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현리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 작업은 선물, 이준호 日 촬영장서 인기 많았다"

노이슬 기자 / 기사승인 : 2023-05-06 06:3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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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W 노이슬 기자] 당연히 일본인일 것이라 생각했다. 상대 일본 배우와 대화에 막힘이 없었고, 발음까지도 어색함이 없었다. 일본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의 새 영화 '우연과 상상'(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속 배우 현리가 한국인 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현리 배우는 도쿄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출신이었다. 어릴 때부터 한국과 일본을 자주 왕래했다는 그녀는 코로나19로 최근 한국에 오지 못했으나 '우연과 상상' 개봉과 함께 내한하게 됐다. 현리는 화상 인터뷰에서 "좋은 작품으로 한국 관객들을 만날 수 있어서 남다른 기분이다. 되게 기쁘고 행복하다"고 반가움을 드러냈다.

▲영화 '우연과 상상' 츠구미 役 현리/그린나래미디어㈜
 "한국에 대해서는 좋은 추억밖에 없다. 할머니를 유독 좋아해서 방학 때, 할머니를 만나러 한국에 오는 게 저한테 제일 큰 행복한 이벤트였다. 대학을 연세대에서 보내면서 소중한 친구들도 만나고 연기 학원도 다녔다. 평생 배우하겠다고 다짐한 것도 그때여서 좋은 추억 밖에 없다. 부모님도 4, 5년 전부터 한국에 계신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을 많이 오갔다."

재일교포 출신인 배우 현리가 출연한 영화 '우연과 상상'은 지난해 제 7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각기 다른 세 편의 이야기를 담은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다. 5월 4일 개봉에 맞춰 내한한 재일교포 배우 현리는 '우연과 상상'으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 세번째 호흡했다. 

"감독님과는 세번째 일하는 것이다. 2016년에 '천국은 아직 멀어'라는 단편에서 같이 했다. 2017년까지 찍었는데, 같은 해 말에 류스케 감독님이 각본을 쓰신 '스파이의 아내'도 출연했다. 일년에 두번이나 만났었다. 정말 좋은 인연이구나 생각했다."

현리가 출연한 에피소드는 우연히 듣게 된 친구의 새 연애담에서 시작되는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이야기이다. 극은 일을 마친 후 같은 택시를 타고 귀가하던 중 츠구미(현리)가 최근 알게 된 썸남 카즈키(나카지마 아유무)와의 만남부터 이별, 만났을 당시 설렘까지. 친구 메이코(후루카와 코토네)에게 이야기하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영화 '우연과 상상' 츠구미 役 현리/그린나래미디어㈜
 "류스케 감독님은 연기에 대해 특별히 디렉션을 안 하셨다. 동작도 요구하시지 않는다. 저는 진짜 제 얘기를 하는 것에 집중했고, 감독님이 특별히 지시한 동작은 없었다."

류스케 감독은 리딩과 리허설을 오래하는 것으로 익히 알려진 바. 현리 역시 새로운 경험이었다며 "감독님 작품은 집에서 대본을 외워오면 안 된다. 리허설 기간이 촬영 기간보다 더 길게 잡혀있다. 그래서 꼭 같이 참여해서 대사를 외웠다"고 회상했다.

"'우연과 상상' 찍은 2019년에는 일본에서 주, 조연으로 드라마를 많이 찍었다. 일본에서는 촬영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않는다. 대사만 안 틀리면 바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집에서 대사를 심플하게 외워야하는데, 현장에서 빨리빨리 진행할 수 있게 계획을 많이 세우고 현장에 가는 경우가 많았다. 근데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님 현장에 가서 성실하게 대사만 외우고 충실했을 때 다시 연기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풍요롭게 시간을 갖고 작품을 할 수 있었던게 선물같은 시간이었다."

극 중 츠구미는 10분 동안을 주로 대화를 이끌면서 혼자 말하지만, 이는 어렵지 않았단다. 그는 "카즈키와 만남과 대화, 헤어짐까지 설명한다. 사실 영화에는 안나오지만 카즈키와 만나서 바(bar)에 나오는 씬과 대사를 감독님이 다 써주셨다"고 비화를 전했다.

▲영화 '우연과 상상' 츠구미 役 현리/그린나래미디어㈜
 "영화에는 안 나오는 씬이다. 찍었는데 편집당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촬영을 안한 것이었고 그 대사를 위해 실제 경험한 것처럼 써주신 것이다. 의상이나 메이크업을 한 것은 아니지만 , 츠구미로서 그 경험을 한 것이다. 그래서 그 장면을 설명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실제 바의 신을 경험하니, 대본을 읽었을 때 감정보다 큰 감정이었다. 좋은 감정이었는데 그냥 헤어졌다는게 상상했던 그 이상으로 아쉬웠다(미소)."

긴 대사를 홀로 소화하는 것이 아닌, 상대와 대화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애드리브도 했냐는 물음에 현리는 "대사 사이에 '아' '음' 그런 것도 대본에 쓰여진 그대로했다. 주신 스크립트를 온전히 배워야 했다. 한 마디도 틀리지 않고 외워야했다. 다른 감독님이었으면 당연히 대사가 기니까 포인트를 찾고 계산을 했을텐데, 류스케 감독님은 계산적인 연기를 원하지 않는 분이다. 감정을 최대한 뺴서 연기하는데, 다른 영화에서 하면 연기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대사를 기본적으로 정확히 잘 외워야한다는 것은 류스케 감독님 현장에 갈 때마다 다시 느끼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류스케 감독은 연출자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인물이란다. "류스케 감독님은 항상 저한테 말을 심어준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게 감독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어떤 사람이 좋냐고 물으셨다. 그때가 20대 중반으로 성실하게 대답했다. 심플하게 야사시이 히토라고 말했다. 다정다감, 착하다. 따뜻하다는 느낌이 있는 단어다. 그 당시에는 그런걸 소중히 여겨본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 인상이 깊어서 저도 그 후에 그렇게 대답하게 됐고 스스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감독님으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영향을 많이 주는 분인 것 같다(미소)."

앞서 '우연과 상상'은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리젠테이션에 '드라이브 마이 카'와 함께 초정된 바 있다. 당시 한국의 거장 봉준호 감독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 대담을 나누며 류스케 감독 작품에 가장 많이 등장한 '차 안' 씬에 촬영 비화를 끊임없이 궁금해했다.

▲영화 '우연과 상상' 츠구미 役 현리/그린나래미디어㈜
 현리 역시 해당 내용을 알고 있다며 "근데 사실 촬영 당시 감독님의 위치가 기억이 안 난다. 택시니까 트렁크에는 들어가실 수 없다. 제 기억에는 운전 하시는 기사님은 기사님이셨고, 조수석에 누군가 있었지만 그분은 촬영 감독님이었던걸로 기억한다. 그 정도의 존재감을 지울 정도로 계신 것 같다"며 웃었다.

현리가 연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길거리 캐스팅이다. "도쿄에서 태어나 중고등학교를 시부야에서 보냈다. 당시 길거리 캐스팅을 많이 받으면서 연기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하지만 일본에는 한국같은 연기를 전공으로 하는 대학 과가 없었고, 한국어를 더 잘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연세대학교 연극영화학과로 교환학생으로 오게 됐다. 그때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연기자로서의 길을 다짐했다."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단다. "부모님이 처음에는 반대하셨다. 근데 제가 연기학원 다니는 모습도 보시고, 화보도 찍는 모습을 보시면서 진짜 행복해보였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응원하게 됐다고 하셨다."

현리는 최근 가장 핫한 OTT 시리즈 '파친코'에 특별출연하며 이민호, 정웅인과 호흡하기도 했다. '파친코'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고국을 떠나 이방인의 삶을 살아야 했던 자이니치의 이야기를 중점으로 한다. 일본에서 왕성한 활동중인 배우의 출연은 민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리는 "출연은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고 했다.

 "'파친코' 출연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출연하고 싶었다. 원작도 미국에서 유명했고, 저는 원작을 읽으면서 너무 재밌었다. '이건 내 얘기다. 우리 가족이야기'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책으로서도 너무 재밌었다. 저는 일어, 한국어, 영어 버전의 책을 다 가지고 있다. 하나도 망설이지 않았다. 일본에도 재일교포 영화가 있다. 제 경험이나 생각이 모든 재일교포를 대표할 수는 없지만, 일본에 있었던 것보다 옛날 재일교포의 이미지로 만들어진 작품이 많다고 생각했다. 일본 학교 다니는 애들과 싸우는 내용이 있지만, 저는 그런 경험은 없다. 그래서 '파친코' 읽었을 때 그 세대에 공감이 갔고, 미국이라는 제3자 입장에서 재일교포의 이야기라는게 조금 냉정해서 좋았다. 거리를 두고 찾아보고 소재를 다룬 게 더 좋았던 것 같다."

사실 현리는 일본에서 활동하면서도 광복절에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태극기 사진을 올려 국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리는 "이현리가 본명이다. 일본 이름 없이 본명으로 살았다. 저한테는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부모님이 당당하게 살라고 했다. 저는 생각보다 심플하게 살면서 강해질 수 밖에 없었다. '한국 배우로서의 어려움'이 있냐는 물음에는 생각해 봐야할 정도다. 일본어를 자연스럽게 하니 일본인 역할도 많이 했다. 오히려 일본 드라마에 한국 대사가 없었는데, 작년에 그 기회가 와서 '너와 세계가 끝나는 날에'라는 드라마에서 한국어 대사가 있어서 너무 좋았다(미소)."

지난 2019년에는 2PM 이준호의 첫 일본영화인 '장미와 튤립'(薔薇とチューリップ)에 함께 출연하며 K팝 아티스트와도 연을 맺었다. 1인 2역으로 분한 이준호 중 아티스트 네로의 매니저 '명아'로 호흡을 맞췄다. 현리는 "그 작품을 찍을 때, 준호씨는 일본어 대사인데 일어도 너무너무 잘하셨다"고 회상했다. "준호씨는 가만히 있으면 멋있는 스타일인데 그때 1인 2역을 하셨다. 캐릭터가 귀여운 남자와 터프한 남자였다. 귀여운 쪽도 잘하셔서 현장에서도 인기 많았었다. 그때 한국과 일본 촬영장이 많이 다르다고 말씀해주셨었다. 저도 한국 촬영장을 경험해보고 싶어졌다."

최근 K콘텐츠가 전 세계에서 사랑받으며 자부심을 느낀다는 현리는 한국에서의 활동도 희망했다. 2020년 영화 '카오산 탱고'에 출연했지만, 교포 역할로 한국어를 조금 더 어눌하게 했어야 했기에 아쉬웠단다.

"저는 넷플릭스에 나온 한국 작품 다 좋아한다. 드라마 로코도 좋아하지만, 감탄한게 'D.P.'(디피), '소년심판' 같은 사회 문제를 빨리빨리 담아서 드라마로 만드는게 대단하다 생각했다. 봉준호 감독님은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존경하고 있다. 롤모델은 윤여정 선배님이다. 선배님이 아카데미에서 연설하시는 것을 보고 그 나이에 나라를 가리지 않고 활동하시는게 너무 멋있었다고 생각했다. 정말 멋있었다."

그러면서 현리는 "다양한 글로벌 OTT 작품 스크립트도 받는다. '파친코' 같은 이야기를 비롯해 소수자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분들의 야기들을 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한국어는 발음보다는 발성이 많이 다른 것을 느끼고 있어서 현재 보이스 트레이닝 받고 있다"며 한국 활동에 기대감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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