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후 청주체육관. 홈팀 청주 KB스타즈와 원정팀 OK저축은행의 '2018-2019 여자 프로농구' 4라운드 경기가 열리기 전 OK저축은행의 정상일 감독을 만났다. 전날까지 KB스타즈는 12승 5패로 부동의 2위를 달리고 있는 우승 후보이고, OK저축은행은 모기업도 없이 타이틀스폰서를 구해 리그에 참여하는 악전고투 속에 5승 11패로 5위를 달리고 있는 약팀. 경기 전 만난 정 감독은 오랜기간 리그 최하위권을 맴돌며 OK저축은행 선수들의 뇌리에 깊이 박힌 패배의식에 진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어떤 팀을 만나더라도 끝까지 승부근성을 가지고 달려드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고 싶지만 강팀을 만나 점수차가 벌어지면 이내 주눅들고 포기해버리곤 하는 선수들이 안타까웠던 것. 그러면서 선두 아산 우리은행, KB스타즈, 용인 삼성생명 등 이번 시즌 '빅3'를 형성하고 있는 팀들 가운데 어느 팀이라도 한 번은 이겨보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에서 4승에 그쳤고, 모기업의 해체로 더욱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인 OK저축은행은 이번 시즌이 개막하기 전부터 꼴찌를 예약했다는 평가를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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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WKBL |
그러나 OK저축은행은 새 시즌 개막전에서 우승 후보로까지 거론되던 '다크호스' 부천 KEB하나은행을 상대로 80점이 넘는 고득점을 올리며 승리를 거뒀고, 정규리그의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서 이미 지난 시즌 승수를 넘어서는 승수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OK저축은행이 이번 시즌 당한 패배 가운데는 강팀을 상대로 끝까지 접전을 펼치다 패한 경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 번 기세가 꺾이면 한 없이 주눅들고 포기해 버리는 단점을 가진 팀이지만 한 번 분위기를 타면 어느 팀도 쉽사리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팀이 이번 시즌 OK저축은행이다. 그리고 그런 잠재력은 새해를 맞아 선두 추격의 의욕이 불타오르고 있던 KB스타즈를 상대로 제대로 폭발했다. KB스타즈는 전경기에서 우리은행을 상대로 역전승을 거둔 상태로 홈팬들 앞에서 OK저축은행에 완승을 거둘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하지만 KB스타즈 선수들은 3쿼터가 지나면서 스스로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반성을 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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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WKBL |
3쿼터에서 속절 없이 역전을 허용한 KB스타즈는 4쿼터 막판까지 내내 OK저축은행 선수들의 패기 넘치고 재치 있는 플레이에 고전하다 4쿼터 종료 2분14초를 남기고는 6점차까지 뒤지면서 패배의 벼랑 끝으로 몰렸다. 이후 염윤아와 심성영의 연속 3점포를 승부는 연장전을 넘어갔고, KB스타즈가 박지수와 쏜튼, 염윤아를 앞세워 전세를 뒤집고 연장 종료 직전까지 다시 6점을 앞서며 승리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도 OK저축은행은 진안과 한채진의 연속 득점으로 다시 두 점 차 까지 따라붙었다. 경기 종료 6.6초를 남기고 시도한 마지막 공격에서 OK저축은행은 구슬이 완벽한 3점슛 기회를 잡았으나 이 슛이 실패하면서 결국 OK저축은행은 시즌 12번째 패배를 기록하고 말았다. 경기 직후 인터뷰룸에 들어온 정상일 감독은 "끝까지 잘 싸웠다"면서도 "아쉽다"라며 솔직한 심경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내 "선수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팀을 상대로 패배의식에 젖어 있던 선수들을 깨울 수 있는 경기였다는 측면에서 좋은 계기가 됐다는 의미로 읽혔다. 정 감독에 이어 인터뷰룸을 찾은 KB스타즈의 안덕수 감독은 "반성해야 할 경기"라고 했다. 실제로 이날 KB스타즈는 OK저축은행 선수들의 조직적이고 악착같은 수비에 무려 23개의 턴오버를 범했다. 이기기는 했지만 '졸전'이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는 경기였다. OK저축은행 선수들의 '도깨비 기질'이 발휘됐을 대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이날 KB스타즈는 패배의 벼랑 끝에서 절감했을 것이다. 정상일 감독의 올 시즌 목표는 4위다. 현재 5위인 OK저축은행의 입장에서 충분히 노려볼 수 있는 목표지만 종종 최강팀의 면모를 자랑하는 4위 KEB하나은행과 최근 빠르게 전력 안정화가 이뤄지고 있는 '꼴찌' 인천 신한은행의 전력을 감안할 때 결코 쉬운 목표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혜지, 구슬, 진안 등 '스웩' 넘치는 젊은 선수들이 지난 KB스타즈전처럼 앞으로도 강팀, 약팀 가리지 않고 재기 발랄하고 패기 넘치는 경기를 펼쳐낸다면 OK저축은행은 리그 판도에 돌발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 '도깨비팀'으로서 팬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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