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W 노이슬 기자] "내가 어떤 역할을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하다. 미드든 한드든 중요하지 않다. 그 역할을 어떻게 해석해서 하느냐가 중요하지." 윤여정이 OTT 콘텐츠 애플TV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로 돌아왔다. 모두가 본격 '해외시장 진출'이라고 하지만 정작 윤여정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오직 '캐릭터'와 '작품'에만 집중했다.
25일 공개를 앞둔 '파친코'는 재미교포 이민진 작가의 동명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도서를 원작으로 한다. 금지된 사랑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로 전쟁과 평화, 사랑과 이별, 승리와 심판에 대한 잊을 수 없는 연대기를 그렸다.▲애플TV+(Apple 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Pachinko) 선자 役 윤여정 |
윤여정이 '파친코'에 출연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윤여정은 끼끗한 선자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굉장히 오랜만에 그 여성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는 할까말까 고민하지 정도였는데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내가 한국인이라서 그런 것 같다. 그건 바꿀 수 없는 것 같다. 깊은 데서 나오는 마음인 것 같다. 한국 여자를 표현하는데 존엄성이 있게 표현하고 싶었다. 그거 하고 싶었다."
앞서 영화 '미나리'에서 '순자'를 연기한 윤여정은 스크린을 장악하는 묵직한 존재감으로 전 세계 관객과 평단을 모두 사로잡으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 연기 부문을 수상한 것으로 한국 배우의 역사를 새로 써냈다. 이에 윤여정의 행보에 국내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시선이 쏠렸다. 그리고 세계적 감독과 제작진이 함께하는 애플TV플러스의 글로벌 프로젝트인 '파친코'로 돌아왔다. 하지만 윤여정은 오로지 캐릭터 중심이었다.
"내가 어떤 역할을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하다. 미드든 한드든 중요하지 않다. 그 역할을 어떻게 해석해서 하느냐가 중요하지, OTT가 뭔지도 잘 모른다. 나는 그냥 좁은 시야를 가진 늙은 할머니다. 내 잡이 평생을 한 것이다. 50년 넘어서 어떤 역할을 주면 제 방식으로 한다. 그걸 해내는 것이 나의 미션이다.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애플TV+(Apple 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Pachinko) 선자 役 윤여정 스틸 |
앞서 '파친코' 제작진은 윤여정과 한류스타인 이민호를 알고 있었다고 밝힌 바. 윤여정은 '파친코' 제안 받았던 당시를 떠올렸다. "'파친코' 책에 대해서 듣긴 했다.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도 우리 엄마한테 들어서 읽고 싶지 않았다. 근데 스크립트를 받게 됐다. 당연히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각색은 소설이랑 다르니까. 그녀의 강인함과 살아남아야겠다는 정신이 잘 할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파친코' 제작사는 할리우드였다. 국내에서라면 '대배우' 윤여정에 출연 제의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할리우드의 경우 모든 배우들이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 된다는 점이 다르다. 이같은 전혀 다른 시스템에 웃지못할 에피소드도 생겼다."내가 '아 윌 두잇'이라고 했다. 근데 아니라고, 기다리라고 하더라. 그 뜻을 몰랐다. 그 다음에는 책을 읽었다. 굉장히 감명 받았다. 리서치를 얼마나 끔찍하게 했는지 알수 있었다.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겠다 했는데 오디션을 보라고 하더라. 나는 오디션이 익숙하지 않다. 자기 앞에서 읽어달라고 하더라. 그게 오디션이라고. 내가 오디션을 봐서 역할이 안 맞다고 하면 한국 사람들 생각에는 '윤여정이 오디션 떨어졌다'고 하면, 내 50년 커리어를 이 역할 때문에 잃을 수 없었다. 내가 영어를 잘 못해서 강력하게 말한다. 그래서 모든 스크립트를 현관 밖에다 내다 버렸다. 근데 아니라고 하라고 하더라."
촬영 시스템 역시 달랐단다. 윤여정은 "한국 사람들은 일을 정말 빨리 빨리 잘한다. 촬영장에서 날 부르는 사람은 두명 정도다. 내가 무슨 씬을 찍냐고 물어보면 다 알고 대답해준다. 근데 여기는 너무 큰 프로덕션이라 나를 부르기까지 3~4명을 거쳐야 한다. 우리는 눈치가 있다. 나를 부르러 온 스태프는 지금 무슨 씬을 촬영 중인지, 대기시간을 알려준다. 근데 서양 사람들은 눈치가 없다. 이들은 모르니까 내 콜타임을 오전 6시 40분으로 하기도 했다. 나는 한국 작품 계약조건이 내 컨디션 때문에 오전 9시 이전에는 못 찍는다고 한다. 그 점도 달랐다"며 웃었다. 이에 진하는 "배우들끼리 농담이 있다. '서둘러 간 다음에 기다려라'라고 한다"며 촬영 시작까지 모든 배우들의 대기 시간이 길다는 점을 강조했다.
▲애플TV+(Apple 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Pachinko) 선자 役 윤여정 |
'파친코'는 한국과 일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자이니치가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선자, 그의 아들 모자수(아라이 소지), 그리고 솔로몬(진하)까지 한 가족의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극 중 병원에 입원한 하나(가호 미나미)와 선자의 대화 씬은 자이니치로서, 이방인으로써의 아픔으로 인한 오해를 푸는 씬이 등장한다. 윤여정에게 몇 없는 일본어 대사였고, 중요한 감정 씬이었다. 일본어 중에서도 오사카 사투리에 감정을 넣어야 하는 고난이도 기술이 필요했다. 윤여정은 "정말 고문이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나는 대본을 읽을 때는 다 이해했다. 내가 일본어를 한 마디도 못한다. 나는 오사카 방언을 해야했다. 근데 계속 틀렸다. 나는 내가 틀리면 제일 당황한다. 내가 미치겠더라. 그때 의상 스태프가 한국인들이었다. 그들이 컨닝 보드를 써서 도와줬다. 한국어로 일본말을 써줬는데, 내가 눈이 나빠서 안 보이더라. 나를 위해 노력한 것인데 정말 난감했다.
내가 일본어 대사를 위해 언어 코치랑 촬영하는 동안에 같이 있었다. 촬영 사이 사이에도 전화로 통화 연습을 했었다. 일본어는 아무것도 몰라서 힘들었다. 아들로 나오는 소지가 오사카 사투리를 아는 사람이다. 내가 술 먹고도 연습하고 한국어로 감정도 넣어봤는데 별짓을 다했는데 가호(가호 미나미/ 하나 역)상 앞에서 연습한 대사를 했다. 소지가 울더라. 짧은 씬인데 말을 모른는 것은 배우로서 너무 힘들더라."
윤여정은 '파친코'를 통해 새로운 시선이 생겼다. "이번에 자이니치에 대해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들은 것은 많다. 굉장히 부끄러워했다. 나라를 잃고 말을 잃은 것에 대해 부끄러워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극복하려고 했다. 자이니치라는 사람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더라. 나는 이거 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재일동포가 다 인줄 알았다. 디테일을 하나도 몰랐다. 작업하면서 자이니치 친구들 만나면서 울컥울컥하는 순간이 많았다. 이렇게 나라를 한번 잃었다는 것, 그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는거구나 생각하게 됐다. 내가 그 여성의 역사를 내가 표현할 수 있어서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