰는 부분은 낯설 수 있는데 충돌이 아니라 흥미 유발이 더 되더라. 재밌을 것 같고 잘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헤어질 결심'이 기존의 박찬욱 감독의 작품과 달랐던 지점은 캐스팅 시점이다. 전작들은 시나리오 각본이 완성된 후 캐스팅을 시작했다면, 해당 작품은 시놉시스 후 주연 캐스팅을 완료, 각 배우들의 모습을 녹여냈다는 점이다. 박해일은 "원래 시나리오 각본을 완성하고 캐스팅을 하는 순서라고 들었는데 이번에는 그랬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라고 말문을 열었다. "정석영 작가님과 '헤어질 결심'을 준비할 때 중국 배우가 꼭 필요하다는 전제조건이 있었다고 한다. 그 배우가 캐스팅이 안되면 무산이 될 위기였다고. 배우가 확실해야 각본 작업이 들어가는 순서였다. 그 후에 시나리오 작업을 한 것이다 보니 배우들의 성질을 시나리오에서 좀더 활용하시지 않았을까, 그게 전작들과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연기할 때, 시나로오 받았을 때 고려한 흔적들이 느껴졌다. 좀 더 잘 읽히고 흥미를 갖게 됐다."
해준의 캐릭터는 '덕혜 옹주' 속 김장한의 느낌이 더해졌다. "말투라던지, 김장한이라는 캐릭터의 클래식한 느낌이 품위 있다고 설명해주셨다. 그 소스를 활용했다고 하셨다."
형사 해준은 서래를 만난 후 의심과 관심, 호기심을 동시 갖게 된다. 취조실 씬 역시 여타 다른 작품 속 강압적인 분위기가 아닌, 마치 두 사람이 밀당하는 듯한 묘한 뉘앙스로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박해일은 "그런 뉘앙스를 가지고 가라는 디렉션은 없었다"고 했다.
▲영화 '헤어질 결심' 해준 役 박해일/CJ ENM |
"두 배우가 그런 공간에 있어도 어울릴 것 같은 지에 대한 생각은 이미 끝난 상태서 촬영했다. 시나리오는 이미 그런 방식으로 완성돼 있어서 시나리오에 충실하면 그런 기분이 날 것이라 생각했다. 디렉션은 없고, 대사, 지문 ,이런 것들이 그런 뉘앙스를 풍기게 끔 했다. 실무 공간에서 초밥을 같이 먹는다던가, 같이 치운다던가 하는 게 낯설다. '살인의 추억'에서 취조실 촬영을 해봤지만 형사라는 신분으로 해보니 참 재밌더라. 밀폐돼 있고 집중된 공간에서 연기하는 건 배우로서 매력적인 것 같다. 미세한 호흡과 떨림 그런 것들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인 공간이었던 것 같다."
현장에서 취조실의 묘한 뉘앙스에 대한 상의도 없었다. "탕웨이씨와 현장에서 상의는 없었다. 그냥 서로에게 집중했다. 리허설을 하거나 리딩 할 때 그런 장면들의 분량이 꽤 있어서 그때 눈여겨 봤다. 어느 정도는 '이런 톤으로 연기를 해주겠구나'하고 리액션도 해보면서 이미 호흡 준비를 했던 것 같다."
박해일은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매력적으로 쓰여진 대사와 지문, 박찬욱 감독만의 콘티라고 했다. 그는 "상황을 유도할 수 있게 만드는 대사와 지문이 매력적으로 쓰여져 있는 것을 잘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 부분들을 만들어내실 때 제가 이제껏 해왔던 결과물들에서 못 봤던 저의 얼굴이나 눈빛, 뉘앙스 등을 포착해주시는 것을 보며 발견하는 재미도 있었다"고 말했다.
▲영화 '헤어질 결심' 해준 役 박해일/CJ ENM |
박해일은 '헤어질 결심'을 통해 한국이 낳은 거장 박찬욱 감독과의 인연을 맺었다. 또 다른 거장 봉준호 감독과는 '살인의 추억'과 '괴물'로 호흡한 바. 두 감독의 스타일에 대해 전했다.
"박찬욱 감독님과 봉준호 감독님은 참 비슷한 부분들이 많다. 촬영 전까지 준비를 철저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신인 감독들이 더 바쁠 수 밖에 없다. 연륜이 있는 감독들은 경험이 많으니까. 근데 두 감독님은 신인 감독들만큼 바쁘다. 시간을 허투루 쓰시는 부분이 없었다. 변수에 대한 부분들, 많은 준비를 통해 대책을 마련한다는 것도 피부로 느껴졌다. 시나리오와 콘티에 집착을 많이 한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시나리오가 하나의 장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시나리오를 보고 수 백 명의 각 스태프, 배우들이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소통의 하나의 수단이다. 콘티를 철저히 준비해서 오해가 없도록 하신다. 보이지 않는 내공이 그런 대서 느껴지게 됐다."
특히 박찬욱 감독의 콘티에 탕웨이도 놀랐다고. 박해일은 "탕웨이씨도 그런 것에 대해 되게 놀라워했다. 전작에서는 익숙하게 했겠거니 생각했는데, 이런 콘티를 준비해서 촬영하는 게 처음이라고 놀라워했다. 중국 감독들에 알려줘야겠다는 이야기도 했었다. 한국의 이런 기법을 자랑스러워해도 될 것 같았다"며 웃었다.
인터뷰②에서 계속... [저작권자ⓒ 스포츠W(Sports W).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