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개인 목표보다 여자축구 발전이 중요…아이들이 축구해야"
▲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이금민 (캠벨타운[호주]=연합뉴스) |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싶어 해야 합니다. 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어디서든 관심을 가질 겁니다."
최근 성장하는 잉글랜드 여자슈퍼리그(WSL)에서 뛰는 이금민(브라이턴)은 이번 여자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성공해야만 하는 이유를 '축구 산업 구조'에서 찾았다.
이금민은 지난 26일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시드니 외곽의 캠벨타운 스포츠 스타디움에서 취재진과 만나 '선수라면' 주장 김혜리(인천 현대제철)가 보인 결의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고 힘줘 말했다.
콜롬비아와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을 하루 앞둔 24일 김혜리는 기자회견에서 "성적을 내서 한국에서 축구하는 여자아이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혜리는 "성인 대표팀이 그간 성적을 내지 못해 한국에서 여자축구 '붐'이 일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책임감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직후 콜롬비아전에서 0-2로 완패해 팀 분위기가 가라앉은 가운데 언론 앞에 선 이금민은 김혜리의 발언을 기억한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금민은 "모든 선수가 공감할 것이다. 공감하는 수준을 넘어 생각이 같다"며 "매번 여자축구 저변 확대를 이야기하지 않느냐. 결국 (여자)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싶어 해야 (저변이) 확대된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를 포함해 모든 단체가 (축구를) 하고픈 사람이 많아져야 (축구와 관련된) 조직을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은 대표팀을 본다. 많은 대표팀이 출전한 대회를 보고 꿈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수) 개인의 목표보다 중요한 게 여자축구의 발전과 성장이다. 그래서 지금 월드컵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가장 아래 유소년들이 자리하고 꼭대기에 대표팀이 서 있는 '여자축구 피라미드'를 전제로 한 발언이다.
더불어 이금민 등 선수들이 대표팀의 파급력을 아래로 퍼뜨리는 '낙수효과'를 염두에 두고 대회에 나섰다는 사실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이 과정을 거쳐 몸집을 키우는 데 성공한 곳이 이금민이 뛰는 WSL이다.
WSL은 2021-2022시즌 매 경기 평균 1천923명이 입장했는데, 글로벌 회계·컨설팅 업체 딜로이트에 따르면 2022-2023시즌 들어 5천616명까지 증가한 것으로 파악된다. 3배 수준으로 뛴 것이다.
지난달 보고서를 낸 딜로이트는 "여자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여자 유로 2022)에서 잉글랜드 대표팀의 성공이 여자축구 인기의 변곡점"이라고 짚었다.
잉글랜드는 2022-2023시즌 개막 전인 지난해 7월 자국에서 열린 여자 유로 2022에서 우승했다.
당시 런던에서 열린 독일과 결승전에는 8만7천192명이 찾아 남녀 유럽선수권대회를 통틀어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을 세웠다.
이 대회에서 성공을 통해 잉글랜드 여자축구가 남자축구와 격차를 좁힐 발판을 마련했다는 게 외신들의 평가다.
우승을 통해 위상이 올라간 WSL이 더 많은 관중을 받고 중계권료나 후원 협상에서도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는 분석이다. 여자축구의 '약점'이었던 시장성을 키울 절호의 기회를 잡은 셈이다.
더불어 이금민은 WSL과 같은 큰 무대에서 경험이 결국 대표팀 전체의 경쟁력과도 연결된다고 봤다.
이금민은 "대부분 나라의 선수들이 해외에 많이 진출해 있다. 빅클럽, 더 큰 리그에서 뛰고 있다"며 "그런 선수들이 국가대표로 한 팀에 모였을 때 (전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선수들 개인이 발전해야 팀이 발전한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실업축구 WK리그 소속이라고 해서 못 한다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평가전에서 WK리그 선수들이 모여 잘해왔다"며 "그런데 첫 경기가 모두에게 부담으로 다가왔을 수 있다. 그럴 때 큰 무대를 경험한 선수가 보탬이 돼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어제 같은 경기는 나오면 안 된다"고 아쉬워한 이금민은 특히 전반 막판 만회 골 기회를 놓친 순간을 자책했다.
전반 추가 시간 최유리(인천 현대제철)가 페널티지역 왼 측면을 파고든 후 골라인 앞에서 어렵게 왼발로 크로스를 띄웠다.
이 공이 수비 견제가 없던 문전의 이금민에게 정확히 전달됐는데, 이금민의 헤딩이 몸을 날린 상대 골키퍼한테 막히며 득점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당사자가 밝힌 득점 실패의 이유는 '공이 너무 잘 와서'였다.
이금민은 "공이 너무 잘 오면 선수는 고민, 생각이 많아진다"며 "이걸로 때릴까, 저걸로 때릴까, 머리로 때릴까, 발로 때릴까, 그 짧은 순간에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이번 월드컵이 '황금 세대'의 마지막 대회라는 점이 이금민을 더 조급하게 한다.
이금민은 "지금이 멤버가 최고로 좋다. 황금 세대라고 하는데, 경험 많은 언니들과 컨디션 좋은 선수들이 다 모여 있다"며 "지금 선수단으로 꼭 좋은 결과를 가져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1998년생으로 대표팀에서 어린 축에 속한 공격수 강채림(인천 현대제철)은 자신감 넘치는 발언으로 이금민의 걱정을 덜어줬다.
이금민이 보는 앞에서 인터뷰에 나선 강채림은 "지금이 황금 세대라고 하는데, (이외) 어린 선수들, 이번 월드컵에 오지 못한 선수들도 기대가 되는 건 마찬가지다. 4년 뒤나 그 이후의 미래에도 또 다른 황금 세대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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