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KBL] 양지희, "은퇴요? 아직은 휴가 받은 기분이에요"

편집국 / 기사승인 : 2018-05-08 13: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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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W=임재훈 기자] 지난달 30일 아산 우리은행에서 부천 KEB하나은행으로 이적하는 김단비를 인터뷰하러 갔던 기자는 반가운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우리은행의 여자프로농구 통합 5연패의 주역으로 최근 현역 은퇴를 선언한 양지희였다.

한국 여자농구를 대표하는 센터로서 우리은행의 통합 5연패를 이끈 주장으로서 현역 은퇴를 결정한 대단한 선수를 그렇게 만나기도 어려울 터. 본인에게 양해를 구해 예정에 없던 인터뷰를 요청, 은퇴 결정과 관련된 궁금증과 은퇴 이후 펼칠 제2의 인생에 대해 묻고 답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양지희의 은퇴결정 사실이 알려진 것은 공식적으로는 지난 달 15일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의 발표로 알려졌지만 양지희의 은퇴 결정 사실은 우리은행이 통합 5연패에 성공한 지난 3월 20일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사진: 양지희 인스타그램


상당수의 기자들은 공식 발표가 있기 전까지 양지희의 은퇴결정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양지희 자신이 우승이 결정된 당일에도 은퇴 여부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은 2016-2017 시즌 전에 (은퇴를) 결심했어요. 부상 때문에 너무 많이 힘들었어요 작년 여름 허리 부상으로 한 달간 운동을 쉬었는데 다시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어요. 너무 고통스러웠고, 통증과 싸우는 것이 너무나 정신적으로 힘들었어요. 그래서 시즌 개막 한 달 전 쯤에 감독님을 찾아가서 은퇴하겠다고 말씀 드렸죠”

양지희의 은퇴의사에 위성우 감독은 시간이 걸려도 좋으니 시간을 길게 잡고 재활을 해보자고 양지희를 설득했고, 양지희 역시 최고의 모습으로 은퇴하고 싶다는 평소의 생각이 작용하면서 은퇴를 보류했다. 그렇게 양지희는 재활 과정을 거쳐 시즌 중간에 경기에 투입됐지만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 통증과 잡힐 줄 모르는 코트밸런스는 양지희를 더욱 더 힘들게 했다.

결국 양지희는 현역 은퇴를 결정했고, 챔프전을 앞두고 위성우 감독은 양지희와 대화를 통해 은퇴 의사를 최종 확인, 양지희에게 ‘유종의 미를 거두라’는 말을 건네는 것으로 이별을 받아들였다. 구단 내부에서도 양지희의 은퇴는 기정사실처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구단 차원에서 양지희의 은퇴결정은 발표되지 않았다.

“무척 조심스러웠어요. 챔프전 기간 중에는 감독님도 예민하시고 혹시나 제가 챔프전 기간 중에 은퇴를 발표했다가 자칫 챔프전 결과가 안 좋게 되면 제가 피해를 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것 같아서 챔프전 기간에는 동료 후배 선수들이 ‘정말 은퇴하냐’고 물어봤을 때 ‘시즌이 끝나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얘기했죠”




결국 통합 5연패 직후 코트에서 벌어진 시상식에 깜짝 등장한 남편과 연출한 눈물의 키스신은 양지희가 현역 선수로서 코트에서 보여준 마지막 모습이 됐다.

프로농구 선수로 15시즌을 뛰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물었다.

“(우승한) 첫 해가 힘들었어요. 사실 매 해가 고비였어요(웃음). 아프면 아파서 고비, 운동이 힘들면 힘들어서 고비였죠. 우리 팀은 한 선수가 몸이 안 좋아서 운동을 쉬었다가 돌아오면 앞서서 나가던 동료들도 부상에서 돌아온 선수에 페이스를 다시 맞춰가야 하는 시스템이에요. 그러다 보니 저 때문에 그런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죠. 그런 부분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사실 우리은행 선수에게 ‘언제가 제일 힘들었냐’는 질문만큼 어리석은 질문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질문의 각도를 좀 바꿔봤다. 선수생활을 통틀어 언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지…

“2015-2016시즌이었던 것 같아요. KEB하나은행이 워낙 막강했고, 1라운드에서 패하기도 해서 우승을 못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즌이었어요. 챔피언 결정전에서 모스비를 수비해야 했는데 몸싸움이 한국 선수랑 할 때랑 너무 다르니까 마지막 3차전 할 때는 너무 힘들어서 혀가 땅바닥에 닿는 느낌이었죠.(웃음) 경기를 하다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근데 우승을 하고 나니 한 기자님이 ‘챔프전 MVP 투표에서 2-3표차로 박혜진이 받았는데 아쉽지 않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때 그냥 저 자신에게 ‘수고했다’ 이런 느낌이 들면서 기분이 묘했죠”

그렇다면 양지희 같은 최고의 선수도 프로농구 선수로서 후회되거나 아쉬운 부분은 있었을 터. 어떤 부분에서 아쉬움이나 후회가 있었는지를 물었다.

“요즘 어린 선수들을 보면서 ‘이런 게 세대차이인가’ 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어렸을 때 언니들이 너무 무서웠어요. 우리은행에서는 그런 태도가 용납이 안 되지만 저 신인 때는 언니들이 몸싸움 할 때 몸을 부딪히면 언니들이 화를 낼 것 같아서 몸싸움을 피하고, 언니들이 돌파를 하면 살짝 비켜주고 했거든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그래서 제가 더 발전을 못 했던 것 같아요.”

신인시절 좀 더 프로답게 악착같이 자신의 플레이를 펼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이쉬움이었다. 양지희는 이때 후배 김정은의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 여자농구 최고의 ‘스코어러’로 평가 받는 김정은은 지난 시즌까지 KEB하나은행의 주축 선수로 활약했고, 최근 자유계약선수로 우리은행의 유니폼을 입게 됐다. 양지희와는 신세계 시절 5년간 한솥밥을 먹은 사이다.


사진: WKBL


“정은이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했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했어요. 1년생이었는데 공격할 때 선후배도 없고 당차게 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죠”

김정은 이야기가 나온 김에 김정은의 이적과 양지희의 은퇴가 맞물려 함께 뛰지 못하게 된 상황에 대해 아쉬움이 없는지를 물었다. 이때 양지희는 김정은에 대한 진한 속내를 털어놨다.

“신세계에서 우리은행 왔을 땐데 어떤 인터뷰에서 정은이가 ‘(박)세미 언니(당시 신세계에서 KB스타즈로 이적)랑 (양)지희 언니랑 다시 한 번 같이 뛰고 싶다. 옛날이 그립다’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했었어요, 그때 제가 좀 울컥했어요. 그래도 대표팀에서 함께 뛰어본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됐어요”

마지막으로 다음 시즌 양지희라는 버팀목 없이 통합 6연패에 도전하게 될 후배 선수들에게 선배로서 들려주고 싶은 당부의 말을 청했다. 양지희는 앞서 김정은의 신인 시절을 보면서 느꼈던 점을 다시 리마인드 할 수 있는 당부의 말을 전했다.

“주장 입장에서 보면 후배 선수들 한 명 한 명이 너무너무 힘든 상황이면서도 모두 밝게 잘 해줬어요. 기특한 선수들이죠. 그리고 그 선수들은 지금보다 훨씬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한편으로는 ‘우리들은 언니들한테 안 될 거야’라는 생각에 갇혀있는 것 같아요. 그 선수들에게 언니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지난 시즌이 종료되고 은퇴결정이 알려진 이후 양지희는 손가락 수술과 무릎 수술을 기다리며 영어공부와 봉사활동을 하면서 조용히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했으나 그렇게 마음대로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다. 선수로서 시즌을 마친 이후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을 만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은퇴 역시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저 일요일 오후 숙소 복귀 시간에 쫓기지 않고, 이른 새벽 자명종 소리에 깨어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달라진 삶을 살짝 느끼게 하는 정도다.

"은퇴가 아직은 실감나지 않아요. 그냥 휴가를 받은 느낌이죠. 은퇴 기사가 나가니까 남편이 전화해서 이상하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오빠가 은퇴하냐'고 그랬죠"(웃음)

수술을 마치면 양지희는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려고 하고 있다. 결혼 이후 지난 3년간 독수공방 해온 남편이 처음엔 반대했지만 결국 자신이 설계한 제2의 인생에서 영어가 꼭 필요하다는 양지희의 생각을 존중, 흔쾌히 보내주기로 결정했다.




어학연수 이후의 삶에 대해 양지희는 미리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농구에 입문해서 프로선수로 15시즌을 뛴 것을 모두 합치면 23년이다. 현재까지 살아온 생애 전체를 농구에 바쳤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은퇴를 결정한 이상 양지희는 완전히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계획도 잡아놓은 만큼 남들에게 먼저 이야기하기 보다는 홀로 묵묵하게 계획한 일들을 실현시켜 나가겠다는 생각이다.

그녀가 그려낼 제 2의 인생의 풍경이 벌써부터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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