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성호르몬 규정 폐지를 위해 법적 다툼을 벌이는 세메냐 [AP=연합뉴스 자료사진] |
세계육상연맹의 'DSD 규정'(Differences of Sexual Development·성적 발달의 차이) 폐지를 위해 법적 다툼을 벌이는 캐스터 세메냐(32·남아프리카공화국)가 처음으로 승소했다.
다만 이번 판결이 세계육상연맹의 규정 변화를 강제할 수는 없다.
AP통신은 11일(한국시간) "유럽인권재판소가 판사 4대 3의 의견으로 세메냐에게 유리한 판결을 했다"며 "세메냐가 고소한 상대는 세계육상연맹이 아닌 스위스에 있는 스포츠중재재판소(CAS)와 스위스 연방법원이었다"고 전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CAS와 스위스 연방법원이 '세메냐가 사생활을 존중받을 권리와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지키지 못했고, 구제받을 권리도 침해했다"며 "스위스 정부는 세메냐에게 6만유로(약 8천500만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세메냐는 2012년 런던 올림픽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여자 800m 2연패를 달성했고,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3차례 800m 챔피언(2009년 베를린, 2011년 대구, 2017년 런던)에 올랐다.
하지만 세계육상연맹이 2018년 11월에 400m, 400m 허들, 800m, 1,500m, 1마일(1.61㎞) 여자부 경기 출전 기준을 테스토스테론 5n㏖/L 이하로 정하면서 세메냐는 2019년부터 주 종목 800m에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
육상계와 많은 언론이 세계육상연맹의 DSD 규정을 '세메냐 룰'이라고 부른다.
일반 여성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0.12∼1.79n㏖/L, 남성은 7.7∼29.4n㏖/L이다.
공개한 적은 없지만, 많은 전문가가 세메냐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7∼10n㏖/L로 예상한다.
세메냐는 "나를 겨냥한 규정"이라며 CAS에 제소했다.
하지만 CAS는 2019년 세계육상연맹에 유리한 판결을 했다.
세메냐는 2020년 스위스 연방법원에서 다툼을 이어갔지만, 스위스 연방법원도 세계육상연맹의 손을 들었다.
CAS와 스위스 연방법원 재판에서 패소한 세메냐는 유럽인권재판소에 "두 번의 재판에서 차별받았다"고 소송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세메냐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AP통신은 "이번 판결이 세계육상연맹의 규정 변화를 강제할 수는 없지만, 2024년 파리 올림픽 여자 800m 출전을 원하는 세메냐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줄 가능성은 있다"고 논평했다.
세계육상연맹은 세메냐가 법적 다툼을 시작할 때보다 DSD 규정을 더 강화했다.
'400m, 400m 허들, 800m, 1,500m, 1마일(1.61㎞) 여자부 경기 출전 기준을 테스토스테론 5n㏖/L(나노몰) 이하'로 정했던 기존 규정을 올해 3월 '여자부 전 종목'으로 확대했고, 테스토스테론 최대 허용 수치를 기존의 절반인 2.5n㏖/L 이하로 더 강하게 규제했다.
유럽인권재판소가 세메냐에게 유리한 판결을 한 뒤에도 세계육상연맹은 성명을 통해 "우리는 CAS와 스위스 연방법원의 판결대로 DSD 규정이 공정한 경쟁을 위한 합리적으로 균형 잡힌 수단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의 규정은 전문적인 평가를 거친 것"이라고 DSD 규정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확고하게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